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 <아름다운 소멸>, 2012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남극과 북극의 여름이다.

여름이라고는 하나 우리의 여름과 많이 다르지만 점점 따뜻해지는 중이다.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은 티끌만큼 작은 인간이 극지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주체임을 목격한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예술가의 눈을 빌려 극지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일지. 자연이 말하는 소리를 작품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남극과 북극에서 예술가들의 작품이 도착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로부터 출발한 김승영, 조광희, 김세진, 염지혜, 한국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해를 다녀온 손광주, 이정화, 홍기원 작가의 시선이 담긴 각각의 이야기들이 인천공항에 다다랐다. 2011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극지연구소는 매년 시각예술, 문학, 아동문학, 웹툰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남극과 북극에 파견하는 극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2년의 시간 동안 23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는데, 그 중 7인의 미디어, 설치 예술가들의 작품을 본 전시에서 선보인다.

공항과 극지는 사실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순수하게 과학적 목적으로만 이용되는 남극과 북극, 출국 혹은 경유를 위해 오는 공항의 출국장은 특정한 국적이 없는 공간이다. 또한 공항과 극지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극지에 예술가들이 체류하는 기간은 길어야 두 달 남짓, 남극/북극 과학기지의 월동대원들의 연구 기간은 1년, 출국장에 여객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이다. 이렇게 특정한 국적이 부재한 극지라는 특수한 환경에 잠시 머물기를 자처한 예술가들은 어떤 것을 발견하고 목격했을까.

_김효정(독립큐레이터)

김승영, <Flag>, 2015

김승영

2011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소금, 깃발, 모터, LED, 가변크기

김승영은 2011년 노마딕 프로그램을 통해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다녀왔다. 1980년 후반부터 물, 이끼, 숯, 돌, 낙엽, 냄새 등을 비롯한 자연재료와 함께 빛과 음향, 사진, 기계장치 등의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진공 상태의 푸른 유리병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으로 남극의 백야를 표현한다. 하늘과 구름, 눈 덥힌 산과 바다가 서로 닮아 있는 정지된 듯한 풍경 속에 멀리 깃발만 흔들린다.

조광희

2011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싱글채널 비디오, 5분 반복영상

조광희는 2011년 노마딕 프로그램을 통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다녀왔다. <아름다운 소멸>은 여름을 맞아 기온상승으로 빙산이 유빙이 되어 사람크기만한 얼음들이 집단으로 녹고 있는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남극의 얼음이 서서히 녹는 모습과 녹는 소리로 12년 후 현재의 남극을 상상해 보게 한다.

김세진, <2048>, 2019

김세진

2018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3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10분 25초

김세진은 201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다녀왔다. 2048은 남극에 관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영토 “G"에 관한 픽션의 이야기이다. 2048년은 남극조약이 만료되는 해로 작가는 실제 남극에서 채집된 현실적인 영상들과, 접근 불가한 남극의 풍광을 3D 그래픽 영상으로 재현하여 우리의 상상 속 남극이 가진 허구성과 실재성 사이의 간극을 묘사하고자 한다.

염지혜, <검은 태양>, 2019

염지혜

2018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싱글채널 비디오, 13분 31초

염지혜는 2018년 남극세종과학기지를 다녀왔다. <검은 태양>은 그간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 이면에 얽혀있는 관계에 대해 표현했던 작가의 전작의 연장선에 있다. 평화로운 남극의 실사무빙 이미지 위에서 꼬마유령 캐스퍼와 물개가 재미있게 노는 영상이 겹쳐진다. 2018년 남극 세종기지를 방문하여 촬영한 영상을 주요 푸티지로 사용하면서, 오로지 과학적 활동만 할 수 있는 남극이 사실상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치적인 공간임을 드러낸다.

손광주, <파이돈>, 2021

손광주

2019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스

3채널 비디오 설치, HD, 컬러, 사운드, 33분 15초

손광주는 2019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3채널 비디오 설치로 풀어낸 아라온호 항해기이자 부분적으로 낭독극의 형식을 빌린 <파이돈>은 기후 변화와 자원 개발의 각축장으로 사라짐의 위기에 처한 북극해의 현재를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모습에 빗대어 그린다.

이정화, <올드랜드2>, 2023

이정화

2021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스

싱글채널 비디오, 7분 30초

이정화는 2021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작가는 극지의 광활한 자연을 마주하며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해빙을 상상하는 것으로 작품의 내러티브를 출발한다. 아무도 가지 못한 파란 땅인 올드랜드에 12세기에 등장하여 신항로개척 시대를 열었던 가짜편지 이야기를 푸티지로 가져온다.

홍기원, <마음에 담아라>, 2023

홍기원

2022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스

싱글채널, 컬러, 사운드, 각 14분33초, 12분 04초, 10분 13초

홍기원 작가는 과학자의 끊임없는 도전,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의미하는 영문제목 Wolf Trap으로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신의 방향을 표현한다. 2022년 아라온호 승선당시 촬영한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학과 예술이 가지고 있는 울림, 그 교차점을 바라본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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