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의 행차 음악 행악과 보허자를 재현하는 무대가 3월 13일과 1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은 2025 정기공연으로 <‘행악과 보허자 - 하늘과 땅의 걸음’>으로 실제 왕이 궁을 나서고 돌아오는 과정을 다채로운 연주를 통해 재현한다. 특히, 창사(唱詞)가 없는 보허자 3장을 500여 편의 한시(漢詩)를 입력한 AI 기술로 노랫말을 새로 지어 70여 명 가객의 합창으로 큰 울림을 전한다고 하니 궁금해진다. 정악단 이건희 단장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정악단의 첫 정기공연으로 <행악과 보허자-하늘과 땅의 걸음>을 준비하면서 <행악>과 <보허자>의 두 곡을 어떻게 연관지으셨는지요?

이번 공연은 왕실의 행차 음악인 행악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공연입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궁중음악은 종묘나 사직에서 드리는 ‘제례악’과 궁중 연향에서 펼쳤던 ‘연례악’등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동안 정악단에서도 제례악과 연례악을 중심으로 하는 공연을 많이 펼쳤습니다만, 행악을 주제로 하는 공연은 9년 전 선보인 이후로 오랜만에 관객분들께 소개합니다. 행악은 다른 궁중음악에 비해 기운이 넘치고 웅장한 멋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행악의 악곡을 단순히 연주하는 형식이 아니라 왕실의 출궁 시 연주하는 출궁악 부터 행차 중 진행하는 행악, 궁으로 돌아오는 환궁 시 연주하는 환궁악과 환궁 이후 연주하는 연례악까지 왕실의 행차 여정을 음악으로 펼쳐낼 예정입니다. 행악과 보허자로 이름을 붙여 연결한 것은 행악의 과정을 출궁악과 행악, 환궁악으로 설정하고 궁으로 돌아와 연례악을 펼칠 때는 보허자를 연주해 두 악곡으로 제목을 이어 붙여 공연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건희 정악단 예술감독이 <행악과 보허자> 공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감독님 취임 후 지난해 <영산회상> <사직제례악> 등 묵직한 정악의 진수를 보여주셨습니 다. 현재 정악단의 방향성과 비전에서 이번 <행악과 보허자>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정악단은 궁중음악과 풍류음악을 계승하고 있는 단체로 전통을 바탕으로 한 올곧은 전승을 그 방향에 두고 있습니다. 다만, 전통의 방식을 매번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선보인다면 정악은 박제된 음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정기공연은 1년 중 선보이는 정악단의 대표적인 무대로 이 시대 관객들에게 정악의 멋을 제대로 전할 소중한 기회입니다. 따라서 이번 <행악과 보허자>는 행악의 기품 있고 웅장한 멋과 다채로운 매력을 전하기 위해 전통의 멋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악기 편성의 추가와 편곡, AI 창작 도구 등을 활용하고, 공연에 연출적인 요소를 적용해 단순한 연주회 차원을 넘어서 한 편의 공연 작품으로서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행악>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입니까?

행악의 과정 중 행차 중 연주하는 ‘취타’와 궁으로 돌아왔을 때 연주하는 연례악인 ‘보허자’에 새로움을 더해 관객들에게 선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관악기 위주로 연주하는 ‘취타’는 정악단의 고보석 거문고 수석과 이명하 가야금 수석이 구성한 현악기 편성과 향비파와 월금 등의 악기를 더해 행악의 구성을 다채롭게 꾸미고 품격을 높였습니다. 또한 음높이가 다른 여러 개의 작은 징을 나무틀에 매달고 채로 쳐서 연주하는 악기인 ‘운라’는 취타 연주에만 간혹 편성되곤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대취타와 취타 두 곡에 모두 편성해 새로움을 더했습니다. 아울러 대취타의 연주는 주로 ‘무령지곡’ 등 일부 악곡만 연주하던 것을 이번 공연에서는 취타염불과 능게 계통의 부속곡 전곡을 연주해 행악의 정수를 전할 예정입니다.

공연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보허자’는 궁중연례악으로 연주된 곡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환궁 후 베푼 연례악으로 연주합니다. 현재 총 3장 구성으로 연주하는 보허자는 1장과 2장에는 노랫말인 창사(唱詞)가 전해지지만 3장에는 노랫말이 없이 선율만 전해지는데, 이번 공연의 대미를 장식할 보허자 연주의 화려하고 웅장한 멋을 전하기 위해 3장에 없는 창사를 AI 기술을 통해 창작하기로 하고, 효명세자의 한시 350편을 학습시키고 정약용과 김정희의 한시 100여 편을 대조군으로 설정해 새로운 창사를 지었습니다.

공연에 쓰일 최종 창사는 정악단의 음악적 검토를 통해 선정해 무대에서는 정악단 단원을 비롯해 국립국악고등학교 재학생 70여명의 가객이 함께 합창해 공연의 마지막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할 예정입니다.

- 정악의 심미적 음악은 대중들에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음악적 해석이 관객들에게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음악적 해석을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관객들의 이해와 흥미를 높이기 위해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적인 요소를 더했습니다. 김충한 무용단 예술감독님이 그 역할을 맡아 백성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궁을 나선 왕이 다시 궁으로 돌아와 잔치를 베풀며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스토리를 입혔습니다. 무대 위에는 왕의 역할을 맡은 무용수가 무대에 올라 행차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연출하고 음악의 전개를 이끌어 ‘행악’의 사실감과 연주의 몰입도를 높일 예정입니다.

- 보허자에서 AI 기술로 노랫말을 지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보허자 본래의 1, 2장 창사의 의미와 연결되면서 이 시대 정서와 부합하는 내용으로 3가지 주제별로(왕실의 번영/국민의 태평성대/국가의 영속) 구분해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3장의 노랫말은 아래와 같습니다.

[왕실의 번영]

행풍경불단장두 (行風輕拂丹杖頭)

춘기온윤충만지 (春氣溫潤充滿地)

연하함일출신광 (煙霞含日出新光)

희, 복임천하보획열 (噫, 福臨天下普獲悅)

가는 바람은 단장(丹杖)을 스치고,

온화한 봄기운이 드물지 않구나.

연기를 머금은 해가 새롭게 떠오르고,

아아, 천하가 모두 복 받으리

[국민의 태평성대]

천천년 토아향 (千千年吐雅香)

운무 표표 윤은광 (雲霧飄飄潤恩光)

천지 신령 제송덕 (天地神靈齊頌德)

추화 편우 조평강 (秋華遍宇兆平康)

백성 흔흔 동태락 (百姓欣欣同泰樂)

한환 궁궐 요유장 (閑歡宮闕繞幽章)

화기 융융 급만호 (和氣融融及萬戶)

억만년 장보 무강 (億萬年長保無疆)

천천년토하시길 은은한 향내 스며드는데,

구름과 안개가 가득 일렁이며 천지의 모든 신령들이 이 은혜를 기리네.

가을빛은 온 세상에 널리 퍼지며, 백성들은 모두 태평하리라.

한가로운 기쁨이 궁전을 감돌고, 조화로운 기운이 온 백성에게 미치네.

[국가의 영속]

만세 강영 어조공 (萬世降榮於朝貢)

천하 상망 기차원 (天下相望祈此願)

제단 봉헌 지영속 (祭壇奉獻志永續)

왕은 달어 태평성 (王恩達於太平盛世)

만세에 걸쳐 영광이 조공(朝貢)에 내리시니,

천하가 서로 바라보며 이를 기원하리라.

제단에 올리는 정성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임금님의 은혜는 태평성대에 달리리라.

- 올해 정악단의 정기공연 <행악> 외에 또 어떤 활동이 있을까요?

올해 정악단은 이번 공연 이후에 하반기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 우면당에서 기획공연 ‘필운대풍류’를 선보입니다. 올해로 4번째로 선보이는 필운대풍류 공연은 조선시대 풍류의 명소로 알려진 인왕산 자락 필운대의 운애산방에서 펼쳐진 풍류를 극으로 꾸며 무대위에 생생하게 구현한 공연으로 신분을 뛰어 넘어 조선후기 문화예술을 향유했던 다채로운 정악 레퍼토리들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정악단은 올해 첫 국악의 날 시행을 기념하기 위해 6월 7일과 8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선보일 <세종조회례연>에도 참여해 궁중음악의 품격과 화려한 아름다움을 많은 국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 정악의 매력을 전할 이번 <행악과 보허자> 무대의 특색이라면

궁중음악을 과거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신 기술인 AI와 접목해 이 시대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정악 공연 레퍼토리를 만들려 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맞는 정악의 외형적 확장을 위해서죠. 70여 명의 가객에 우리 연주단을 포함하면 100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하는 무대는 분명 웅장하고 멋진 공연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관객분들이 전통음악에 대한 긍지를 함양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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