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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표현의 극치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신화는 상상력의 공간에 지은 집이다. 그곳에 깃들어 살고 싶게 이끄는 것이 예술이다. 사람들이 모여 들어 동네를 이루면 문명이 된다. 인류를 번성시킨 곳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재료 삼은 튼실한 구조의 신화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화가 있다. 고구려 신화는 우리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케 했으며, 표현에서도 얼마나 기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등장해 우리가 이제야 알게 된 인면조는 이런 모습을 확인해 주었다. 미국 ABC 뉴스는 ‘이상하고 무섭지만 재미있고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고 평했고, 일본에서는 많은 언론이 주목해 네티즌 사이에서 여러 가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화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일회성으로 지나쳐버리는 듯한 분위기여서 아쉽기만 하다. 심지어 ‘우리 문화라지만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기괴하다’라는 부정적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우리의 이토록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적 미감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담백함, 고졸함, 자연스러움, 절제의 미, 한이 묻어나는 비애의 미다. 이들은 우리가 일궈낸 독창적인 미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표현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바탕에 깔려 있다. 조선을 관통한 유학의 영향과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해준 민예적 미학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공자의 사상을 바탕 삼은 유학은 조선 건국의 정신적 기반을 만든 정도전과 이후 정치적 지배층의 핵심 철학으로 발전했다. 현실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유학적 사고에서는 탐미적 표현을 가벼이 보았다. 특히 상상력의 세계를 괴력난신(怪力亂神-공자 <논어> 술이 편에 나오는 말로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존재)이라 하여 철저히 배격한다. 이런 시대정신으로 500여 년을 단련한 우리 미감은 절제적이며 담백함을 담는 쪽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조선의 민중적 정서와 이를 담아낸 조선의 민예에 매료된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 미감을 비애적 정서와 고졸함으로 분석해 설득력을 얻었다. 특히 조선 백자와 민화의 미학적 가치를 설명하는데 많은 공감을 얻었고 우리 미감으로 굳어진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섬세한 표현과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담아낸 미감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문화유산이 있다. 섬세한 감각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고려의 대표적 회화인 불화에서 보인다. 고려불화는 13-14세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는데, 섬세한 장식 미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19세기 탐미주의 화가 오스트리아의 구스타브 클림트의 회화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클림트가 고려불화의 장식적 미감을 따라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선묘, 단아한 형태, 화려한 색채의 운용, 다양한 문양이 빚어내는 장식성, 정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묘사.’ 고려불화를 설명할 때면 언제나 따라 붙는 말이다. 특히 투명한 천으로 만든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은 효과의 표현은 가히 압권이다. 겹쳐진 부분을 가려내는 표현 방법으로 서로 다른 문양을 그려서 깊이 감을 불어 넣었다. 이런 방법은 동시대 세계 어느 나라 미술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기법이다.

고려불화 중 아름다움이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수월관음’이다. 달밤에 관음보살이 물가 바위에 앉아 선재동자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주제가 많이 그려진 이유는 <화엄경>에 관음보살이 사는 곳이 아주 서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수월관음도가 13-4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이유는 몽골의 침략과 고려 말 정치적 혼란이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은 현세 이익 신앙의 대표적 경배 대상으로 꼽힌다. 외국의 침략과 지배층의 권력 다툼으로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부르기만 하면 나타나 구제해준다는 자비로운 관음보살은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 고려의 화가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 속에 현실적 고난을 이겨내는 힘을 실었다. 그 힘이 바로 섬세함의 극치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현실의 어려움까지도 잊을 수 있도록 위안을 주는 아름다움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 그런 생각을 담기에 관음보살만한 주제가 없었을 것이다. 수월관음도가 보고 싶은 이유는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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