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시청하던 TV 화면 하단에 ‘비상 계엄 선포’라는 속보 자막이 떴다. 잠시 뇌가 정지했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그래서 그 의미를 잊고 지냈던 단어들의 조합. 상황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떠 오른 생각은 오래 전, 그러니까 1938년 10월 30일 오손 웰즈의 연출로 CBS 라디오를 통해 송출되어 큰 소동을 일으켰던 <우주 전쟁> 사건이었다. 9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 그런 식의 깜짝 쇼가 한국에서 시작된 건가?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고, 자연스레 기억은 45년 전(그 때도 12월이었다)으로 건너 뛰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영화 관람을 위해 프랑스 문화원을 찾아 가고 있었다. 서울 시내 거리는 알 수 없는 침묵에 빠진 듯 공기가 무거웠고, 광화문 앞에는 탱크 두 대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낯설었다. 그 날의 공기는 정말 기묘한 느낌이었고 조금씩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공기의 세상이 느닷없이 내가 사는 세상으로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1.  안과 밖

어떤 이들은 예술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예술을 정치로부터 분리해내려고 했다. 또 한 부류는 종교 역시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술과 종교를 사회적 문제로부터 분리시켜서 외부로부터 차단된 무균실에 가두려 했다.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

예술과 종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들이 속한 사회적 상황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최근 개봉한 몇 편의 영화들을 관람한 관객들에게 현 시국 상황은 영향을 미쳤다. <시빌 워>는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의 상황과 비교되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 외에도 몇 편의 영화들이 비슷한 이유로 관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콘클라베>도 그 중 한 편이 아닐까 싶다. 영화 개봉 시기와 맞물려 전해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퇴행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관객들은 이 영화 속에서도 현실을 읽어내고 있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하지만, 때로 영화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선종(善終)으로 인한 바티칸의 분주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세계 곳곳에서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모여들고,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린다. 콘클라베의 어원은 ‘열쇠로 걸어 잠근 방’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왔다.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은 행사장 외부로 벗어날 수 없고, 외부와의 모든 소통이 차단된다.

그렇게 콘클라베가 시작된 공간은 온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고립된 성 같다. 그들만의 세계, 그들만의 사회. 외부를 차단한다는 것은 세상에 눈 돌리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순수한 마음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외부의 불순한 세균의 침입을 막기 위한 무균실 같은 공간. 외부를 향한 시선을 막기 위해 커튼을 치면서 그 공간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악은 어두움을 타고, 고립된 개인의 마음을 통해 침투한다. 아니 어쩌면 악은 인간 개인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환경만 조성되면 언제라도 발아할 준비를 하고서. 솔제니친이 말하지 않았던가?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은 인간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지나고 있다’고.

2. 빛과 그림자

외부로부터의 빛이 차단되면서 만들어진 영화 속 공간의 프레임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강조된 미장센을 만들어 낸다. 이런 빛과 그림자의 미학을 철학적 의미로까지 끌어올린 예술가들 중에서 카라바조, 드 라 투르, 렘브란트의 이름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들은 콘트라스 강한 조명을 통해서 주변 요소들을 흐릿하게 하고 인물 내면에 집중하도록 했다.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인공의 빛(대개는 촛불)은 불안하고 유한한 인간 존재의 내면 상태를 나타낸다. 진정한 구원의 빛은 프레임 밖으로부터 들어온다.

영화 초기, 그러니까 사운드도 칼라도 없던 시절의 영화는 스스로의 예술적 미학과 철학적 사고를 어떻게 전달했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 초기 영화 예술가들 중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의 감독들이 조명에 주목했다. 앞서 설명한대로 빛과 그림자가 강조된 화면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시절은 마침 표현주의 미술이 활발하던 시절이었고, 비슷한 예술적 지향을 가졌던 영화들에 대해서 평론가들은 표현주의 영화라고 불렀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의 1922년 작 <노스페라투>이다.

표현주의 감독들은 이후 헐리우드에서는 B급 영화로 통칭되는 호러, 스릴러 장르의 미학에 영향을 끼쳤다. 그 장르의 영화들은 자기 시대의 불안한 징후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든 미장센은 인간과 사회 내면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는데 탁월했다. 베르거 감독의 <콘클라베>는 스릴러 형식을 따른다. 고립된 공간(마치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처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추적하며 중요 후보들의 뒤를 캐는 로렌스의 모습은 마치 탐정의 모습과도 같다. 장르 특유의 전형적인 빌런은 없지만 로렌스는 그들 안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악의 계획을 찾아 봉쇄하고자 분투한다. 카메라는 스릴러 장르 특유의 어두운 조명과 쉘로우 포커스를 통해서 이러 저리 흔들리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악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이른바 ‘악의 문제’는 오랫동안 기독교 사회였던 서양인들을 사로잡았던 질문이었다. 그 곤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기독교의 대답은 신정론이었지만 모두를 설득시키기엔 궁색해 보인다.

계몽주의를 통과하기 전까지 서구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마을을 중심으로 바깥 세상에는 괴물이나 악마 같은 것이 산다고 믿었다. 그 시절의 선과 악은 분명하게 경계 지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교회는 선의 상징이었고 사람들 의식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혁명의 시대를 지나고 19세기를 통과하는 동안, 인간은 좀 더 풍부한 인문 과학 지식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시작했지만 그 바깥 세상에는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악의 실체가 없었다. 그럼 악은 사라진 것일까? 악은 이제 내부에 존재했다. 교회는 악의 근원으로 과학이나 철학등 새로운 학문을 의심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악은 이미 교회 안에도 있었다.

영화 <콘클라베> 속 성직자들은 모두 하느님을 말하고 선을 말한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그들은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각 인물들은 나름의 욕망을 품고 그 곳에 있다. 모든 악은 그 욕망으로부터 싹 터 오른다. <노스페라투>에서 뱀파이어 올록 백작을 불러들인 것은 엘렌의 욕망이었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에 비하면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는 이 부분에 좀 더 집중했다. 고립된 인간은 고독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불안한 마음 위에서 자라난 욕망이 악을 불러들인다.

콘클라베를 진행해야 하는 주인공 로렌스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신은 자유롭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최대한 공정하고 정의롭게 이 콘클라베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자기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두운 욕망은 강한 자기 확신과 신념의 그늘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로렌스는 자신이 이끄는 콘클라베의 결과가 실패로 끝나게 될까 봐, 자신의 확신과 신념이 무너질까 봐 불안하다. 그 불안한 틈으로 어두운 마음이 비집고 나온다.

어둠 속에서 감춰져 있던 욕망의 그림자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고, 고립된 성 같은 콘클라베의 공간에도 성직자들 사이로 몇 차례의 바람이 휘몰아치게 된다. 뱀파이어가 그렇듯이 인간이 욕망의 창을 열고 자신을 드러내놓을 때, 악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처럼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이제 로렌스도 공정한 진행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보다 큰 욕망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정당성을 획득한 로렌스의 욕망이 드디어 실체로 드러나려는 순간, 천장이 무너지고 그 균열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충격에 쓰러진 로렌스의 모습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하느님을 만나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사울을 떠올리게 한다. 한동안 세상과 고립되었던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의 빛은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3. 교회와 사회

교회 역시 사회의 일부다. 고립된 그들만의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교회 역사 속에서 바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점점 거세져왔고 교회의 불안함도 점차 증폭되어 갔다. 결국 교회 안의 불안한 일부는 자신들의 힘을 세상에 과시하고 싶어졌다. 교회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비명에는 정치불간섭을 이유로 외면했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이익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세상 곳곳의 참혹한 전쟁에는 눈감던 그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서는 세상과의 전쟁을 불사한다. 공교롭게도 그 싸움의 상대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회적 약자들이다. 불안한 성직자들에게 그들은 하느님의 윤리를 거스르는 자들이었고, 이 사회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악의 세력으로 여겨졌다.

외부로부터의 어떤 정보나 소식도 모두 차단되었던 공간에 외부로부터 가해진 충격과 함께 빛, 바람, 그리고 바깥 소식이 침투해 들어온다. 갑작스런 충격처럼 외부로부터 건너온 정보는 그 동안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각 개인의 사적인 관계와 경험을 통한 판단으로만 투표를 하던 추기경들의 생각을 혼란 속으로 빠뜨린다. 이제 문제는 개인의 윤리 같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상황은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문제까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교회 안은 평화로울지 몰라도 세상은 이미 전쟁판이다. 오랜 전통에 따라 교회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굳게 걸어 잠근 채 진행됐던 콘클라베 구성원들도 이제는 더 이상 바깥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과는 영화 후반부에서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쪽으로 갑작스레 흘러간다. 최선의 노력을 이끌어내고 싶었던 로렌스에게도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지켜 본 관객들, 특히 기독교인(카톨릭, 개신교 모두 포함해서)들의 반응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교회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 인가?

로렌스는 또 다시 새로운 불안감에 빠진다. 그런 그의 앞을 거북이 한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지나간다. 거북이는 교회다. 교회 역시 사회의 일부다. 교회이든 사회이든 하나의 생각만이 강요될 수는 없다. 지나친 자기 확신과 상대에 대한 적대적 배제야 말로 가장 위험하다. 다양한 사상과 생각이 공존할 수 있어야 그 사회나 조직이 건강해진다. 순간적으로는 뒤뚱거리며 더디 가는 것 같아도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가는 거북이처럼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어두운 상영관에서 밝은 바깥 세상으로 다시 건너왔다. 현실의 세계는 여전히 영화 속 세계보다 더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워 보인다. 극단적으로 갈라져서 상대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세상. 영화 속 로렌스가 추기경단장 기조 연설 씬에서 했던 말은 그래서 계속 기억에 남는다.

한요한 애니메이션 감독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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