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물리학_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하지영

연희물리학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 주홍미, 김승국, 강주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희물리학 ver.1 ‘원’>(이하 ‘연희물리학’)의 반응이 뜨겁다. (2025.2.14~2.16, 구리아트홀 코스모스대극장) 공연예술계의 중진과 원로의 평을 옮겨 본다.

공연기획자 주홍미(前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는 ‘연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이자 해석’이라고 한 줄로 평했다. 이에 더해서 ‘움직임에 관한 연구, 현대적인 사운드, 미니멀리즘 요소의 주체적 차용’을 주목하면서 ‘탐구의 흔적’이 공연을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주홍미가 본 ‘연희물리학’은 의미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킨 공연인 셈이다.

문화행정가 김승국(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은 ‘세상과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고자 하는’ 연희물리학의 기획을 높이 평하면서, "연희의 예술적 표현양식과 물리학적 원리를 융합함으로써 전통예술을 현대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했다"고 극찬한다.

김승국의 리뷰 중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희물리학’의 무대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매우 세련되었다. 익숙한 전통예술을 무대에 가져와서, 매우 세련된 ‘동시대성’의 콘텐츠로 보여주었다. 21세기 전통예술이 지향하는 ‘전통성’과 ‘동시대성’의 융합을 이뤘다.

한 사람의 평을 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전통예술’ 다섯 공연을 모두 보았고, 매우 예리하게 촌평(寸評)했다. 부산을 지역 기반으로 우수한 공연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강주미(공연기획자. 춤꾼)는 비교의 관점으로 이 작품의 특징을 이렇게 묘파했다. 우리소리 바라지의 <돈의 신>이 ‘감성 위를 지배하는 묘한 이성’이라고 한다면, 임영호 연출의 <연희물리학>은 ‘이성과 감성 사이의 묘한 공백’이라 했다.

강주미는 작품과 적절한 거리감을 두면서 객관적인 평을 했다고 느껴진다. 이 평에서 주목할 건 ‘이성과 감성 사이’다. 연희와 물리학이라는 언뜻 생각하면 접점이 없을 것을 찾아내서, 둘을 연결한 작품에는 이성적 측면과 감성적 측면이 적절하게 연결되어 있다.

‘원리와 방식’ 혹은 ‘과학적 개념과 무대적 표현’의 상생

나는 어떻게 이 작품을 평해야 할까. 사흘간의 공연이 끝난 후, 임영호의 SNS 글을 옮겨본다.

‘돌아보니, 이건 그냥 내 이야기가 아니라 외줄 위에서 끝까지 버틴 연희자들과 예술인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임영호에게 그렇듯이, <연희물리학>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대로 ‘줄타기’였다. 줄을 타려면 줄꾼이 몸을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모두 움직여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줄에서 떨어진다. 연출 임영호는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줄을 잘 건넜다.

'양가적(ambivalent)'이란 개념이 여기에 등장할 필요가 있다. <연희물리학>의 성공은 양가적인 것의 포용에 있다. 임영호가 연출한 <연희물리학>은 연희를 물리학과 연결했다. 그러면서 다음의 양가적인 게 따로 존재하면서 절묘하게 공존했다. ‘전통성과 동시대성’이라는 양가적인 개념이 ‘이성과 감성’이란 범주 안에서 공존했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 안에 발견해야 할 건 무엇일까. 이 작품을 만든 임영호를 비롯한 창작자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답을 구한 게 보인다. <연희물리학>의 밑바탕에 흐르는 중요한 사실은, 과학적 개념과 무대적 표현과 관련해서 ‘원리와 방식’이 매우 적절하게 상보(相補)하면서 상생(相生)해나갔다는 점이다. 평론을 직업으로 하는 나로선 이러한 치열함을 매우 높이 평해야 한다. 

<연희물리학>의 내 한 줄 평은 이렇다.

연희작품의 역사적 흐름과 <연희물리학>의 변별성

<연희물리학> 창, 제작진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어 크게 손뼉을 친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연희 공연과 차원이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 21세기의 사반세기가 지난 2025년. 지난 20세기와 완연하게 구별되는 연희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연희는 어땠는가. 돌이켜보면 모두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을 그 시대의 연희자들이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기에, <연희물리학>과 같은 작품도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1978년 사물놀이 등장 이후, 연희 공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큰 줄기의 맥을 살펴보자.

1980년대는 리듬! 사물놀이는 삼도농악의 장단을 가져와서, 앉는 반의 공연을 통해서 전통예술 장단의 매력을 십분 살려냈다.

1990년대 초반은 크로스오버! 사물놀이의 인기와 함께 타 장르와의 만남이 다양하게 이뤄졌다. 클래식, 재즈와의 사물놀이(농악)의 만남이 빈번했다. 이 시기 사물놀이의 내부에서는 무속 장단을 가져와서, 한국의 전통 리듬의 특성을 극대화해 나갔다.

1990년대 중반은 넌버벌 퍼포먼스! 미국 중심의 이런 유행을 타고, 한국에선 ‘난타’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고, 서서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는 연희극! 대학을 중심으로 연희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연희의 인재가 다수 배출된다. 연희분야의 기성세대는 이들과 함께 연희극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는 1990년대와 다르게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연희극은 전통예술의 가, 무, 악을 포용하면서 연희극만의 독특한 양식을 지향했다.

2010년대 전반은 연희그룹 전성시대! 이제 그들은 그들 세대만으로 작품을 만들기를 원했다. 도제(徒弟)의 범주에서 탈피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연희그룹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대학 연희과 출신의 선배라 할 '더광대'와 '청배'를 시작으로 많은 연희그룹이 활동한다. 연희그룹의 춘추전국시대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2010년대 후반은 ‘굿’과 ‘탈’ 기반의 작품 계발! 2010년대에 국악 분야에서 두드러진 경향은 ‘굿’을 바탕으로 한 공연물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전통탈춤의 범주에서 벗어난 창작 기반의 탈춤공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탈’을 중심으로 한 공연 형태의 외연 확장을 주목해야 한다. 

‘천하제일탈’이 그 대표가 된다. 어느 공연에는 탈춤의 ‘춤’을 부각하면서 새로운 놀이판을 만들어가고, 어느 공연에선 탈춤의 ‘탈’을 소재로 해서 연극성에 충실한 공연을 만들어낸다. 

2020년대 초반, 지금 연희에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건 역시 ‘탈춤’ 관련 공연물이다.

대한민국 연희는 시대를 달리하면서, 그 시대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공연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공연물에는 모두 저변에 흐르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물놀이 출현 이후에도 연희가 강조한 건 늘 ‘공동체성’이다.

민중적인 신명을 전제로 해서 ‘풍자와 해학’의 가치관을 이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그들의 의식 속에는 이런 요소가 매우 강하게 작용했다. 때론 연희의 내용적 새로움을 위해서, 외국 유명작품을 가져와 연희로 풀어냈다. 그러한 작품에서도 앞의 요소가 일정 부분 존재하며, 또한 그런 게 연희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애써 강조하기도 한다.

21세기가 시작되고 4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런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적 연희의 가치’가 ‘21세기의 연희의 가치’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연희 공연물은 가시적(可視的) 측면에선 과거의 연희와 매우 다르다. 그러나 가치적(價値的) 측면에선 지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참 많다.

<연희물리학>은 어떻게 다른가. 

연희작품의 ‘신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뭘까. <연희물리학>은 ‘공동체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이 작품에는 흔히 연희에서 보는 모든 출연자가 결국 나중에 가선 거의 같이 움직이는 집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연희물리학은 이렇게 한 마디로 말 할 수 있다.

형식은 거부, 원리는 추구 : 임용주, 양한비, 남창동

<연희물리학>에는 세 명의 천재가 있었다. 나는 왜 그들을 천재(天才)라고 자신하며 부를 수 있을까? 세 사람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건 형식을 따르거나 형식을 만들기보다는, 원리를 추구하고 그를 통해서 사유하고자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의 임용주, 안무의 양한비, 줄타는 남창동이 모두 그랬다.

임용주가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의 두 분야에서 모두 포용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알려져 있다. 모듈러신스를 잘 다룬다. 전자장구라는 악기를 등장시켰다. 전자장구를 활용해서 전통적 연주기법을 수용하면서도, 여기에 매우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사운드를 덧입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서 임용주만의 아주 매력적인 사운드를 창출한다.

테리 라일리의 C(도) vs. 임용주의 기덕(장구)

<연희물리학>이 다른 연희작품과 확실하게 다르다는 걸 알리는데, 임용주의 음악이 큰 몫을 했다. <연희물리학>을 미니멀리즘 음악의 범주로 보았을 때, 테리 라일리(Terry Riley)의 ‘In C’ 와 비교해서 나는 임용주의 음악을 ‘기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연희물리학>의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전통음악에서 장구의 채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기본적인 소리인 ‘기덕’이 반복된다. 테리 라일리의 음악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두드리는 C(도)를 통해서 끊임없는 채움을 경험한다.

테리 라일리의 방식이 ‘채움의 미학’이라면, 임용주의 기덕은 ‘비움의 미학’이다. 기덕이 반복되면서 뭔가를 채우려 하거나, 애써 긴장감을 유도하지 않는다. <연희물리학>에서의 ‘기덕’은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는 의식처럼 들렸다. 기덕을 통해서 계속 불필요한 것이 사라지거나 비워지고, 그 기덕을 통해서 새로운 사유가 채워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테리 라일리가 C라는 음정을 반복하는 것과 임용주가 기덕이라는 리듬을 반복하는 것은 매우 비슷한 듯 다른 효과로 다가왔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두 사람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기존의 형식 또는 지향적 목표를 지양하면서 본질적 원리 혹은 자유로운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양한비의 비무비희(非舞非戱) : 무용수, 진자가 되다

비무비희 (非舞非戱). <연희물리학>의 안무는 단언(斷言)하면 이렇다. 무용을 향한 것도 아니고, 연희를 향한 것도 아니다. 그러했기에 이번 공연의 안무는 성공했다. 이런 공연에선 ‘움직임을 위한 움직임’은 없었다. ‘움직이는 방식을 드러내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움직임의 원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만이 존재했다. 양한비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딱 이 한 줄로도 충분하다.

그러함에도 뭔가 부연(敷衍)한다면 무용수가 마치 어느 부분에선 진자(振子, pendulum)가 된 듯 보였다. 그러다가 무언가 외부에서 다른 힘이 가세하게 되면서 또 다른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움직임의 바리이에션은 의상이 또 한 몫을 했다. 최인숙의 의상을 주목할만하다. 상의 뒷부분을 뭐라 부르는 게 좋을까. 마치 오색부채와 같았다. 옷에 부채가 달려있는 것 같다. 연희자의 움직임에 따라서 부채처럼 펴지는 듯한 곡선이 좋아 보였는데, 이 공연이 지향하는 ‘원’의 또 다른 변주였다.

오래전 양한비가 춤을 시작할 때, 그의 스승은 ‘발바닥은 악보, 무릎은 악기’라고 얘기했다고 하는데, 양한비는 분명 움직임의 원리를 시작으로 해서 외부 환경의 영향을 통해서 움직임이 어떻게 전이(轉移) 되는가를 매우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무대에서 그려냈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이해 정도가 깊을수록, 타인을 향한 설명은 쉬워진다는 말이 있다. 양한비의 안무가 딱 그랬다. 양한비를 통해서 연희적 움직임은 ‘흥이 나서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재주’가 아니라는 걸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페르소나 남창동, 줄 위에서 눕다

<연희물리학>은 매우 매력적인 요소가 많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흥미가 발견되고, 또한 자기 스스로 해석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어느 줄광대’ 혹은 ‘줄타기꾼 남창동’의 시점으로 보았다.

<연희물리학>이란 공연이 줄타기꾼 남창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줄 위의 남창동은 연출자 임영호의 페르소나(persona)였다. 앞에서도 말했듯 <연희물리학>은 연희공연에서 보기 드문 ‘1인칭 시점’이었다.

10세때 사물놀이를 접한 임영호는 고등학교 시절엔 풍물을, 대학에선 무용을 전공했다. 30년 동안 전통예술계에서 연희자로 출발해서 연출자로 활약했다. 그간 ‘땅 위에서’ 연희와 무용을 했던 그는 어쩌면 자신의 이런 기예 혹은 자신의 기예를 가능하게 했던 모든 사유를 이제 ‘줄 위에서’ 펼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꿈 혹은 공연적 판타지를 남창동은 무대에서 너무 잘  표현해냈다.

흔히 보기 어려운 쌍줄타기도 볼 수 있었다. 줄타기에선 재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재담없는 줄타기에선 오직 무브먼트(남창동)와 사운드(임용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줄타기와는 다른, 예술적인 줄타기를 보았다고나 할까.

나는 특히 여기서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 그건 불과 몇 초에 불과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 오래도록 그럴 것 같다. 줄 위에서 고난이도(高難易度)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관 또 다른, 깊은 울림이었다. 남창동이 여러 기예를 보여준 이후, 줄 위에 눕는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줄광대가 줄에는 눕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순간 눈물이 핑 도는 뭉클함을 경험했다.

난 그간 연희가 웃음과 즐거움을 너무 강요하는 게 마땅치 않았다. 예술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슬픔’이 있어야 하는데, 연희는 그렇지 못한 게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으론 그런 언동은 삼가야겠다.

공연예술 창작산실의 네 가지 추구 : 동시대성, 다양성, 수월성, 실험성

해마다 공연예술창작산실을 통해 좋은 작품을 만난다. 공연예술창작산실은 ‘예술의 동시대성과 다양성, 수월성, 실험성을 지향하는 우수 신작을 발굴하기 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 공연제작 지원사업’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경우는 꽤 많지만, 때론 ‘공연예술 창작산실’에 딱 부합하는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의 문장을 바탕으로 창작산실이 지향하는 바가 네 가지 요건이라면, <연희물리학>은 이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 먼저 수월성과 실험성을 살펴보자. 21세기의 수많은 연희 공연을 쭉 펼쳐놓고 파노라마처럼 복기했을 때, <연희물리학>은 수월성과 실험성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연희를 전혀 새로운 사고를 기반으로 공연을 만들었음에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다. 안에서 ‘쌍줄타기’의 연희와 ‘거울사자’와 가면을 통해서 기예적측면과 도구적 측면에서 진일보(進一步)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사운드와 무브먼트에서 모두 실험적인 도전이 있었고, 그것이 연희에 대한 고정적인 시각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동시대성과 다양성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지 모른다. <연희물리학>이란 작품 안에서 전통연희의 다양한 요소를 잘 녹여낸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이런 작품이 없었던 바 연희작품의 다양성을 통해서 연희의 외연을 넓히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다.

대한민국 연희, 1985년생을 주목하라!

<연희물리학>을 통해서 연출로서의 임영호를 다시 평가하게 된다. 임영호는 1985년생이다. 1985년은 사물놀이가 한참 국내와 해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다. 특히 1990년대에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방과후 수업’ ‘방과후 놀이교실’을 접한 세대가 임영호 세대다. 그들 세대는 국악의 조기교육을 접한 세대다. 특별히 ‘국악’이기에 좋아할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의 강요로 국악을 선택한 세대도 아니다.

이런 세대로 성장한 그들에 하나의 성공사례가 임영호 그리고 그런 결과물이 <연희물리학>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예술을 조기교육으로 접한 그들 세대가 30년간을 꾸준하게 이어오면서 만들어낸 성장사(成長史)가 <연희물리학>이다.

연희물리학은 한국교육이 주입식교육에서 벗어나서 실험과 실습을 강조하면서 터득한 세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임영호의 이번 작품의 전개방식을 내 나름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상모라는 도구의 원운동을 만들어낸 인체의 움직임(오금)을 주목하면서, 인간의 신체를 통해서 만들어낸, 또 다른 원운동인 연풍대(자반뒤집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놀이를 실험처럼, 실험을 놀이처럼

임영호가 이 작품을 <연희물리학 ver.1 ‘원’>이라고 명명한 이유를 나는 그렇게 본다. 이 작품 안에는 여러 형태의 ‘원’과 ‘원운동’이 존재하고, 그것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형태로 전이(轉移)된다.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체육시간과 같은 ‘놀이’가 아니라 과학시간과 같은 ‘실험’이다. 조금 말을 바꾸면, 체육시간에 오히려 과학적 진실을 알게 되고, 과학시간에서 오히려 놀이적 오락을 즐긴다고나 할까.

<연희물리학>은 ‘과학적 실험’과 ‘연희적 실습’이 결국 같다는 걸 행간을 통해서 알려준다. 말을 바꾸면 놀이를 실험처럼 하고, 실험을 놀이처럼 한 결과믈이 <연희물리학>일 수 있다. 이런 사실 등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 작품 <연희물리학>이 알려준 ‘연희의 가치’는 이렇게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임영호, 축(軸)의 연출가

임영호는 어떤 연출일까. 그를 축(軸)의 연출가라 부르려 한다. 축은 ‘수레바퀴의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에 끼우는 긴 나무 막대나 쇠막대’를 말한다. ‘둘둘 말도록 되어 있는 물건의 가운데 끼는 막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축은 ‘활동이나 회전의 중심’을 지칭한다.

축은 한 자리를 지키면서 중심이 되는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건 축이 아니다. 계속 움직여야 그게 축이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 같지만, 늘 중심을 지키면서 움직이는 게 축이다. 여기에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축은 늘 중심이 되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심을 잃지 않으면 돌고 있는 가운데, 그것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대로 찾아간다는 점이다. <연희물리학>은 임영호가 축이며, 축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나는 여기서 <연희물리학>에 관련해서 임영호에 국한되어서 얘기를 했지만, 이건 임영호와 같은 85년생에게 적용될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85년생과 그 전후애 태어나서 사물놀이를 연희로 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연희를 연구와 탐구의 대상을 생각했던 세대들의 매우 바람직한 특정이라고 생각한다.

<연희물리학>, 21세기 연희의 텍스트와 레퍼런스가 되다.

지금까지의 연희작품은 모두 텍스트와 레퍼런스가 있다. 그것이 전통이거나 서구이거나, 국내의 고전에 바탕을 두거나 서구의 고전에 바탕을 두거나 모두 기존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기존의 어떤 공연을 레퍼런스로 삼아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갔다. <연희물리학>은 어떤가.

연희물리학_임영호

연희물리학의 텍스트는 무엇인가. 연희물리학의 레퍼런스는 무엇인가. 기존의 텍스트도, 기존의 레퍼런스도 발견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 혹은 자기 주변이 텍스트가 되고, 레퍼렌스가 되었다. ‘자신’이 텍스트이고, ‘친구’가 레퍼런스라는 말이 가능하다.

<연희물리학>은 역사에서 가져오거나, 외국에서 가져오지 않고, 나를 중심에 두고 주변을 포용하면서 하나의 독특한 콘텐츠를 완성했다. ‘사고의 전환’이 앞으로 연희의 가치를 확산하고, 연희작품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연희물리학>은 이제 앞으로 새로운 연희작품의 탄생을 위한 ‘넘어야 할 산과 같은’ 텍스트가 될 것 같다.

<연희물리학>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희에 숨겨진 ‘과학(과거)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서 ‘연희(현재)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이번 작품을 만들어낸 창,제작진은 전무한 콘텐츠를 통해서, 연희공연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연희물리학> 이후는 어떨까 벌써 궁금해진다. 앞으로 연희계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은 ‘연희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어떤 것’을 중심에 둘까. 아직 그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연희의 미래’가 밝다는 건 분명하다. 현재 실재하는 연희자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미래의 연희’를 긍정적으로 기대하게 된다.

“<연희물리학> 이후, 누군가가 새로운 방식으로 ‘연희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리라”

윤중강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