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이 전시는 한국과 영국의 수료 1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것으로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소장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셔널갤러리는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824년에 설립되어 왕실 소장품이 아닌 영국 명문가가 기증한 작품들, 심미안을 가진 개인에게서 사들인 작품들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내셔널갤러리가 세워지기 훨씬 전인 18세기 초부터 유럽에서는 공공미술관 열풍이 일었는데 이는 크고 작은 전쟁의 나비효과입니다. 특히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귀족들이 그들에게 징벌적으로 주어진 세금을 낼 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내셔널갤러리는 ‘모두 국민을 위한 미술관’이라는 성격을 처음부터 고수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매달 한 점씩 미술관에 걸어놓아 두려움과 슬픔 속에 떠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이번 전시에 이 감동적인 스토리를 동영상으로 구현해놓아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 음악가들에게 ‘인생을 대표할만한 단 한 곡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들의 대표적인 ‘한 곡’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링크 삽입: https://youtu.be/QI1viKPG3TI?t=27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베토벤의 후기 작품 중에서도 그의 음악성이 가장 잘 드러난 대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시기 베토벤은 청각 장애뿐만 아니라 복통, 호흡기질환, 우울증, 간 경변, 황달 등 많은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왕성하게 작곡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엄격한 형식인 ‘소나타’ 장르치고 자유롭게 진행되는 1악장과 돌변하여 박력 있게 질주하는 2악장을 지나면 드디어 대망의 3악장에 이르게 됩니다.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와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라는 두 개의 빠르기 말을 갖고있는 3악장은 서정적인 서주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푸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주와 푸가 사이에는 같은 음정이 10번 반복되는 20초 정도의 연결구가 등장합니다(링크해놓은 영상 기준 18:13~18:33). ‘멀리서 비치는 빛이 점점 나를 감싸는 느낌이다, 지쳐 쓰러져있던 사람이 다시 힘을 내어 저벅저벅 걸어가는 느낌이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교회의 종소리 같다’ 등 이 부분을 듣는 청자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내어놓게 됩니다. 독자분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합니다.

링크 삽입: https://youtu.be/fHZu-UnqvdE?t=7

브람스 <이중 협주곡>

‘이중 협주곡’이란 두 개의 독주 악기와 관현악 협주를 위한 장르로 베토벤과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이 현재까지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라고도 불리는 브람스이기에 자연스럽게 두 곡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은 도입부부터 매우 독특한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비장한 오케스트라의 전주가 20여 초 흐른 후 갑자기 멈추고, 서정적인 첼로의 독주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저음역과 고음역을 넘나들다가 중음역대에서 만나는 부분들, 계단을 오르듯 재빠르게 같은 음계를 연주하는 부분들은 큰 쾌감을 선사하죠.

이 곡은 원래 브람스의 5번째 교향곡을 위해 구상된 음악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이 되었습니다. 초콜릿 무스 케이크처럼 꾸덕하고 빈틈없는 1악장, 대자연이 연상되며 한결 편안한 분위기의 2악장, 흥겨운 춤곡이 연상되는 경쾌한 3악장까지 전 악장에 걸쳐 바이올린과 첼로는 끊임없이 음악적 대화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링크 삽입: https://youtu.be/b5pBnp9LZ9g?t=8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우크라이나 출신, 구소련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총 두 개 작곡했습니다. 1번과 2번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지만 음악의 성격은 확연히 다른데 개인적으로 2번을 더 좋아합니다. 본래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작곡되었고 후에 구소련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도움을 받아 바이올린 소나타로 편곡되었습니다.

미국 유학 때 졸업연주 곡으로 이 곡을 연주할 때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미지를 구상해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평범한 사람이 본인이 가진 초인적인 힘을 깨닫고 각성해나가는 1악장, 본격적으로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 괴짜 같은 인물들을 만나며 서사를 써나가는 2악장, 높은 성 안에 갇힌 공주의 독백 같은 3악장, 게임이나 영화에 꼭 등장하는 나쁜 악당과 일대일 결투를 벌이게 되는 4악장까지. 바이올린 소나타치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25분 동안 진행되는 이 곡에는 다양한 장면과 감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수민 _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기악과 학·석사, 인디애나대 음대 연주자과정을 졸업한 이수민은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또한 기업체 강연자, 공연 해설자, 칼럼니스트, 유튜브 [클언니] 운영, EBS 생방송 뉴스에서 공연리뷰 코너 고정 패널을 1년간 맡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2년 클래식 입문서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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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바이올리니스트, 칼럼니스트  connect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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