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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잊혀진 화가, 임군홍을 아시나요?예화랑, 2023 정전 70주년 기념전 <화가 임군홍 Lim Gunghon, The Painter>
가족, 임군홍, 96x126.5cm,Oil on canvas,1950 사진= 예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73년 만에 공개한 가족 그림, 그림 속 아들의 사부곡

월북작가 임군홍 재조명

예화랑, 운명처럼 다가온 40년 인연 기획전

 

“이 그림(가족)을 보면 저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집니다. 어머니 품 안에서 자고 있는 어린아이가 바로 접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저는 그림 속 저를 보면서 혼자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7월 25일, 예화랑 45주년 기념 전시 -정전 70주년 기념전 ʽ화가 임군홍_ Lim Gunhong, The painter'-전에 참석한 임군홍 작가의 아들 임덕진은 40년 만에 전시에 내걸린 ‘가족’ 그림 앞에서 감격스럽게 말했다.

그림 속에는 붉은 테이블 주위로 아내와 둘째 아들, 큰딸이 담겨있다. 임신 6개월된 아내 배 속에는 막내딸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청화백자와 독일제 맥주잔과 분홍 꽃신 등 정물이 있고, 뒤 배경에는 목단이 그려진 민화가 있고, 테이블 앞에는 백합꽃이 피어 있다.

1950년 6025전쟁 발발 전 국전에 출품하려고 그렸던 마지막 유작이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 화가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북한에 끌려가 이후 존재가 잊혀졌다.

 

예화랑은 이번 전시에서 납북화가 임군홍의 1930~1950년대 작품으로 유화 79점, 수채화 10점, 드로잉 27점, 파스텔 1점 등 총 117점을 9월 26일까지 선보인다.

임군홍 작가

임군홍(1912-1979)은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 ‘봄 스케치’로 첫 입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부터 41년까지 여인상과 풍경을 그린 작품이 거듭 입선하며 서양화가의 위치를 굳혔고, 1936년에는 송정훈(宋政勳), 엄도만(嚴道晩) 등과 ‘녹과전(綠果展)’을 만들어 동인전을, 1938년에 개인전(오아시스다방)을 가졌다. 1939년에는 중국으로 가서 1945년 광복으로 귀국할 때까지 북경과 만주 일원에서 「고궁의 추광」, 「중국인상」 등과 같은 역사 유적과 중국 풍정을 그렸다. 광복 후에는 귀국해 고려광고사를 운영하며 미국 공보원이 주문한 그림 등을 그렸다. 1947년에는 이쾌대(李快大) 등이 주도한 조선미술문화협회 창립에 동참, 1949년까지 그 회원 작품전에 참가하며 「설경(雪景)」 등을 출품했다. 6.25 전쟁 중 임군홍은 월북해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 지부장(1953-1961)을 지냈다. 1970년대에는 유화를 포기하고 조선화 기법을 터득해 「동기골 전투」(1973), 「공장을 지키는 사람들」(1974) 등을 조선화로 제작했다.

15.행려(行旅),60.5x45.5cm,Oil on paper,1940년대

해금되기 전인 1984년 유족에 의해 롯데미술관에서 『임군홍전』이 열렸다. 이후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조치 이후 1990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열린 『해금작가유화전』에 6점이 출품되었으며, 1996년 미공개 유화 소품 40여 점을 중심으로 갤러리 도올에서 『임군홍(林群鴻), 삶과 예술을 찾아서』가 개최됐다.

임군홍의 둘째아들 임덕진씨가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예화랑 김방은 대표는 우리나라 근대 화가로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던 임군홍 화가가 해방 후 이념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 납북되는 바람에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사연을 접하고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무조건 이 작가를 알리고 이 작가의 작품을 보이고 이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 1950년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 이후 73년간 많은 작품들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아버지의 작품과 평생 대화를 하고 살았던 아들 스토리를 많은 분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 이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예화랑의 전신인 천일화랑을 만들고 산업디자이너 1세대로 활동했던 김방은 대표의 외할아버지 이완석은 임군홍이 일제강점기 중국과 경성에서 광고회사를 했다는 점에 동시대에 활동하고 교류했다는 사실이 임군홍의 아들 임덕진과 연락되면서 밝혀졌다. 임덕진은 아버지 임군홍 작가의 작품 8점을 전시에 제공했다.

김대표는 임군홍 작가가 미술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 수단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1,134km나 되는 베이징과 한커우를 오가며 중국의 고대 유적물들을 집중적으로 그린 풍경화에서는 작가의 대상에 대한 몰입이 대단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빛의 섬세한 변화, 천변만화하는 날씨의 변화 속에서 그날의 공기와 바람까지 느끼게 할 정도로 세밀한 분위기를 화폭에 구현한 그는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초감각적인 예술혼을 지녔던 사람 같아 보입니다.”

4.북해공원,44.5x52cm,Oil on canvas,1940년대

임군홍은 일제강점기라는 억압된 시공간 속에서도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독학으로 일군 자신만의 화풍을 과감하게 실현시킨 담대함과 자유분방함이 두드러진다.

20.덕진 초상,22.8x15.8cm,Oil on paper,1948

무엇보다 힘든 시절을 살아가면서 작품을 잘 보관해 놓은 유족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연좌제의 고통 속에도 부친의 작품 공간을 우선하며 작품을 보관해왔다. 아들 임덕진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미술사를 공부하고 작품을 연구했고, 목돈이 생기면 액자를 새로 짜고, 복원하며 작품 100여 점을 보관해왔다고 한다. 아버지의 작품을 평생 보관하며 그림을 통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그는 임군홍의 작품을 시장에 내놓기보다 잘 보존해서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 임군홍은 1984년 롯데화랑 전시(롯데백화점)로 처음 세상에 나왔고, 이듬해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으로 알려졌다.

1.소녀상(아내상),72x60cm,Oil on canvas,1937,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여인 좌상, 126x94cm,Oil on canvas, 1936,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4.한복 입은 여인,97.5x69cm,Oil on canvas,1930년대

 

16.북평낭,81x71cm,Oil on canvas,1940년대,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예화랑의 전시에는 아내 홍우순을 그린 조선미전 입선작인 ‘소녀상’(아내상, 1937)을 비롯해 신여성을 표현한 ‘여인좌상’(1936), 임군홍의 누이를 그린 ‘한복 입은 여인상’ 등 단아하고 도도한 당시 여성들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5.모델,90x71.5cm,Oil on canvas,1946,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마티스풍을 연상시키는 ‘모델’(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옥고를 치른 뒤 그린 ‘지화상’과 ‘새장 속의 새’에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뇌와 허무함으로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21.새장속의 새,22.5x15.5cm,Oil on paper,1948

임군홍의 베이징 풍경화에 대해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빛의 관찰에 기초한 작업을 했다면,

임군홍은 대상을 통해 자신이 느낀 직접적인 ‘감흥’ 자체에 훨씬 더 집중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일종의 ‘정조(情操)’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생생함, 쓸쓸함, 적막함, 고요함, 아련함, 평온함 등과 같은 다양한 정조가 임군홍의 베이징 풍경화를 지배한다. 그는 이런 정서를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해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화가였다.”고 말한다.

9.한커우 기차역,33.5x24cm,Oil on canvas,1940년대

 

8.자금성 풍경,60x71.5cm,Oil on canvas,1940년대

7.각루(角樓),40x31cm,Oil on canvas,1940년대

 

현재 남아있는 임군홍의 유화 작품은 약 130점으로 모두 1930년대 중반에서 1950년까지 약 15년 사이에 걸쳐 제작된 것이다. 이 시기 조선의 화가들 중에서 이 정도 규모의 유화 작품을 남긴 이는 매우 드물다.

김인혜 학예사는 “임군홍 외에 배운성, 이쾌대 등 주로 월북한 화가들이 1930-40년대 작품을 상당량 남한에 남겨 놓았을 뿐인데, 월남한 화가들로 박수근, 이중섭이 이 시기 작품을 모두 북에다 남겨두고 내려온 것을 생각하면,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근대의 이들 작가의 작품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양화계를 이해하고 실증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7.27-9.26 예화랑

 

17.정물,52.2x65cm,Oil on canvas,연도 미상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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