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김지민의 댄스다이어리②] 꿈을 잃었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모두 꿈이란 것을 한 번쯤은 꾸었을 거다. 아주 어릴 때 가졌던 커다란 꿈.

혹은 조금 커서 찾은 미래에 대한 꿈, 혹은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생겨 타협한 나의 꿈.

 

꿈을 꾼다는 말. 아무리 뱉어도 모자란 말이다. 우리에게 꿈이란 몸과 머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고 살아 숨 쉬게 하는 심장과 같은 것. 꿈의 크기와 관계없이 무언갈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병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 말하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꿈이라는 심장이 병들지 않게 계속해 숨을 쉬어야 하며 더욱 강한 박동을 위해 새로운 자극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사람에겐 작동을 멈추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난 호흡을 멈췄다고 말한다. 그 말은 즉, 꿈을 잃어 빛이 사라진 사람이란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재 각기의 빛을 뿜어내며, 그렇게 우린 살아간다. 하지만 꿈을 꾸지 않거나, 꿈을 잃은 사람에겐 ‘나의 빛’ 따위가 있을 수 없다.

나는 빛을 잃어 멈춰 서있는 그날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내게도 꿈이란 게 있었다. 세계를 돌며 춤을 추겠다는 꿈.

춤을 춘다는 것, 무대에 오른다는 것, 공연장을 가득 채운 박수 속에 서 있다는 것. 그 장면들을 떠올릴 때면 내 심장은 여전히 벅차오른다. 하지만 나의 춤은 하늘을 날았고 너무도 높이 날아 내게서도 멀리 날아갔다.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니 풀과 나무들은 숨이 죽어 있었다.

나의 발은 시리게 얼어붙었다.

 

당신도 꿈을 잃어버린 날을 기억하는가. 그날의 온기를 떠올릴 때면 내 손, 발은 금세 차가워진다.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 무대가 나의 마지막 무대일 것이라고. 마지막 공연 날이 다가올수록 심정은 복잡해졌다. 이젠 무용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 감정들은 가슴을 파고들어 날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당겼다. 그 우물 속은 ‘방황’이었다.

 

마지막 무대를 끝내고 무대를 내려오는 그 날, 이 순간을 온전히 기억하고자 했다. 사진을 찍고, 많은 이와 악수하고 포옹을 나눴다. 그들의 온기와 표정, 내게 해주는 예쁜 말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한 가지 확실히 전할 수 있는 말은 그날 찍은 사진 속 내 얼굴은 곧 마을을 떠나기 직전인 방랑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어 울음을 참는 표정. 간단하지만 정확한 묘사다.

 

꿈을 잃은 청춘은 이제 청춘이라 부를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나의 청춘은 그날로 깊은 동면에 들었고, 그 겨울잠을 깨우는 봄날은 언제가 되어 내게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날이 갈수록 소란스러웠다. ‘소란’은 몸에 멍을 남겼고, 피어난 멍들은 빠르게 날 뒤덮어 멈추게 했다.

내 ‘소란’ 은 날 지키기 위함이었다. 꿈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고함을 외치며 존재를 연명했다.

 

그렇게 나의 청춘은 날아간 꿈을 향해 뒤따라 떠나갔다.

 

참도 멍청했다.

청춘의 시간이 소란을 피우는 데에 쓰여 날아가 버렸다는 게.

실은, 내 청춘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여전히 내 옆에 있음을 몰랐다는 게.

 

새로운 호흡을 찾으려 했지만, 실은 정답이 아니었다. 원래의 안정된 호흡을 다시 뱉어내는 것이 꿈을 꾸려는 자들이 이뤄야 할 가장 첫 번째 꿈이 아닐까.

 

꿈을 꾸고 싶다. 깨고 싶지 않을 만큼 달콤한 꿈을.

사랑하고 싶다. 마지막 사랑이어도 행복할 충만한 사랑을.

 

지나간 날들이 나에게 거름이 되어 새로운 꿈의 조각이 완성된다면, 그런 날이 내 하루에도 나타난다면, 나는 날 다시 빛을 뿜어내는 ‘청춘’이라 말하련다.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수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