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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정신강희안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와 정선 <독서여가(讀書餘暇)>
독서 여가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았던 이들의 정신은 조선을 5백 년이나 지탱해준 힘이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선비’라고 부른다.

 

조선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도덕적인 국가였다. 특히 사대부로 불리는 사회 지도층에게는 더욱 더 엄격한 도덕적 가치를 요구했다. 때문에 사대부는 사심 없는 평상심과 청빈한 생활 태도를 기본으로 하고 대의, 지조, 절개 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특히 관직을 이용한 부정부패는 생물학적으로 목숨만 유지할 뿐,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혹독한 잣대로 다루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역사 기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사화’는 관직에 올랐던 사대부들이 대의를 위해 지조를 지키다가 화를 당한 사건들이다. 자신의 뜻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궁핍한 삶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았던 이들의 정신은 조선을 5백 년이나 지탱해준 힘이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선비’라고 부른다. 그러면 선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사관수도

 

<고사관수도>의 물을 닮은 선비

조선 초기 세종 때부터 세조 때까지 활동했던 사대부 출신 화가 강희안(1418-1465)의 <고사관수도>에 나오는 선비는 높은 뜻을 지닌 사람이다. 바위에 엎드려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욕심 없는 얼굴의 노인이다. 나이는 지긋해 보이는데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맑다. 그런데 분위기는 중국 사람을 닮았다. 아마도 조선 초 명나라의 영향인 듯싶다. 실제로 조선 중기까지도 회화의 이상적 모델을 중국에서 찾았으니, 이 그림에 나타난 인물 분위기는 당시로선 너무도 지당하고 자연스런 현상이었을 게다.

조선 회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중국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과감한 구성과 대담한 먹의 운용, 순식간에 그렸음 직한 인물의 묘사 등으로 볼 때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서 인생의 참뜻을 찾으려는 작가의 생각이 인물 표정에서 잘 드러난다. 물 같이 사는 일이 최고의 삶이라는 생각을 물을 바라보는 선비로 표현했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처럼 사는 일이 과연 쉬울까. 세종의 이종 조카였던 강희안은 높은 관직에 여러 차례 기용되었지만, 본인 뜻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데 있음을 이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조선 선비가 지녔던 근본정신이다.

 

<독서여가>의 감성과 이성이 어우러진 참 선비

겸재 정선(1676-1759)은 <독서여가>라는 작품에서 참 선비 모습을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겸재의 자화상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진짜 선비를 만나 보자. 겸재 작품 중에 드물게 색채가 많이 들어간 이 그림은 구도에서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공부를 잠시 쉬고 툇마루에 나와 앉아 화분의 꽃을 감상하고 있는 정경인데도, 질서와 긴장감이 묻어 나온다.

기하학적인 사선과 수직선으로 그림의 기본 구도를 잡았기 때문이다. 딱딱한 직선 속에 주제 격인 인물과 화분 그리고 소나무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함으로써 균형을 꾀하고 있다. 긴장과 이완이 조화를 갖추고 있는 구성이다. 그림의 구성은 더욱 치밀하다. 우선 ‘v'자로 벗어놓은 신발은 인물이 손에 쥔 부채에서 반복돼 책꽂이 기둥으로 이어지며 수직선을 보여준다. 이와 짝을 이루는 수직선은 오른쪽 기둥이다. 이 두 직선을 받쳐주는 직선은 방 안쪽에서 시작해 인물의 머리 부분을 가로질러 툇마루까지 이어지는 사선, 툇마루의 사선 그리고 그와 평행으로 달리는 처마의 사선 등이다. 이렇듯 딱딱한 직선 골격은 선비가 지켜야 할 규범, 질서, 지조, 절개 등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인물의 흐트러진 자세, 책꽂이 측면의 부드러운 산수화, 뒷마당 소나무의 리드미컬한 처리는 선비의 또 다른 덕목인 유연함, 자유로운 정신세계, 풍유 등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겸재의 이런 심중은 인물의 자세를 통해 다시 한 번 함축적으로 나타난다. 인물을 보면 매우 여유롭고 편안한 자세로 그렸는데,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한 옷 주름이 편안한 느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머리에 쓴 탕건과 손에 쥔 부채는 아주 딱딱하게 처리했다. 이는 인물이 앉아있는 툇마루에서 또 강조되고 있다. 직선 속에 보여주는 나뭇결의 리드미컬한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선비는 감성과 이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 훌륭한 정치가들이 대부분 시, 서, 화에 능했다는 것은 그들이 참 선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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