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신체(몸)'에 새겨진 삶의 기억_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여성의 신체성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주요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신체가 갖는 소통·접속의 가치에 주목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을 9월 3일(화)부터 2025년 3월 3일(월)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하며 아시아 여성 미술이 갖는 동시대적 의미를 살펴본다.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과 도쿄도현대미술관, 쿠마모토미술관, 필리핀국립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인도국립미술관, 미국 버클리미술관 & 태평양 영화기록보관소 등 국내외 기관의 소장품 및 국내외 작가의 신작, 그리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작가들의 1990년대 작품 발굴 등을 통해 11개국 여성미술가들의 작품 130여 점이 출품됐다.

가부장제, 국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됐던 ‘아시아’라는 지리·정치학적 장소에서 ‘몸’에 기입된 문화의 경험을 통해 근대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작품들에 주목한다. 특히 자연과 문화, 사고와 감각,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여성문화의 오랜 특질에 주목해 나 자신을 넘어 내 밖의 존재와의 ‘접속’을 이끄는 예술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전시는 '삶을 안무하라',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 신체(여)신 우주론', '거리 퍼포먼스;, '반복의 몸짓-신체 사물 언어'.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모' 등 6개의 장으로 각 주제에 따라 6부로 구성됐다.

박영숙, '미래를 향하여' 1988, 젤라틴실버프린트, 25x 71.1cm

1부 ‘삶을 안무하라'에서는 식민, 냉전, 전쟁, 이주, 자본주의, 가부장제 등 아시아의 복잡한 근현대사 속에서 신체에 새겨진 삶의 기억과 경험을 표현한 아시아 주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마녀의 이름으로 사라졌던 여성들을 재소환 한 박영숙의 사진 작품은 시인 김혜순의 시 '마녀화형식'이라는 시를 읽고 느낀 작가의 마음을 표현한 작업이다. 박영숙은 여성의 신체를 통해 사회적인 억압과 부조리, 성적 권력 구조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박영숙, 마녀

타나카 아츠코, '지옥의 문_타나카 아츠코의 '전기 드레스'에서 나온 작품

1950-1970년대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가 부상한 아시아 도시 공간 속에서의 주체적인 여성상과 관련된 정강자의 1970년대 회화, 타나카 아츠코의 1960년대 회화 등도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원색의 대형 회화 벽면을 마주하게 된다. 크고 작은 둥근 원들이 복잡한 선들로 얽혀있는 아츠코의 '지옥의 문'은 네온사인의 광고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전기 드레스'에서 나온 작품이다. 90개의 전구와 100여 개의 진공관을 연결해 만든 전기 드레스는 이후 대형회화로 발전됐다. 작가는 온몸을 휘간고 있는 전구와 전선으로 감전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윤석남, 김혜순의 시 '엄마의 식사준비'

아버지의 폭탄이 터진 뒤라고 한다 / 구워지고 있었다 / 전자레인지에서처럼 지방이 튀어 오르고 불똥이 튀고/

살갗이 타들어 갔다.... 불속에 서 있었다/ ... 어머니가 눈물을 삼키며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식민과 전쟁의 아시아 근대기에 활동한 한국, 타이완, 베트남의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다룬 남화연의 신작 영상과 베트남 국적의 작가 타오 응우옌 판의 영상도 주목할 만하다.

참여작가_ 박영숙, 정강자, 타나카 아츠코, 남화연, 윤석남, 타오 응우옌 판 등

이미래, '봐라, 나는 사랑에 미쳐 날뛰는 오물의 분수: 터널 조각/ / 장파, 여성/형상: Mama 연작

이불

2부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에서는 성과 죽음, 쾌락과 고통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영역이나 이미지를 다루면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사회 규범과 문화적 가치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츠코 타베의 <인공태반(人工胎盤)>(1961/2003), 쿠사마 야요이의 1967년 퍼포먼스 영상, 아그네스 아렐라노의 <풍요의 사체>(1987), 아라마이아니의 <마음의 생식능력을 막지 마시오>(1997/2024), 이토 타리의 <내가 내가 되기>(1998), 이 구스티 아유 카데크 무르니아시의 1990년대 회화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이 대거 소개된다.

아그네아 아렐라노, '풍요의 사체' , '해를 띄우기 위한 노래'

파격적인 형상의 '풍요의 사체'는 1987년 작가의 몸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파괴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상징이다.

정정엽, 봇물2

3부 ‘신체· (여)신·우주론’에서는 아시아 각국 고유의 민간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샤먼을 작업의 주요 표현 대상으로 삼거나 우주론의 관점에서 신체를 우주의 축소판으로 바라보았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4부 ‘거리 퍼포먼스'에서는 거리와 일상의 공간을 무대 삼아 진행한 퍼포먼스들을 진행하면서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했고, 나아가 젠더, 환경, 이주, 인종 등 도시 공간의 다층적인 현실 맥락을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아만다 헹, 그룹 입김, 인시우전, 민영숭과 앨런 드수자 등이다.

5부 ‘반복의 몸짓-신체·사물·언어'에서는 신체 퍼포먼스의 반복성에 주목한다. 쿠보타 시게코의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1976/2019)가 국내 최초로 소개되며, 오노 요코의 <컷피스>(1995)와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멜라타 수료다모, 차학경, 샤오루, 홍이현숙의 신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 루트 세터>(2024) 등이 전시된다.

6부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몸'에서는 정신과 육체,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 남성과 여성 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과 위계에 도전하고자 했던 일련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홍이현숙, 통웬민, 이불, 염지혜, 차오페이, 최재은, 아라야 라스잠리안숙의 작업과 함께 김나희와 정은영×키라라의 신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