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단체장이 부임 후 첫 작품을 할 경우, 단장으로선 고민이 깊다. 서울시무용단 지도위원, 익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박종필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취임 기념 및 정기공연 으로 자신의 장기와 예술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

2024년 12월 4일, 천안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의 <춤·터> 무대다. 통상 첫 공연은 대극장에서 창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예술감독과 총안무를 맡은 박종필 선생은 소극장에 주목했다. 전통에 중심을 두되 창작이 투영된 작품이란 특질을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국가무형유산 승무, 살풀이춤 이수자로서 전통춤에 대한 깊이, 직업무용단 등에서의 오랜 창작춤 경험과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객석에 깊은 여운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실력 있는 대본작가와 작곡자, 연출가, 악장 등 중 각 파트별 스태프와 기량 좋은 천안시립무용단 단원, 은혜량, 남기희 등 객원 무용수들이 하나 되어 일군 춤의 터였다.

이 작품은 ‘살풀이춤’, ‘덧배기춤’, ‘한량무’, ‘승무’를 각 장에 중심으로 배치한다. 그리움, 흥, 풍류, 염원 등 감정선을 자극하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서사성을 높이고자 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고통받는 여인들의 모습이 시선을 부여잡는다. 역사 속 인물들이 3면의 영상에 새겨진다. 역사가 춤이 된 순간이다. 남녀 12명의 군무가 일렁일 땐 창작성 가득하다. 1장에서의 방점은 홀로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상을 어루만진 후, 창작춤이 전통춤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애잔한 음률 속 전통 살풀이춤이 깊고도 깊다. ‘기억 저편의 아리랑’이다.

비트 있는 음악 속에 현대춤이 먼저 시작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정가소리(정승준) 아정하다. ‘농부가’ 한 자락에 박종필류 덧배기춤이 한껏 고개를 든다. 일사불란한 군무가 흥을 부른다. 자진모리 부분에선 객석의 박수소리 높다. 세상을 향해 포효한 민(民)의 숨소리, ‘대지의 불꽃’이다.

정가소리가 무대에 깔린다. 학 한 마리가 난다. 박종필 예술감독이 부채를 드는 순간 한량 그 자체가 된다. 공력 있는 발디딤, 자신의 스타일이 담지 된 박종필류 한량무다. 마지막 장면에선 학처럼 여운 있게 마무리한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전통 승무가 장삼자락을 뚫고 나온다. 깊이 있는 춤맛을 드리운다. 이어진 창작 승무는 전통 승무가 지닌 기호성(記號性), 메타(meta)성을 배가한다. ‘반야의 염원’이 웅숭깊다. 세월을 보듬고, 시간을 길어 올린다.

이번 공연은 전통춤이 지닌 깊이, 맛과 멋을 근간으로 하되 전통과 창작이 무대에서 주고받는 구조다. 전통 갈라(gala)가 아닌 서사(敍事)가 작품에 충분히 녹아들어 이매방류, 박종필류 전통춤의 정수와 컨템포러리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춤·터’가 뜻하는 바는 전통춤이란 ‘터’에 ‘춤’을 더한다는 의미다. 동시대적 춤정신의 예술적 구현을 높이 평가한다. ‘오늘의 전통춤 무대’다.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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