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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고야 그림 품은 <프라도미술관>을 가다 ①F.D. 고야의 거대한 내면 초상화, ‘검은 그림’ 연작
고야, 검은 그림 연작, '운명' , 1820-1823, 123 x 280 cm

스페인 마드리드는 미술관 관람만으로도 의미있는 여행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원작이 있는 소피아미술관도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찾는 곳이지만, 나의 경우 먼저 찾았던 작품이 프라도미술관에 있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이다. 프라도미술관이 소장하는 고야의 작품은 130점에 이르는데, 화가의 창작활동 초기 마드리드에서 겨울의 왕궁 내벽 가리개로 사용된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린 시기부터 말년에 망명을 갔던 프랑스 보르도에서 그린 <우유 파는 아가씨> (1827) 까지 전시실 여러 곳에 그의 회화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이 엄청난 작품들 가운데 관람객의 발길을 가장 많이, 오래 잡아끈 작품은 그룹초상화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0), 마드리드에서 프랑스군에 대항한 민중봉기에 가담했던 에스파냐인 학살을 그린 역사화 <1808년 5월 3일>, 그리고 14편의 <검은 그림> 연작이 있는 별도의 전시실이다.

 

이성과 하나로 합쳐지면 상상력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가 되고 경이의 원천 이 된다.

                                             ”

 

프라도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 매표소 입구에 서있는 고야의 동상을 보게 된다. 언덕에 솟아있는 고야 동상은 인물화보다는 높은 대리석 받침대 위 기둥에 사면으로 빙 둘러 조각된, 고야의 회화와 판화작에서 따온 온갖 형상들에 더 눈길이 가는 조형물이다.

 'GOYA' 이름 아래 자유로이 누워있는, 당대 외설시비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던 <옷을 벗은 마야>, 이 형상 위로 1799년에 출판된 판화집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의 기괴한 날개달린 동물들과 악령이 날개를 펼치고 있고, 그의 출생년도 ‘1746’이 새겨진 측면 하단에는 이 판화집에서 유명한 자전적 성격의 그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의 모티프가 자리 잡았다.

카프리초스 43번,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동판화, 1797-98

 

 당시 이미 청력을 완전히 잃었던 고야는 『카프리초스』를 통해 왕실과 귀족들의 취향에 맞춘 주문화에서 그릴 수 없던,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험상궂은 마녀들과 마법의 세계를 상징하는 숫염소와 커다란 날개의 박쥐, 반인반수의 형상 등, 프라도에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동산>을 떠올리는 초현실주의적인 기괴한 형상들과 나란히, 당나귀와 원숭이로 우화시킨 멍청한 권력자와 이들에게 아첨하며 출세를 꿈꾸는 예술가, 술에 취한 탐욕스런 성직자들, 타락한 관리들, 성을 사고파는 젊은 남녀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이 판화집에서 풍자된다. 고야는 “이성에 버림받은 상상력은 있을 수도 없는 괴물을 낳는다. 이성과 하나로 합쳐지면 상상력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가 되고 경이의 원천이 된다” 말한다. 판화집 『전쟁의 참화』가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이를 동반한 상상력, 이는 여든 두 살까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창작한 고야의 다면적이고 독특한 예술세계에 관통하는 모토다.

 

 

 

 

예술가의 내면적 자화상 _‘검은 그림’ (Las Pinturas negras, 'Black Paintings')

 

프라도미술관 1층 특별실에 전시된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은 총 14점이다. 고희를 넘긴 고야가 중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소생한 후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리하여 일종의 ‘유서’로 보는 관점도 있지만, 노년과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예술가의 내면 자화상에 더 가깝다. ‘검은 그림’ (Las Pinturas negras, 'Black Paintings')은 고야의 사후에 이 연작 그림의 목록을 만들다 붙여진 것으로, 검은색만 사용해서가 아니라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검은 그림> 연작은 1820년에서 1823년 사이, 고야가 생애 처음으로 매입한 마드리드 근교의 정원 딸린 집, 일명 ‘귀머거리 집’에 그린 벽화다. 그가 사는 집안의 1층 식당과 2층 거실 벽에 바로 그린 벽화였는데, 진흙 벽돌에 회칠한 벽이어서 오십년이 지나 복원할 당시 손상과 마모가 심했다고 한다. 지금 프라도미술관에서 보는 <검은 그림>은 벽화에서 벗겨내어 캔버스에 옮긴 것으로 당시 프라도미술관의 복원가였던 역사화가 살바도르 마르티네스 쿠벨스 (1845-1914)의 손길이 여러 차례 닿았던 작품이다. 고야에 관한 거작으로 유명한 일본의 문인 홋타 요시에는 이런 복원과정을 거친 그림을 원화라고 보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복원 초창기에 촬영했던 사진들과 비교하여 원화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낸 것으로 평가한다. 나는 요시에의 책 『고야』 (전4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8)를 읽으며 그가 실증적으로 조사한 ‘귀머거리 집’의 벽화 배치와 작품의 시선 방향을 따라 “공상 속 미술관”을 천천히 구경했었다. 스페인의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이 고야의 작품세계를 영화적으로 해석한 <보르도의 고야>에서도 이 연작을 그리는 고야를 재현하는데, 한밤중에 촛불이 일렁이는 모자를 쓰고 벽화에 두텁게 물감을 바르고 어두운 심연에서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기괴한 표정의 무리(<성 이시도르의 순례>)를 손으로 만져지듯 생생하게 그리는 장면이다. 어쨌든 프라도미술관으로 옮겨진 이 그림들의 배치는 박물관의 전시공간이란 제약 때문에 고야가 그의 집에 그렸던 벽화의 현장감을 상상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원래 공간의 일층과 이층에 각각 일곱 점씩 그려졌던 그림들이 일층 전시실의 양쪽 벽에 벽면의 공간 사정에 맞춘 듯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색감도 상상했던 것보다 밝았다. 그래도 반가웠던 점은 전시실 입구 맞은 편 안쪽 정면에 연작의 <개>가 있고 좌우로 <두 노인>과 <운명>이 배치된 것이다.

 

 

 

고야는 자신의 내면을 남김없이 낱낱이 그려낸다. “상상력은 나의 내면에 있는 사악함을 관찰함으로써 제어된다.” 그의 이 모토가 완성되는 작품이 바로 이 <검은 그림> 연작이다.

          ”

 

고야, 검은 그림 연작, '개', 131x 79 cm

 

<개>는 비탈진 모래언덕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개가 여백을 노랗게 뒤덮는 격렬한 움직임이 말하듯 눈앞에 곧 닥칠 폭풍 같은 무엇을 예감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인터넷에서 찾은 복원 초창기 촬영된 사진과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현저하다. 사진에서 개의 눈앞에 버티고 있는 것은 연작의 <아시모데우스>에 그려진 것과 같은 거대한 바위산이다. 이로 인해 처음 이 그림에서 받은 인상이 좀 복잡해진다. 그래도 개의 눈동자가 눈가와 머리털처럼 밝은 색으로 처리된 것은 어딘가로 부터 빛이 떨어진 것이라 추측할 수 있고, 그러면 길을 잃고 어딘지 모르고 헤매는 이 가련한 존재에게 어둡게 드리워진 거대한 장애물과 더불어 이를 뚫고 나갈 한줄기 빛을 전망할 수 있게 한다.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에서 <사트루누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이 그림인데, 작가인 고야가 정말 이런 구원을 원했던 걸까. 말년에 늙고 병든 그를 보살펴 준 서른 두 살의 젊은 아내 레오카디아가 죽은 후에도 그의 무덤을 듬직하게 지켜주길 원했던 그림 <레오카디아>의 묘사를 보면 어쩌면 그랬을 수 있겠다 싶다.

 

고야, '운명'

하지만 그 옆에 걸린 <운명>이 훨씬 더 고야다운 결론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세 여신을 희화시킨 작품이다. 세 여신은 고야의 그림에서 기이하고 우스꽝스럽다. 운명의 길이를 재는 신은 이빨 빠진 합죽한 입에다 눈이 멀었는지 감은 눈으로 돋보기를 들고 있고, 운명의 줄을 끊는 신은 가위질을 해야 할 손가락이 잘리고 이상하게 굽어진 다른 손은 허공에서 허둥댄다. 아기 형상을 손에 쥔, 운명을 나누어주는 신은 여신 가운데 그나마 멀쩡하게 보이지만 무너진 어깨선 아래 두른 옷자락에 팔과 하체가 꽁꽁 묶였다. 이 세 여신들 앞에 양손이 뒤로 결박당한 인물이 끌려와있는데 죽음을 맞은 젊은 영혼이다. 하지만 상체의 윤곽선과 근육이 강건하고 드러난 한 발로 곧 박차고 날아오를 듯한 기세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이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는 자유를 말한다. 그림 전체적으로는 비장하고 암울한 톤이지만 왠지 낄낄거리며 운명의 신을 비웃는 화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신의 운명을 대하는 노화가의 태도가 호탕해서 나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두 노인>에서는 고야의 또 다른 자화상인 늙은 귀머거리 노인이 나온다. 악마가 옆에서 아무리 귀에다 대고 속삭여도 듣질 못하니 당연히 마음 흔들릴 일도 없다는 듯 얼굴이 태연하고 양손에 쥔 지팡이에 곧은 힘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제 아들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 첫 번째 아내 호세파와의 사이에서 스물넷의 자식을 낳았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하비에르, 같은 화가의 길을 걸었지만 행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 이 아들에 대해 아버지로서 고야가 가졌을 죄의식을 끔찍한 악몽으로 묘사한 이 그림까지, 고야는 자신의 내면을 남김없이 낱낱이 그려낸다. “상상력은 나의 내면에 있는 사악함을 관찰함으로써 제어된다.” 그의 예술의 모토가 완성되는 작품이 바로 이 <검은 그림> 연작이다.

 

류은희 객원기자 (독문학자,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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