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 마음 같을 때가 있다. 헤비메탈 계열 음악처럼 날이 서고 난폭하며 비장할 때가 있고, 댄서블한 모던록처럼 경쾌하게 내달리는 순간이 있다. 담담한 포크 음악처럼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알앤비 음악처럼 로맨틱해지는 이유를 나는 안다. 음악이 사람에게서 나오고 사람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확인하곤 한다. 기분과 상태, 취향과 미감을 알아차리는데 기여한 음악이 많다. 어쩌면 이렇게 나 같을까 싶은 음악과 나였으면 좋겠다 싶은 음악을 들으며 내가 되었다.

그 중 특히 선호하는 음악은 앰비언트 계열이나 침잠하는 재즈/월드뮤직 음악이다. 이 장르의 음악은 늘 번잡스러운 마음의 스위치를 내리고 눈을 감게 한다. 음악이 고요하다고 미욱한 나의 성품마저 고요해질 리는 만무하다. 다만 강제로라도 고요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잠시라도 침묵을 담고 싶은 것이다. 음악을 끄고 나면 금세 마음이 시끄러워지더라도 나를 멈추고 싶을 때에는 음악에게 투항하는 게 현명하다.

이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대개 솔로로 연주하거나 둘 셋이서 연주한다. 하지만 충분하다. 연주는 화려하지 않고 템포는 느리다. 소리의 울림에는 공간감이 물씬 배어나온다. 그래서 넓은 강당에서 홀로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 환상에 휩싸인다. 명상에 빠져들거나 기도를 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Arooj Aftab, Vijay Iyer, Shahzad Ismaily가 함께 발표한 음반 [Love in Exile]은 그 중 하나다. 이름난 재즈 피아니스트 비제이 아이어, 음악감독 샤자드 이스메일리, 아르주 아프타브가 2023년에 발표한 이 음반은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훌륭한 배경음악이다. 재즈 뮤지션과 영화음악가, 연주자와 보컬리스트가 함께 한 음반은 재즈와 일렉트로닉 그리고 네오 수피 음악 같은 월드뮤직을 내밀하게 조합했다.

건반과 신시사이저 연주가 안개처럼 깔리고, 아르주 아프타브의 목소리가 그 위에서 유영한다. 모든 울림은 조심스럽지만 이따금 뜨겁고, 음악의 속도는 느린데 여백은 무한하다. 아르주 아프타브의 노래가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는 알 수 없다. 음반의 제목에서 망명과 사랑, 그리움을 유추해볼 뿐이다. 분명 당신을 미워한다는 이야기일 리 없다. 당신을 그리워한다고 이야기 할 게 분명한 어조다. 현실에 매이지 말고 영원으로 나가자고 청할 음악이다. 오늘에 감사하고 소멸을 받아들이자고 말할 음악이다. 세 뮤지션이 멀어지고 다가오며 함께 빚어낸 섬세하고 부드러운 세계다.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신비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일까. 오리엔탈리즘적인 호기심도 아주 없지 않을 것이다. 욕망은 충만한데 현실은 답답하기 때문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음악이 현실의 기록이거나 현실을 깨트리는 무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따금은 자신을 향해 하강하는 도르래이기를 꿈꾼다. 자신 안에 무한한 우주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쓰레기 가득한 영역으로 걸음을 내딛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조차 사랑해보고 싶은 것이다. 가능하다면 미워하지 않고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음악이 있으면 왠지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음악을 끄고 일을 시작하거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나오면 번번이 턱없는 환상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음악이 흐르는 동안 품는 환상이 무용하지는 않다. 잠시의 도피는 삶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삶을 다른 호흡으로 맞이하게 도와준다. 어떤 음악은 기도 같고 쉼 같고 여행 같다. 일곱 곡이 들어있는 음반이 한 시간 15분이나 흘러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이따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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