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이수민의 커넥트아트
영화 <오펜하이머> 속 피카소,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 이수민 커넥트아트 바이올리니스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09 07:34
  • 댓글 0
영화 오펜하이머

 

 

지난달 중순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가 연일 화제입니다. 3시간이나 되는 긴 상연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인물을 다양한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 묘사하고, 선과 악 그리고 도덕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객에게 생각해보게 만들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세련된 연출 등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며 꽉 막힌 목소리로 여러 번 읊조렸던 문장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머릿속을 오랫동안 떠돌았고요.

 

영화 시작 후 10분쯤에 나오는 장면에 특별히 관심이 갔습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연구실에서 깊은 생각에 빠진 오펜하이머. 피카소의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을 감상하는 그의 뒷모습이 비춰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레코드판이 보였습니다. T. S. 엘리엇의 시집 <황무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이름도 등장했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왜 하필 이 장면에서 피카소의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등장시켰을까요. 오펜하이머의 머릿속 다양한 영감의 파편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실제로 오펜하이머는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 철학, 역사학, 불문학 등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고, 학생들이 보는 잡지에 시를 투고를 할 만큼 여러 재능을 가진 ‘르네상스형 인간’이기도 했죠.

 

이번 칼럼에서는 미술사와 음악사에서 한 획을 그은 두 예술가의 작품을 같이 살펴보려 합니다.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 ⓒ2021-Succession Pablo Picasso

 

피카소의 연인 중 한 명이었던 마리 테레즈를 그린 이 그림은 그녀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꿈>보다는 덜 강렬하지만 그림 전반에 묻어나오는 우울한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20대 초반 친구를 잃은 상실감으로부터 시작된 피카소의 ‘청색 시대’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하죠. 피카소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특히 사무치는 외로움을 표현할 때 청색을 썼습니다.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에서 여인의 얼굴과 옷은 푸른색 계통으로, 벽과 창틀로 보이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경쾌한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나는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라고 말했던 피카소의 말을 떠올리며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생기를 잃은 텅 빈 눈동자, 곡선을 그리지 않고 일자로 다물어진 입, 팔짱을 낀 폐쇄적인 자세 등으로 화가와 모델 사이에 더 이상 사랑의 온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그림이 그려진 1937년을 마지막으로 말 테레즈를 떠났고, 이후 피카소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도나 마르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링크 삽입: https://youtu.be/YOZmlYgYzG4?si=mH4EE0c4P1S-GxHM&t=274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몽환적인 음색의 바순 독주를 시작으로 점점 불협화음을 더해가는 목관악기들. 이렇게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 음악 중 하나인 <봄의 제전>이 시작됩니다. 발레 뤼스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니진스키는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지금 보기에도 난해하지만 당대 관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 확실한 안무를 선보였습니다.

 

어느 원시 부족의 춤과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이교도 의식을 묘사한 이 발레는 크게 1막 ‘대지의 찬양’, 2막 ‘대제물’로 구성됩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민속적인 멜로디와 불협화음을 동시에 사용하고,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변박을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흥분감과 기대감, 불편함이라는 다양한 감정을 안고 감상하게끔 만듭니다.

 

니진스키와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구상할 때 ‘19세기 낭만주의 사조를 거치며 불필요하게 장식된 예술을 파괴해보자’라는 의견을 모았고, 그들의 뜻은 제대로 구현되었습니다. 몇 번의 연습만으로는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음악이었기 때문에 백 번 이상의 연습을 거친 후 1913년 5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이 열리게 됩니다.

 

세련되고 우아한 취향을 가진 파리 관객들은 야생성과 야만성을 풍기는 이 작품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오케스트라 음악 소리보다 더 커졌고 아수라장이 된 공연장에는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죠.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패닉에 빠져 극장에서 뛰쳐나갔고 공연은 부랴부랴 마무리 지어집니다. 초연 날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작품에 담긴 혁명성과 파격성으로 인해 <봄의 제전>은 지금까지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수민 _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기악과 학·석사, 인디애나대 음대 연주자과정을 졸업한 이수민은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또한 기업체 강연자, 공연 해설자, 칼럼니스트, 유튜브 [클언니] 운영, EBS 생방송 뉴스에서 공연리뷰 코너 고정 패널을 1년간 맡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2년 클래식 입문서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를 출간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019239

이수민 커넥트아트 바이올리니스트, 칼럼니스트  connectart@naver.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수민 커넥트아트 바이올리니스트,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