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기란?

글쓰기에서 그 요소를 이루는 글 혹은 문자란 무엇인가? 글 혹은 문자란 생각을 담아 전달하기 위한 수단(매체, 미디어)이다. 글쓰기는 보통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인과적, 논리적으로 진행한다. 서두 혹은 서론에서 시작하여 결국 결론에 이른다. 이것은 씌어진 텍스트를 읽는 행위와 관련된다.

역사적으로 글쓰기 혹은 문자는 그림에서 비롯된다. 문자는 아직 문자가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그림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림은 선사시대 알타미라와 라스코 등의 동굴에 그려진 벽화에서 보듯이 비논리적, 비합리적인 마법적 행위와 관련된다.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가 직선적으로 진행되는 텍스트에서 처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가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원인이 결과이고 결과가 원인이 되는 비논리적, 비합리적 방법으로 내용을 풀어가야 한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몇몇 사람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허용될 뿐이다. 이런 불합리한 사정으로 인해서 보다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한 텍스트와 문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텍스트가 범람한 이래 이제는 텍스트 시대는 급격히 저물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영상(“기술그림”)의 시대인 것이다.

영상은 텍스트(개념)의 논리가 아닌 스토리라는 색다른 논리에 의해서 진행된다. 즉 영상의 표현이 목표로 하는 것은 우리의 밖에 존재하는 시공적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텍스트인 것이다. 예컨대 영상의 대표적인 매체인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텍스트(스토리)다. 그러므로 영화의 장면은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영상시대에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반면 이런 거시적 관점이 아닌 차원에서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한 것, 그리고 자신이나 타인으로 하여금 읽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빌렘 플루서

2. 미디어와 텍스트

텍스트는 글쓰기의 결과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현대의 미디어철학자 빌렘 플루서에 의하면 글이라는 미디어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으로 인한 불안과 무의미를 달래거나 완화할 목적으로 성립한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나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글쓰기는 인간이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잠시 잊거나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학과 예술(시)은 이러한 글쓰기의 결과다.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 편지, 일기, 평론, 구술(口述) 등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음악의 악보나 창(唱) 등도 대체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글쓰기의 여러 형태는 미디어에 영향을 받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3. 문예창작: 소설과 시

글쓰기가 일차적으로 자기와의 대화라면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담화(Diskurs, 談話)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화(Dialog, 對話)는 두 사람 이상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읽게 되면 글쓰기는 비로소 타인과의 대화라는 의미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이 양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또는 어쩌면 자기 내면에서 나와 나 아닌 타자(내가 지어낸 것)가 각기 대화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자기와 또 다른 자기는 과거의 자기,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또 다른 자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소설로 대표되는 글쓰기는 1인칭, 3인칭의 시점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어느 경우든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펼쳐 보여서 그것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는 단순히 인간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영적인 차원과의 대화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한정된 삶의 영역을 확장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4. 읽기: 이야기, 구술

글쓰기는 특히 최근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즉 소설이나 시가 영화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글쓰기라는 텍스트와 영상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결합되는 독특한 문학, 즉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점이 지그재그로 배열되면서 상당히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 매료된 매니어들은 도리어 이 난해함에 끌리게 된다고 한다.

넓게 보아 글읽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을 구술(口述)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 영화를 전개하는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그러하다. 주인공 애블린은 살이 찌는 스트레스를 받는 중년의 여인으로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고, 양로원에서 우연히 니니라는 노파를 만난다. 니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실제로 두 사람은 절친이 되어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팔고 자신들도 즐기는 사이가 된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삶을 정리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영화 《녹터널 에니멀스》는 주인공이 옛날 자신의 남편(남친?)이 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전 남편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된다. 

영화 《패터슨》은 패터슨이라는 주인공이 시를 쓰면서 일어나게 되는 잔잔한 일상의 사건들을 지루하도록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자질구레한, 염증이 나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촘촘한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5. 비평과 저술

비평이란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타인의 글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한 나의 반응을 통해 타인의 글을 나름 평가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평론은 나와 타인의 대화다. 단순히 타인의 글을 읽고 감상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나의 견해를 밝힘으로써 원저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일종의 생산적 대화가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저술은 예상되는 타자, 즉 독자(혹은 자기 자신)를 예상하는 글쓰기인데, 여기서 나를 일방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독자의 견해나 생각은 그들의 자유로운 평가에 위임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일방적인 글쓰기는 타자의 견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나의 견해를 표명한다는 데 그 담화적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6. 편지: 기다림과 기대, 희망

편지는 나와 너의 대화의 형식을 가진다. 오늘날에는 이메일이나 카톡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편지는 무엇보다도 나와 너의 직접적 대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통해서 간접적이고도 은밀한 의미를 가지는 독특한 분야라 할 수 있다. 나와 너의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그 시간적, 공간적 제약은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독특한, 로맨틱한 형식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기대와 희망이 섞여 있기도 하다.

7. 신문: 기억, 기록

독특한 글쓰기의 하나는 저널, 그 가운데서 신문과 방송이다. 방송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이 있지만 그 기능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것은 전달과 기록, 그리고 기억이다. 여기에는 주로 저널리스트의 글이 실린다. 그러나 기고가의 글도 실린다. 요즘에는 전자 신문이나 방송도 있다. 그러나 그 기능의 본질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 신문과 방송에는 그러나 겉보기와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 기능은 새로운 소식을 알린다는 것이지만 그 소식은 조작된 것이 태반이다. 그 이면에는 저널리스트와 방송사의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독자나 청취자는 가공된 뉴스를 접하지만 이것은 원래의 사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상업성이라는 이면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물질적 욕망이 자리한다.

8. 텍스트의 몰락

이제 텍스트의 시대는 급격히 저물어가고 있다. 이것은 역사와 역사 시대의 몰락이기도 하다. 역사시대의 몰락은 곧 텍스트시대의 몰락이기도 하다. 이는 곧 새로운 디지털 글쓰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서결이라는 전통적 글쓰기는 시작과 끝이 딱히 따로 없는 새로운 글쓰기로 대체된다. 인간의 의식은 서론, 본론, 결론의 고정된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이 직선적이 아니라 점적이면서 원환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9. 글쓰기와 행복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에 돌아가서 거기에 귀 기울이는 행위다. 인간의 삶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 생각이 행복하지 못하면 실제로도 행복할 수 없다.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 생각을 지배하는 자는 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불행할 것이다. 

글쓰기는 이렇듯 스스로 생각하기와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표현해야만 한다. 표현된 생각, 즉 텍스트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은 물론 타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을 수 있다. 불행한 생각이 아니라 행복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위한 것인지를 텍스트에의 침잠을 통해서 냉철하게 반추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양우석 아욱스부르크대학 철학박사, 한국외대 철학과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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