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_종묘제례악_싱가포르 공연_@한국국제교류문화진흥원

국립국악원장 임명 논란, 뿌리와 상상력 사이에서

국립국악원장 후임 인사를 둘러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결정이 국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행정직 공무원의 임명을 추진하는 정부와, 국악계 출신 인사를 요구하는 현장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자리 다툼을 넘어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국악계의 오랜 화두와 맞닿아 있다.

뿌리 깊은 나무, 가지가 풍성하다

국악계가 이번 논란에서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뿌리’의 문제다. 국립국악원은 단순한 문화기관이 아니라, 한국 전통음악의 뿌리를 지키고 미래를 상상하는 거점이다. 국악계 원로들은 “국립국악원장은 상징적인 자리로서 존경받는 국악계 출신이 맡아야 하며, 부족한 행정력은 내부 행정직이 보완하면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단순히 인사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뿌리가 단단해야 가지가 풍성해진다는 믿음, 즉 국악의 역사와 장르별 특성을 깊이 이해하는 리더가 있어야만 진정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하다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국립국악원_행악과 보허자

‘콜라보’의 시대, 그러나 무엇과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오늘날 국악계의 화두는 ‘콜라보레이션’이다.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 새로운 레퍼토리의 창조가 연주자의 필수 역량이 된 시대다. 그러나 단순한 협업의 확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콜라보의 대상과 방법에 있어 종적 융합, 즉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가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국립국악원장이라는 자리는 바로 이 ‘뿌리’와 ‘상상력’의 결합을 상징하는 자리다. 

이러한 뿌리 찾기와 보존, 그리고 전승을 위한 학문적 인프라 제공은 국립국악원이 국립극장이나 다른 여타의 기관과 변별되는 매우 고유한 책무이다. 그간 이 업무를 담당해온 연구실을 없애고 공연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장악과에 연구 업무를 흡수시킨다는 계획에도 국악원 내부에서 상당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뿌리 찾기의 부실함을 초래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관치행정의 그림자, 그리고 국악계의 자존심

문체부가 대통령령을 개정해 공무원도 국립국악원장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점, 그리고 실제로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행정관이 후보로 거론된 점은 국악계에 깊은 불신을 남겼다. “국악 관련 경륜이 풍부한지 모르겠다”는 전임 원장의 말처럼, 국악의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에는 그만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 단순히 행정 효율성이나 인사 다양성의 논리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국립국악원 연구실_구술총서 발간

‘생존과 자유’의 경계에서

필자는 그간 음악비평의 역할을 “예술적 생존과 자유의 화해”로 보았다. 국립국악원의 국악 생태계를 일구는 역할 역시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립국악원 역시 생존(행정, 제도, 정책)과 자유(예술, 창조, 상상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국악계가 지켜온 자존심과 미래를 위한 창조적 상상력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계획이라도 적절한 때와 절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의료개혁 사례처럼, 해당 전문가들과 종사자들의 충분한 동의와 합의 없는 추진은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체부는 국악계와의 소통과 합의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다양성 논의와 절차적 정당성

문체부는 국악원장 자리를 특정 학교 출신이 독점해온 점을 지적하며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주장한다. 특정 학교를 넘어선 인적 구성의 다양화는 비단 국악계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요청되는 것이기에 일견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문체부의 이러한 문제제기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라도 국악원장 임명과 같은 중대한 사안은 차기 정부에 맡겨야 한다. 국악계 내부의 개혁과 혁신이 아래로부터 이끌어지지 않는 한 관치 행정의 위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같은 선상에서 개정된 대통령령 역시 차기 정부의 문화 정책 수립과 연동되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뿌리와 상상력, 생존과 자유가 교차하는 지점

결론적으로 국립국악원장 임명 논란은 국악계의 뿌리와 상상력, 생존과 자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계승하고 창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관치행정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국악계의 자존심과 창조적 미래가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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