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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행] 고도(古都)의 시간을 여행하는 법<2023 한국잡지협회 발행인세미나>_기타쿠슈·후쿠오카 관광
시모노세키의 성하마을 쵸후(長府, 무사)

낯선 곳에서 시(詩)를 발견할 수 있을까?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여행에 대해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떠나온 곳의 익숙한 일상과 관습적인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만나고 낯선 새로움을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은 제각각 다를 것이나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여행에 앞서 떠나기 전부터 일종의 기대감을 갖곤 한다.

매년 6월 즈음, 한국잡지협회는 발행인세미나를 통해 짤막한 관광여행을 한다. 2023년 올해는 처음으로 국내를 벗어난 해외 세미나로 일본으로 가기에 여행의 설렘이 조금 더했다고 할까. 7월 6일(목)부터 7월 8일(토)까지 2박 3일의 짧은 여정은 장마철에 예견된 여행기간 동안 비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옷을 배부받고 산뜻한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시간 50여 분 직항해 거리상으로 한국과 인접한 일본 남부 기타큐슈시 공항에 내리니 기타쿠슈시의 후원으로 준비된 전세버스 3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타큐슈 시립 자연사·역사박물관(いのちのたび博物館)

생명의 여행_‘기타큐슈 시립 자연사·역사박물관(いのちのたび博物館)

Kitakyushu Museum of Natural History and human History

야하타히가시구에 있는 ‘기타큐슈 시립 자연사·역사박물관(Kitakyushu Museum of Natural History and human History)으로 이동했다. ’이노치노타비 뮤지엄‘(이노치노타비는 한국어로 ’생명의 여행‘이란 뜻, https://www.kmnh.jp/)으로 불리는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의 ’‘시립자연사.역사박물관’에는 지구 탄생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자연과 생명의 역사를 빼곡이 들어찬 약 4,500점의 동식물 표본들로 보여준다. 수년 전 스코틀랜드의 자연사박물관 탐방 이후 오랜만에 보는 거대한 공룡의 뼈 모형들과 식물화석, 암석, 광물, 레플리카 등으로 구성해 교육용 학습에 도움을 줄 듯하다. 내부는 3층으로 8개의 테마관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공룡들의 화석과 육지동물, 해양동식물들 표본이 생생하게 전시돼 자연과 인간의 발자취를 알기 쉽게 학습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2층 넓은 유리칸막이의 놀이방 시설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안전하게 살필 수 있게 되어 있다. 박물관 야외마당에는 알록달록한 타조와 코뿔소 조각들이 자연사박물관의 조경에 잘 어울렸다. 박물관 내.외부는 현재 보수 공사중인데, 관람은 가능했다.(관람료 어른 600엔, 초.중학생 240엔)

 

 

 

사라쿠라 야마(山)_신일본 3대 야경

자연사박물관을 나와 기타큐슈시 상공회의소에서 세미나를 마친 후 저녁 만찬 후에는 “일본 제일의 야경관광”이라고 자랑하는 사라쿠라 산(山) 정상으로 갔다. 케이블카와 슬로프카를 갈아타고 해발 622m의 산 정상에 올라가니 시야각 200도로 탁 트인 경치는 ‘일본 신3대 야경도시’(삿포로, 나가사키, 기타큐슈)에서 전국 1위를 한 명성에 걸맞게 펼쳐졌다. 번화한 도시 고층빌딩의 화려함이 아닌, 부드러운 밤의 빛이 감도는 고요한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마침,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줄기가 무더위에 지친 여행객의 심신에 스치며 시원한 여름풍경을 남겼다.

 

‘모지코 레트로’_친근하지만 비일상적 매력

둘째 날(7.7 금)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골프팀은 먼저 떠나고 우리 관광팀은 조식 후 비옷을 입고 우산을 받쳐 들고 메카리공원 전망대를 본 후 ‘모지코 레트로’지구로 출발했다. 모지코 타워전망대와 철도박물관을 견학한 후 전차 같기도 하고 옛날 완행열차처럼 천천히 가는 토롯토 열차(레트로라인 시오카제호)를 타고 가서 도착한 곳은 해저터널이었다. 

간몬해협을 잇는 바닷길 간몬해저터널은 기타큐슈(큐슈)와 시모노세키(혼슈) 지역을 이어주는데, 780m 길이로 보행자들이 통행하게 되어 있어 우리 모두 함께 걸었다. 모세도 아닐진대 바다속을 관통하는 신기한 일임에도 터널은 콘크리트로 막혀있어 지하터널인지 해저터널인지 도통 알 수 없어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다. 지상으로 올라와 바라본 간몬해협과 대교는 걸어온 해저터널이 실감나지 않게 넓고 길어 보였다. 두 지역을 오가느라 육로로, 해저로, 페리로 이 간몬해협을 몇번을 오락가락 왕래해야 했는데, ‘간몬해협 낭만맵’이라는 관광상품에서 부각하는 이게 낭만인지는 아리송했다.

 

‘레트로(retrospect)’는 일본 감성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래된 철도, 기찻길, 소박한 기차역, 번성했던 옛시절의 항구 등......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복고풍의 현대식 문화 경향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번지며 인기를 끈다. 메이지 시대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했던 모지코에는 100년 전에 건축된 JR모지코역을 비롯해, 구 오사카상선, 규슈철도박물관, 규슈 최초의 맥주공장(데이코쿠맥주) 아카렌가 플레이스 등 옛 모습을 간직한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모지코레트로’ 지구는 이름 그 자체가 레트로를 위해 조성된 핫한 관광지다.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레트로풍에 열광하는 이유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반동이라고도하고, 친근하지만 비일상적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도 한다. ‘오래된 미래’의 의미처럼 옛(古)것은 추억을 부르고 새로운 감성을 불러오기 때문이 아닐까.

 

무사들은 사라지고....시모노세키의 성하마을 쵸후(長府, 무사)

우동정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는 중에 시모노세키의 무사마을로 향했다. 일본의 전통 마을로 메이지 유신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공간이다. 에도 시대 지배계급인 무사(사무라이)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로 단정한 일본식 고택의 부촌이다.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은 야트막한 산골짜기 아래 자리한 청정지역으로 마을 전체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단아한 인상을 준다. 옛 시절의 영화로운 시대는 가고 한적한 시골마을 산속에 있는 무사의 옛 영지는 적막하기만 하다. 너무 조용하고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 별장지처럼 느껴진다.

유명한 관광지인데도 우리 한옥마을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다. 서울의 북촌과 전주 한옥마을을 잠시 떠올려봤다. 마을 전체를 가로지르는 수로 옆으로 기품있는 나무들이 서 있고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고 화려한 고택들은 단아한 인상을 준다. 잘 정돈된 정원과 대문 위로 솟은 나무들이 어울려 모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기념품가게를 겸한 멋스런 카페들이 있어 소소한 풍경을 담는다. 우리 일행도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씩 마시며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해본다. 숲속으로 난 길로 예쁜 도자 공방이 있어 들어가 보니 외국인이 운영하는 영어회화 도예교실이 있어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고 도자기 작품을 구경했다. 하천길을 따라 마을 끝까지 올라가면 숲속에 숨겨진 듯 국보 코잔지 절이 나온다. 무사마을은 1903년 당시 시모노세키를 다스렸던 쵸후 모리가의 14대손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무사마을의 쵸후 모리저택은 일본식 정원과 함께 관광 명소로 꼽히는데, 메이지 천황이 머물렀던 방도 공개하고 있다.

마을 하천에는 새와 오리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다리 위에도 올라와 옹기종기 다니고 있어 생기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고풍스런 마을이 시모노세키라는 개항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근대화의 역사 속에 시모노세키전투를 겪고, 도시의 산업화로 많은 유산이 사라졌음에도 보존되고 있는 쵸후마을의 역사적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쵸후마을의 뿌리는 1,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 자리에 토요우라궁이 있었고, 궁 주변을 호위하는 무사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이 지금의 쵸후마을의 시초라는 기록으로 일본서기와 고서기에 전해진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 장마철이라서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어 더 한적한 마을길을 내려오는데, 마을 어귀 보랏빛 수국이 곱고, 단정한 현대식 건축물과 잘 어울린다.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마을 길을 내려왔다.

 

 

고쿠라성(小倉城, こくらじょう) 문화체험과 조선통신사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부위별로 구운 불고기 석식 만찬 후 어둑해질 무렵, 기타큐슈의 고쿠라성을 찾았다. 해자로 둘러싸인 고쿠라성은 규모(높이)로는 일본 전국의 6위지만, 천수각의 규모는 전국 3위로 유명하다. 특히 도심 속 아름다운 정원은 인기 있어 이날도 방문객이 많았다. 기타쿠슈시 도시 중심에 있는 고쿠라성小倉城(소창성 こくらじょう )은 17c 중엽 에도 시대 초기건축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의 무장 호소카와에 의해 개수되어 1959년 지금의 형태로 재건되었는데, 2019년 현대식 시설로 대폭 리뉴얼 되었다고 한다. 5층의 성내는 박물관처럼 전시와 카페, 전망대 등으로 꾸며져 곳곳에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에도시대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성의 형태는 오사카성과 비슷한데, 5층 꼭대기에 있는 천수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는 관광이 아니라 직접 성내로 들어와 성의 연대기와 역사에 대한 전시와 부속물과 영상, 자료 등을 전시해 관람할 수 있었다. 천수각에 올라가니 유리창 밖으로 쇼핑몰과 도시 야경이 보인다. 성하의 녹음이 우거진 하얀성의 외관은 봄 벚꽃이 어우러질 때 더 화사할 것 같았다.

1층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고쿠라성의 400년 역사에 대한 영상 극장이 개시되고, 연대기적 기록으로 사진과 모형 전시가 전개되는데, 이곳에서 조선통신사의 모형을 통해 당시 조선통신사 행렬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반가웠다.

1404년(태종 4년)때부터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일본 막부 장군에게 보내는 사절단으로 당시 300~50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행렬이었다. 한양을 출발해 부산까지 육로로, 부산에서 해로로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를 통과해 오사카- 교토가 종착지였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는 도쿄가 최종 목적지였다고 한다. 통신사가 지나는 길목에 이곳 기타쿠슈를 통과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통신사에 대한 접대가 화려하고 융숭해서 재정 압박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통신사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서는 '필담창화' 라 하여 한시문과 학술이 꽃피웠다고니, 그 성대한 행사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모형도에 나타난 긴 행렬과 화려한 풍경이 당시의 국제 문화교류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고쿠라성에서는 다양한 문화체험을 해볼 수 있다.

조선통신사가된 양 가마에 올라보고, 기모노를 착용하고 나가사키항 언덕 위의 초초상처럼~ <나비부인 Madama Butterfly>이 되어보기도 한다.

조선통신사가 조선 국왕의 국서를 막부장군에게 전달하는 여정은 6개월~1년 가까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방문하는 곳마다 서화와 시문을 남겼고, 이 화려한 행렬도를 그린 병풍, 회권, 판화 등이 전해지고 귀국 후 《해행총재(海行總載)》라는 견문록으로 전해지니, 오늘날 해외교류 행사의 후기에 해당되며 당시 국제교류의 역할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격세지감이라고 할지... 일본땅에 와서,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발견하며 오늘날 한일 관계를 생각하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국력과 문화의 힘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안내창구에서 홍보물을 배포하는 친절한 일본인 안내원 덕분에 고쿠라성에 대한 좋은 인상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일본 감성 동화마을_유후인

셋째 날(7.8)은 규슈의 오이타현에 있는 유후인을 방문했다. 아소산 자락에 위치한 유후인은 원래 온천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인데, 한국에 홍보가 잘되어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숲속의 동화마을처럼 꾸며진 거리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갤러리, 공방, 특산품점 들이 모여 일본의 정취를 풍긴다. 유명한 캐릭터 굿즈와 인형들을 내세워 곳곳에 포토존이 잘되어 여성관광객들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전통마을들이 외국산 물품 샵들과 뒤섞여 복합적 다이내믹함을 보이는데 반해, 일본의 관광지들이 일본 감성의 고유성을 살리며 관광 마케팅에 성공사례를 보인 것 같았다.

 

오후에는 마침, 시내 쇼핑몰에서 마쓰리가 열린다 해서 갔으나 비가 많이 내려 연기되면서 끝내 보지 못하고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었다.

꽉 찬 3일간의 관광 여정은 비 오는 날씨 탓에 일정이 변경되고 취소된 곳도 여럿 있었고, 특히 우중에도 강행한다던 마쓰리를 못본 것이 많이 아쉬웠다. 유후인의 긴린코호수, 샤갈미술관, 큐슈 국립박물관 등은 다음 기회에 와보고 싶어졌다. 느리게 가는 레트로라인 열차에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비 오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회원들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완행열차의 입석처럼 여럿이 둘러서 웃으며 대화하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어떤 분들은 너무 많은 장소를 오가는 타이트한 일정으로 여행의 여유와 여백의 시간이 없었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 여행이고, 어떻든 이 또한 여행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의 즐거움 또한 여행하는 심리에 좌우된다고도 한다. 귀경길 마지막 날 버스 안에서 낭송한 배용파 시인의 시 ‘역사(歷史)’의 싯귀가 이번 일본 여행의 시간을 의미 있게 함축해 울림이 오래 남는다. 고도의 천년의 시간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의 시간까지.... 새로운 갈망이 다가오는 것일까.

 

글.사진_임효정 (THE MOVE 발행인)

 

 

 

아득한 머-언 수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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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久遠)의 세월, 억겁의 시간이여

그대 장구함에

고개 숙인

잔잔한 역사의 미소여!

생명의 빛이여!

이제,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줄기 여명을

어이 맞으려는가?

어이 감싸려 하는가?

 

_‘역사’, 배용파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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