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 칼럼] ‘마음 열리는 춤’을 추다 간 김기석의 五十人生

김기석 1975.4.30- 2025.1.31

대한민국의 중견 춤꾼이 세상을 떠났다. 김기석은 전주대사습 명인부 장원을 했고, 오래동안 대전시립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에 많은 지인이 놀랐다. 그를 추모하는 자리에 전국의 여러 곳에서 무용인이 모였고, 슬픈 마음을 추스르면서 그를 잘 보내주었다. 그를 조금 아는 나로서, 생전 고인의 춤정신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게 도리겠다.

1995년 동아국악콩쿠르의 신화

김기석이란 이름은 언제 널리 알려졌을까? 그가 스물을 넘긴 1995년이다. <제11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전통무용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그를 1등으로 뽑았다. 이애주, 박재희, 정승희, 김정녀, 김진홍. 개성 강한 심사위원 모두에게 두루 인정받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건 당시 그의 춤이 아주 탁월했다는 걸 증명한다.

김기석은 원래 판소리로 국악에 입문했다. 무용으로 전향하면서 임이조 명무를 만났다. 그러다가 큰 대회의 입상 후 최창덕 명무에게 가게 되었다고 한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일찍이 가무악(歌舞樂)을 두루 넘나들면서 익힌 셈이다. 김기석의 후임으로 군생활이 겹쳤던 서수복(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악장. 타악)은 ‘소리도 잘하고 장구도 잘치고 만능’으로 그를 기억한다.

김기석은 충남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전시립무용단 단원으로 일찍이 활동했다. 20년 전 당시 대전시립무용단은 한상근 예술감독이었다. 2004년 12월 11일, 당시 대전시립무용단은 남성춤 5인전을 기획했는데, 이 무대에서 김기석이 춘 ‘무산향’을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師弟 : 김묘선과 김기석

스승 김묘선과 제자 김기석. 전국의 많은 무용인이 참 잘 알고 ‘아름다운 사제(師弟)’이다. 김묘선은 1994년 충남대학교 1학년 김기석이 국립국악원 콩쿨에 나와 살풀이춤을 추는 걸 처음 보았다. 그 당시 김묘선은 한국과 일본의 두 나라를 오가며 활동했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제 관계가 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계속 이어졌다.

김묘선과 김기석이 ‘사제의 연(緣)으로 굳건해진 건 2019년. 김기석은 춤의 방황을 거치면서 스스로 기량이 많이 떨어진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스승은 김기석은 전통춤에 굶주렸고 어둡고 우울했던 걸 잘 알고 있다. 제자 김기석은 스승 김묘선의 가르침을 따르며 온 마음을 다해서 전통춤의 세계로 다시 깊게 빠져들었다. 김기석은 점차 예전의 기량도 회복하고 성격도 밝아졌고,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모습을 보는 스승 김묘선도 한국전통춤의 큰 희망을 보았다.

學, 德, 情, 興의 넷을 갖춘 춤꾼

2024년 1월 12일, 국립정동극장 신년음악회’에서 <사풍정감>을 선보였다. 이인태, 김기석, 이규운, 정현도, 이정제 5인의 무대였다. 사풍정감은 이매방류 한량춤이다. 김기석하면 우선 <사풍정감>이 떠오른다. 사풍정감은 “學과 德을 고루 갖춘 고고한 젊은 선비도 때로는 情과 興의 운치에 즉흥적으로 젖어든다는 선비의 내면세계를 춤사위로 표출시킨 남성적인 기품이 살아있는 춤”은 이렇게 해설한다. 김기석은 넷을 두루 갖춘 춤꾼이다.

김기석은 학(學)의 춤꾼이다. 직업무용단에서 창작춤 활동하면서도 늘 전통춤의 수련에 정진을 했다. 그는 살풀이춤, 사풍정감으로도 유명했지만, 특히 승무를 잘 추고 마음이 컸다. 불교적인 삶의 도로 살아온 그에게서 승무는 늘 최고의 지점에 놓여 있었다. 이런 김기석은 김묘선을 만난 것을 천재일우(千載一遇)로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김묘선 명무는 승려(僧侶)이기도 했기에 그렇다. 일본 시코쿠 토쿠시마에 있는 천년고찰 大日寺와 国中寺의 주지로서 삶을 살았던 김묘선이다. 일본인 남편의 뒤를 이어서 한국인으로서 주지가 되어서, 일본사회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고, 김묘선의 춤과 불교적 수행은 일본에서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남편의 대를 이어서 승려의 길을 걸었던 그는 다시 무용에 전념하는 세계로 돌아왔고, 현재 부모가 가업을 이어서 아들이 천년고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2022년 7월 20일, 나는 ‘영남춤축제’의 ‘한국전통춤판’을 통해서 김기석의 승무를 보았다. 리허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춤의 정신이 살아있지만, 몸의 기운이 안타깝다.”였다. 주변 사람이 건강 상태가 안 좋다고 알려주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답게 본 공연을 잘 해냈다.

김기석은 덕(德)의 춤꾼이다. 그의 춤을 보면 그게 느껴진다. 주변인이라면 누구나 알 거다. 그의 춤에서는 선(善)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춤 현장을 지킨 최해리(공연기획자, 무용인류학자)는 ‘김기석 = 선한 춤’, ‘김기석 = 착한 춤’으로 기억하면서, 그의 춤의 정갈한 이미지를 높이 평가했다. 김기석은 정(情)의 춤꾼이었다. 직업무용단 자신의 공연에도 바쁜데, 전국 곳곳의 지인이 펼치는 무용공연에는 늘 그가 찾아다녔다.

김기석은 흥(興)의 춤꾼이다. 김기석은 늘 절제된 흥을 보여주었다. 전통무용에서 창작무용까지, 그는 자신의 춤 안에 흥을 담아냈다. 2022년 11월 19일, 대전시립무용단(김평호 예술감독)은 “월인천강지곡 – 불멸의 사랑”(김평호 안무, 노현식 연출)을 공연했다. 태종으로 분해서 무용극의 역할을 해냈다.

대전시립무용단의 여러 공연에 참여하면서, 늘 그 프로그램에 맞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 무대 센터에서 큰 키에 시원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그는 춤의 흥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과 나눌까 고민했다. 페이스북을 보면 그의 춤에 온 마음을 다한 여러 모습을 살필 수 있는데, 이런 기록도 있다. “강의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쾌하게 할까?”(2013년 4월 5일).

‘전통무용의 대부’ 국수호 명무가 주목한 춤꾼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학, 덕, 정, 흥을 갖춘 김기석은 여러 사람이 주목했고, 국수호명무를 특히 그를 주목하면서 더 크게 성장하기를 늘 응원한 걸 잘 알고 있다.

김기석의 반백년 인생의 여러 날이 되돌아 보게된다. 2023년 6월 5일, 김기석의 춤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지 않았을까. 전주대사습에 여러 번 도전해서 명인부 장원이 되었다. 명실상부하게 춤의 명인이 된 날이었고, 그가 평생 가장 잘 추고 싶었던 승무를 크게 인정 받는 날이었다.

남자들의 춤바람, 4人4色 오방을 그리다’

2024년 12월 22일, 부산 우송춤방의 송년공연은 특별했다. 60대 50대 40대 30대 남자 춤꾼 네 사람의 무대였다. 홍기태, 이인태, 김기석, 이석원은 ‘남자들의 춤바람, 4人4色 오방을 그리다’란 제목으로 각자의 기량을 펼쳐쳤다. 이것이 고인의 마지막 공식 무대였다. 이들은 모두 국가무형유산 ‘승무’의 전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2025년을 맞으면서, 김기석의 몸상태는 안 좋았지만, 그는 더 정진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걸 잘 안다. 2025년 2월 22일과 23일 . (사) 우봉이매방춤보존회의 승무연수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묘선명무와 최창덕명무에게서 우봉 이매방선생의 승무를 전수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는 이 연수회를 잘 준비하고, 올해는 승무 이수자가 될 수순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2025년 2월 1일, 김기석의 추도식에는 전국에서 많은 무용인이 모였다. 국가무형유산 승무 전승교육사 김묘선 명무의 추도사를 시작으로, 평생 김기석의 춤벗이었던 이현희(광주시립창극단)의 살풀이춤, 춤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선배 이인태의 승무가 이어졌다. 그의 춤에 반해서 나염 전문가가 만든 춤의상을 생전에 고인이 다림질해두었던 의상이 있었다고 한다. 김기석의 노모께서 누군가 이 의상을 입고 춤을 추어달라고 부탁을 했고, 대전시립무용단의 후배가 이 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대전시립무용단 김평호 예술감독의 망인(亡人)을 애도하는 만가(輓歌)가 함께 했다.

중견 춤꾼 김기석이 이 세상을 떠나는 걸 안타까워 하면서, 전국 여러 곳에서 모여서 정성스럽게 그를 잘 보내주었다. 김기석의 추도식에 함께 하지 못한 많은 이들도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름답고 숭고한 의식에 마음을 보탰다.

去去去中知行行行裏覺

김기석은 어떤 사람일까? 김기석은 어떤 춤을 추고 했을까? 어쩌면 조선시대의 풍류객으로 살았던 사람이 요즘 세상에 환생헸는지 모른다. 민족정신에 바탕에 두고 불교수행에 정진했던 옛사람이 다시 이 세상에 왔다 간 건 아닐까. 20세기와 21세기를 각각 사반세기(25년)을 살았다. 이렇게 두 세기에 걸쳐서 25년을 살면서, 그가 우리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무엇일까. 전통춤의 정신과 전통춤의 움직임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면서, 우리춤의 가치를 일러주려는 것이 그가 이승에서의 임무였는지 모른다.

김기석의 페이스북에는 그의 삶의 좌표가 되는 이런 글귀가 남아있다.

去去去中知行行行裏覺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

가고 가고 가다보면 그 길에서 알게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속에서 깨닫게 된다.

민족종교 대종교의 봉우 권태훈 (鳳宇權泰勳, 1900 ~ 1994)이 남긴 말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운동가이자 단군 사상가가 남긴 말이며, 권태훈은 ‘딘전호흡’을 일반에 보급하신 분으로, 1980년대에 쓴 소설 <단>으로 알려져 있다.

개심(開心) 김기석(金奇錫).

2025년 1월 19일, 김기석이 SNS에 남긴 마지막 글을 되새긴다. #대전광역시 식장산 #마음이 열리는 “개심사” 오늘 아침 일찍 찾아갔다. 너무 너무 오랜만에 식장산에 있는 마음이 열리는“개심사”에 다녀왔다. 법당 안에 나 홀로 촛불과 향에 불붙이고 한참 앉아있다가 왔다. 마음 편하고 기분이 좋다.

개심사_고인이 마지막 찍은 사진이다.

개심(開心). 생전에 춤꾼 김기석에게 호가 있었던가. 호는 타인이 지어주기도 하는데, 그에게 이제 개심(開心)이란 호를 붙이고 싶다. 개심(開心) 김기석(金奇錫). 그의 몸은 떠났지만, 그의 춤은 이제 많은 사람에게 ‘마음 열리는’ 춤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김기석의 이런 삶을 잇는 또 다른 춤꾼을 통해서 ‘마음 열리는 춤’이 무엇이란 걸 보게 될 거다. 평생 춤과 혼인했고, 춤을 위해 온 마음을 바쳐 자신과 주변에 ‘마음 열리는 춤’을 알린 김기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중강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트윗하기

윤중강 음악평론가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