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해줄게요: REMASTER_2025 창작산실-올해의신작

국내에서 최대 규모, 최다 장르를 만나 볼 수 있는 공연예술창작산실은 2008년부터 시작해 올해 벌써 17회를 맞이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의 지원사업으로 시작된 창작산실은 기초 공연예술 분야의 특성을 살린 단계별 지원을 통해 장르별 우수 창작 작품을 발굴한다는 목표다. 전통예술 분야 2024 올해의 신작은 <해원해 줄게요:REMASTER>, <남도 선소리-시를 읊다 ‘님이 침묵한 까닭?’>, <구라철사금:打>, <연희 물리학 ver1. ‘원’>, <돈의 신> 5개 작품이다.

전통예술은 지원사업분야에서는 비록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지만 실제 그 속성을 들여다보면 기악, 성악, 연희 등을 매우 다양하고 세부적인 분야들로 나눠지기에 특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창작산실 전통예술분야 올해의 신작들은 복합적이며 창의적인 연출 시도 등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돋보였기에 어떤 특정한 기준으로 각 작품을 논하기 보다는 작품에서 느껴졌던 예술적 아우라나 독창성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고민했을 법한 요소들을 가지고 평가하려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작품으로 브랜딩할 수 있는 완성도와 확장 가능성이다.

해원해줄게요

2N제곱의 <해원해줄게요:REMASTER>는 ‘원통한 마음을 푸는’ 한국 고유의 해원(解寃)의 정서를 정면으로 다룬다. 한국 고유의 씻김굿, 범패, 종묘제례악 등을 전통 해원음악을 통해 재창작하여 무대 위에서 작은 굿을 연행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소망과 바램 등을 활자 이미지와 음성으로 채우는 연출을 시작으로 두 명의 연주자가 다양한 악기와 소리를 나란히 하며 산자와 망자를 위로한다. ‘고’라는 매듭으로 채운 무대와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하얀 의상, 그리고 예술성 높은 음악 등을 통해 해원의 이미지를 증폭시켰고, 굿이 가지고 있는 즉흥성, 개방성, 현장성을 최대한 살린 연출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해원'이라는 주제에 맞는 적절한 연행 및 안무 퍼포먼스 등이 추가된다면 좀 더 완성된 종합예술로의 성숙을 기대해 본다.

남도선소리

아정컴퍼니의 <서의철가단의 남도 선소리 - 시를 읊다 ‘님이 침묵한 까닭?’ 중中머리에 대하여>는 친숙한 한국적 소재가 담긴 ‘근 현대시’를 사설로 활용하고, 여기에 남도 선율을 붙여 고유의 전통을 승화시킨 작품이다. 연행 방식에서 현대적 감각의 미니멀한 확장을 모색하였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미니멀한 현대적 감각의 무대는 화문석이 깔린 풍류방의 전통과 그대로 맞닿아 있었다. 간소한 무대, 무채색인 미색 의상과 소품, 조명 등 간결한 이미지를 통해 한국적 사유와 철학이 지향하는 소박미가 채우는 온전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남도 선율의 소리꾼들이 부르는 한국 근 현대시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서사적 요소가 추가된다면 좀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연출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작년에 젠더프리 캐스팅의 <살로메>에 이어 이번 작품 역시 연출 및 일곱 소리꾼들 모두 남성으로만 이루어졌는데, 이런 캐스팅을 통해 공연계와 대중들은 새로운 흐름과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듯하다.

구라철사금

윤은화의 <구라철사금(歐羅鐵絲琴) : 打(타)>는 양금이 가진 한계성과 경계를 허물고 양금의 타악기적 특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전통음악의 풍류방이나 일부 궁중 음악에서 사용하던 양금의 역할과 한계를 허물고 양금이 가진 ‘가장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시하면서 사물놀이를 이끄는 주체적인 악기로 변모시켰다. 신천년만세나 양금굿, 양금 시나위 등 전통을 재해석한 곡을 비롯하여 락 음악의 베이스를 둔 창작음악 작업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양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작곡된 곡의 성격과 연주에 따라 영상, 조명 등으로 무대 이미지를 다각적으로 연출하여 곡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 점, 그리고 속도감과 파워의 극대화를 통해 양금의 타악기적 성격을 잘 보여준 점은 탁월했다. 다만 연주자들의 규모나 영상스케일에 비해 극장이 다소 협소하여 충분한 공간 활용이 아쉬웠다.

연희물리학

임영호의 <연희물리학 ver.1 ‘원’>은 그동안 악기에 가려져 있었던 전통 연희의 신체미학을 물리학적 관점으로 해석해 보자는 시도가 참신했다. 프롤로그부터 시작하여 에필로그까지 현대물리학과 연희적 상상력이 결합한 새로운 연출과 안무가 돋보였고,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의상, 안무, 소품, 작곡 등의 조화가 탁월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얼과 신명’ 등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여 무대 장면으로 연출하여 구현한 시도는 새로웠다. 예술의 동시대성과 다양성, 수월성, 실험성 등 창작산실이 추구하는 공연예술의 지향점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오금의 본질을 찾기 위한 상쇠의 여정이라는 테마 안에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대사와 텍스트가 관객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연희물리학 ver.1 ‘원’을 시작으로 연희의 다양한 속성과 여러 학문이 만나는 지점을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레퍼토리의 후속 작품을 기대한다.

돈의 신

우리소리 바라지의 <돈의 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주제인 돈의 의미 및 가치 등의 화두를 던진 작품으로 연기자와 연주자의 경계가 없고, 주요 배우들이 두 가지의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주는 개방적인 멀티 형식의 작품이다. 

창극 안에 다시래기, 판소리, 소리북과 기악 합주, 창작곡 등을 함께 넣어 다양한 시도를 통해 다채로움을 보여주었다. 전통 소리가 중심이 되어 굿과 연희 등 종합예술을 바탕으로 전통의 예술성을 지키며 형식을 새롭게 재창조 하였다. 창극이지만 배우와 관객 사이의 즉흥적인 소통이 일어나는 마당극 연출도 가미되어 관객의 눈높이로 유쾌한 호흡을 함께할 수 있었던 점이 훌륭했다. 돈이 소재가 된 만큼 다양한 연출을 통해 돈이 가지고 있는 좀 더 입체적이며 다각적인 측면의 메시지를 주었으면 더 좋을 듯하다. 연기뿐 아니라 소리, 기악, 연희를 아우르며 다양한 모습을 보였으나, 악사의 위치가 무대에 차지하는 공간이 커 무대 연기나 안무를 하기에는 무대 운용이 제한적이었다.

‘전통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활동 중인 문화적 힘’이라고 했던 영국의 문예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렇지만 전통예술 작품을 만들 때 현대적 트렌드만 의식하여 상징적인 부분들을 지나치게 내세움에 따라 자칫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무대언어가 된다면 관객들과의 소통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공연예술창작산실이 매년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통예술의 대표 작품들은 특히 이런 우려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창작자들이 전통예술 공연에서 보완해야 하는 고민들이 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선 전통예술 전문 공연 연출가의 발굴 및 육성이 필요하며 전통예술분야의 창작자들도 개인의 예술이기보다는 무대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넓은 안목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의 공연예술창작산실이 전통의 예술성과 미학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화두와 볼거리를 제시하는 팀들을 계속 발굴해 주길 바란다.

신정혜 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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