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주 야심한 밤 신비스러운 기운이 돌고 있던 베란다에 그가 나와 서서 달과 교감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자주 있다. 얼굴은 은빛으로 빛났고 팔은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발은 수많은 시간과 오랜 세월을 지나온 아주 아득한 스페인 대지의 뿌리에 잠겨 있었다..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단지 수많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옛 사람, 가공하고도 신비로운 노인으로 느꼈을 뿐이다.. 밤의 어둠 속에 간간이 보이는 단지 저 아득히 먼, 나이를 갖고 있지 않은 안달루시아 산만이 그와 견줄 수 있었을 것이다..,,

_F. G. Lorcar에 대한..

밤의 시인, 달의 시인이라 불리는 스페인 국민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詩)와 접목한 음악회가 추석 명절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열린 것은 절묘한 타이밍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주 9월 14일 토요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5번째 앨범 <NOVELLA> 발매 기념 리사이틀(2024.9.14. 토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은 조진주의 하늘한 빨강 판초로 스페인의 정열과 로르카의 푸른 절망의 사랑 노래가 어울려 깊은 서정성을 전했다.

흔히 들을 수 없는 선곡들-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의 스페인 모음곡과 프란시스 풀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 119, 에르네스트 쇼송의 시곡, OP.25 등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야샤 하이페트 편곡)도 유머러스한 여유로 활기차고 자유로운 조진주 연주자의 스페셜함과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유연한 테크니션이 빛을 발했다. 무엇보다 배우 지현준의 로르카 시 낭송이 파야의 스페인 모음곡, 풀랑크의 소나타 선율과 어울려 한 편의 모노드라마틱한 절절한 서사성으로 극적 긴장과 재미를 배가했다. 특히, 어긋나는 푸른 빛의 사랑을 노래하는 여섯가지 이야기(무어인의 의상-자장가-칸시온-폴로-아스투리아스 지방의 노래-호타)가 펼쳐진 파야의 스페인 모음곡은 강렬한 사랑의 기억이 흐르는 깊고 어두운 서정을 붉은 정열로 내뿜었다.

곡들 사이사이 배우 지현준의 음성으로 낭송된 로르카의 시 ‘악몽의 로맨스’ -‘기타 여섯 줄’ - 승리한 사랑의 노래‘ 들은 신비한 밤의 정령이 깃든 듯 깊고 어두운 푸른 빛이 바이올린 선율에 실려 사랑과 죽음의 타나토스를 변주했다.

파랗게 사랑해

 파란 바람, 파란 잎가지/

바다에는 배, 산에는 말

....

집시의 시뻘건 달이

 불길한 세상사를 예언하지만/

차마 달을 바라볼 수 없는 그녀

파랗게 사랑해 파랗게 

_‘악몽의 로맨스’

로르카는 스페인 대지와 피의 시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로르카의 시 외에도 이미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예르마> 무용 <피의 결혼> 등의 국내 공연을 통해서 스페인의 뜨거운 정열과 우수, 광기의 사랑에 대한 감상을 맛본 바 있어 낯설지는 않다. 올리브 나무 아래서 총살형으로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시인 로르카는 그의 고향 그라나다에서 작곡가 마누엘 파야와 공동으로 민속음악축제를 작업하며 스페인의 민속음악과 집시음악의 전통 속에 자신의 시를 대입시켰다고 한다.

이날 콘서트에서 낭송된 시를 포함한 그의 '집시노래집(Romancero gitano)'에 실린 로망스 형식의 시 18편은 진한 우수를 전한다.

검은 말들/ 검은 편자/ 검은 망토 위에 번들거리는/

잉크와 밀랍 얼룩/ 두개골이 납으로 되어/ 그들은 울지 않네/

칠피 가죽으로 된 영혼을 달고/

그들은 길을 따라 내려가네

인생을 휘감는 정열과 시간의 흐름, 사랑과 죽음.. 인간에게 주어진 뿌리박힌 고뇌들..

정체성을 찾으며 애쓰는, 늙음의 고독에 직면하는, 인간의 영혼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자연의 원시적, 본능적 힘이 인간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안달루시아의 자연에서 일깨운 시인. 스페인의 영혼이라 불리는 시인의 절망의 노래는 음악에 실려 더욱 절절하다.. 중세 방랑시인의 후예인듯한 로르카는 "시는 입으로 읊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의 시 낭송이 더욱 심금을 울린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 끝났지만 아직은 더운 날씨에, 다가오는 가을의 초입에, 추석을 앞두고 보름달과 함께한 스페인의 열정적 서정과 비극적 서사가 수년 전 다녀온 스페인의 곳곳들.. 안달루시아, 그라나다 지방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헤밍웨이가 말년을 보냈던 아찔한 절벽 위 도시 론다의 평원과 협곡, 투우의 시간 케렌시아와 ‘오후의 죽음’, 플라멩코와 세비야의 거리들, 역사의 음영이 공존하는 안달루시아.... 그곳에도 가을이 왔을까. “영혼의 흐느낌이 기타의 둥그런 입으로 새어 나온다.. _‘기타 여섯 줄’ 우리는 울지 않고 길을 떠날 수 있을까.

임효정 (공연칼럼니스트)

Suite populaire espagnole: IV. Polo

https://www.youtube.com/watch?v=0y07khs9on8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