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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색채, 이름없는 풍경....모리스 위트릴로 <두유마을의 교회>
la petite communiante eglise de deuil (두유 마을의 교회), 1912, Maurice Utrillo

 

절제된 색채로 이처럼 화면의 두께를 보여주는 그림은 서양미술사를 샅샅이 뒤져 보아도 찾기가 쉽지 않다. .... 그런 정신의 모습을 위트릴로는 시골의 이름 없는 교회당 풍경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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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의 미술생각37

알코올 중독, 자학, 방황, 정신 질환. 화가의 삶을 규정할 때면 이처럼 부정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미술사에 남은 천재들이 보여준 세상에 대한 반항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모리스 위트릴로(1883-1955)의 삶도 그렇다.

그래서 ‘저주받은 화가’라는 고약한 별칭까지 얻었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비극적 삶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딜리아니와 예술적 동지애를 나눴고, 그래서 가장 절친한 술친구로 유명했다. 이들을 미술사에서는 ‘에콜 드 파리’라고 부른다. 당시 서양미술을 주도했던 흐름(표현파, 야수파, 입체파)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위트릴로의 자학적 삶을 얘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은 그의 어머니 쉬잔 발라동이다. 인상주의 화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모델로 통했고. 화가로서의 기질을 발산했던 여인.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샤반, 로트레크, 르누아르, 드가 등 쟁쟁한 화가들과 모델 이상의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와중에서 태어난 위트릴로는 누가 아버지인지 모르는 사생아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로트레크와 각별한 사이였다. 로트레크가 자살 소동까지 벌이며 열렬하게 구애했던 유일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녀를 모델로 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아리송한 태생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란 위트릴로는 10세 때부터 술을 가까이 했고, 이후 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18세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데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끌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술이었다. 정신 치료의 한 방법으로 시작한 화업이 결국은 잠들어 있던 천재성을 깨우게 된 셈이다.

위트릴로 하면 ‘파리의 뒷골목’이 떠오른다. 파리의 우수어린 골목길을 비롯해 근교의 경치를 담아낸 풍경을 많이 그렸을 뿐만 아니라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적 예술가 삶의 전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흰색의 건물 풍경으로 독보적인 화풍을 완성하게 된다. 이 시기를 ‘백색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리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충만한 화면의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절제된 색채로 이처럼 화면의 두께를 보여주는 그림은 서양미술사를 샅샅이 뒤져 보아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둡게 처리한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흰색 교회의 위용이 느껴질 정도로 견고하다. 길에서 올려다보는 눈높이에서 직선만으로 연출한 삼각형 구도 덕분이다. 여기에 화면 앞쪽에서 시작해 교회를 돌아나가는 골목길이 탄탄한 받침대 같은 느낌을 더한다.

시계, 종탑, 본당 창문, 현관문의 짙은 고동색은 단색조의 교회 건물에서 뼈대에 해당되는 구성이며, 이런 건축물이 갖고 있는 정신적 엄격함을 보여주는 요소다. 잿빛 하늘은 교회의 흰색을 빛나게 만들어 종교적 숭엄함까지 자아내고 있다.

위트릴로에게 흰색은 정신 치료 때문에 생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병동의 흰색, 의사 가운의 흰색, 소박한 교회의 흰색. 이런 것들이 그에게 ‘속죄와 정화’의 상징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흰색은 알코올 중독과 방탕한 생활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종교적 믿음 같은 것으로 다가온 셈이다. 그런 정신의 모습을 위트릴로는 시골의 이름 없는 교회당 풍경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준엽

화가,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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