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서정의 충만함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아니라 “어느 바람찬 봄날 갑자기/숨차게 부르던 노래 소리 그치고/어느 낯설은 길목 지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표정 없는 기다란 하루/길이 없는 숲의 날들/시간 아닌 시간 속을 지나는 바람”(<그렇게 10년>)은 도저한 허무의 골목으로, 낯선 숲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전히 최고의 세션과 엔지니어들의 협업으로 완성된 풍성한 레이어와 웅숭깊은 사운드는 그만의 방식으로 낯설게 충만하며 목소리는 나지막하다.

그의 음악은 어떤 종류의 세속비판도 취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허공, 욕망이 사라진 “섬 안의 섬”(<섬 안의 섬>)을 고요히 응시함으로써 일상 안에서 우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쥐려고 몸부림치는 것들, ‘웰빙’이라는 우리시대 삶의 고정관념을 간단히 무너뜨리고, 악착같은 생활인의 감각을 이완시키며, 삶의 바닥에 가려진 ‘무(無)’를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환기한다.

망각하고 회피하고 있던 일상 ‘너머’, 삶의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기분’에 잠기게 한다. 진정한 의미의 ‘앨범’으로 묶여 서사를 갖게 된 이 음악적 서정들은 노래하면서 침묵을 불러들이며, 공간에 울려 퍼지되 공간을 비어 있게 한다. 삶의 부재, 낮의 밤, 꿈속의 꿈, 허공이 숨긴 바람, 대지에 가려진 섬, 바다의 흰 거품, 희열 속의 푸른 슬픔, 하얀 벽 위에 춤추는 그림자, 어떤 숨소리. 이 앨범에 담긴 것들은 나타나는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며,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흔히 문학에서 ‘진정한 시는 위로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뜻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것은 ‘진정한 시’는 일상의 테두리를 이루기는 하지만 존재의 진실을 왜곡하는 온갖 ‘거짓 희망’과 내통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제비꽃’에서 이제는 ‘별빛이 내린 나무’가 된 조동진 6집은, 역사를 넘어 우주공간 안에 또 하나의 고요한 음악적 서사, 아니 아름답고 풍요로운 서정을 수놓았으나, 우리를 오히려 도저한 허무에 마주하게 함으로써 다른 방식의 깊은 위로를 선물한다.

비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그를 한국대중문화사 최고의 ‘음유시인’이라고 부르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온전히 시가 된 거장의 노래와 음악은, 너그럽고 낯설고 멀고 깊고 넓은 파동이 되어 땅과 숲과 섬과 허공과 우리 가슴에 부드럽게 퍼지며 고요하게 스민다.” - 문학평론가 함돈균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축을 담당하며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 다채로운 음악들이 풍요롭게 넘치던 그 시절, 언더그라운드의 거점으로 자리한 하나음악의 중심에 조동진이 자리하고 있다.

동생 조동익을 비롯해 장필순, 한동준, 박용준, 고찬용 등이 포진하고 그 막내로 토이의 유희열이 있었던 때다. 그 하나음악이 2011년 푸른곰팡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이후 간간이 음반이 나왔다.

1970년 1집 앨범 ‘행복한 사람’으로 데뷔한 조동진(69)은 ‘겨울비’, ‘울고 있나요’, ‘나뭇잎 사이로’(2집, 1980), ‘제비꽃’(3집, 1985) 이후 ‘강의 노래’를 거쳐 6년 만에 ‘나무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1996년 5집 이후 잠시 은둔했던 그는 포크에 일렉트로닉과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새 숨결을 불어넣으며 한층 세련된 편곡으로 담아냈다. 1980년대 동아기획, 90년 하나음악, 그리고 2010년대 푸른곰팡이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 공동체의 계보는 새로운 변화와 함께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여전히 서정성 짙은 사색의 언어로 조용히 다가온다.

임효정 기자 / 사진제공 푸른곰팡이

수록 곡 중 한 곡인 <천사> 의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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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하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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