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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의 댄스다이어리 ③] 기술의 발전 = 예술의 발전?<예술래잡기술> 김혜연 안무 (2023 시댄스 )
예술래잡기술_커튼콜_김혜연 안무

최근 AI의 발전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이끌기에 충분한 소재다. 그로 인해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분야에서 AI 산업과의 접목을 시도하며 화재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키기도 한다.

 

김혜연 안무가의 신작 <예술래잡기술>은 AI 기술 중 챗 GPT를 활용해 안무를 만든 예술과 AI의 컬래버 작품이다. 수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은 예술을 하지 못한다는 평론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챗 GPT 기술을 통해 AI가 바라보는 세상을 예술에 담았고 죽음과 노화에 대한 답변을 안무에 녹여냈다.

 

이 공연은 전체적으로 관점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등장한 4인의 무용수들은 각기 다른 인사법으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누구는 손을 흔들고 또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4인의 무용수들은 모두 같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옷차림새는 모두 같았지만,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인사법은 이들이 AI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혹은 AI의 생각을 반영한 각기 다른 개체의 사람들의 모습인지 혼동이 왔다. 하지만 공연 초반 내레이션에서 나왔듯이 단순히 예술과 기술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이는 AI와 예술의 혼합은 관점을 드나들고 시점은 계속해서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관객에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술래잡기술 

<예술래잡기술>의 전반부는 ‘노화’에 대해 말했다면 후반부는 ‘환생’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AI의 오브제 역할로 등장한 곰 인형은 마치 새로운 영혼을 얻은 것처럼 살아났고 그 환생을 돕는 역할을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들어내며 마무리되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답변을 무용수들의 몸과 융합해 불로장생, 죽음, 노화, 환생 등을 표현해낸 것은 전에 보지 못한 도전적 안무로 볼 수 있고 예술과 기술의 술래잡기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용예술가들은 예술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더 철저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은 창작자는 예술의 본질을 잃기 쉬워지며 그 결과는 목적을 벗어난 예술이 된다. 예술은 창작자가 관찰자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행위를 표현하는 것에 그 목적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예술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인공지능 기술과의 융합에 더욱 취지가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꼭 옳은지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방식의 예술은 도태되지 않는 산업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예술가의 생각을 담아낸 작품을 더욱 엄격하게 다듬고 수정하여 관객들에 그 본질이 전해졌을 때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을 전달하는 것, 혹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 혹은 질문을 유도하는 것. 이 점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예술가로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은 안무다. 그 점에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예술 작품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안무법을 제시하는 공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기술의 발전은 예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매우 큰 요소다. 하지만 예술은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기에 아름다운 것이며 기술과 접목을 할 때는 반드시 그 기술이 아니면 불가능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본인들이 가진 예술의 본질을 한없이 작품에 녹여내며 끝이 나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필수 요건이지 않을까.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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