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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소리비평] 음악을 보여줄 자유, 혹은 보여야 한다는 강박
  • 박종현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 승인 2022.11.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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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귀로 흘러오지만, 음악 작품을 청각(만)으로 감상한다는 관념은 인류사의 아주 짧은 순간에만 유효했다. 오랜 시간 동안, 좁은 의미의 무대 혹은 잔치나 종교행위 등의 장에서 연행하는 모습을 눈과 귀로 동시에 감상하는 것만이 작품화된 청각 예술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녹음 기술의 발명과 발달 속에서 “오롯이 귀로 듣는 음악”이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은 그러니까 기껏해야 19세기 말-20세기 초로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그리고 음악 및 관련 산업의 발달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 안에서 이러한 개념은 다시, 부분적이지만 광범위하게 퇴색되어가고 있다.

 

보여지는 예술로서의 음악 연행이 부각되도록 한 몇몇 시대적 결절점들이 있다. 대중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1981년 미국 “MTV”가 개국한 것이 그 한 지점이 될 것이다. 철저히 계산된 카메라 앵글 속의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뮤직비디오”들이 음악 감상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텔레비전이 선택하는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의 간극이 생겨났으며, 심지어 텔레비전에 거역하는 음악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까지 생겨났다.

단적인 사례로, 1990년대 초 모 음악프로그램에서 “더클래식” 그리고 “전람회”와 같은 음악가들이 투표를 통해 1위 후보에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하지 않자 순위 프로그램에서 제외시키고 그것을 당연한 듯 진행자를 통해 공표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거리에 흐르던 음악이 차차 인기를 얻는 “길보드차트”발 유행이라든가, 클럽 씬에서 유명해진 곡이 입소문을 타며 음악가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채 메이저 음악 차트에 입성하는 일이 1990년대까지는 흔했지만, 이제는 뮤직비디오, 화보, 시각적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비(非)청각적 전략이 결여된 노래가 일반인의 귀에 들어가는 경로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2010년대 이후 새 음악 및 음악가의 주요 노출 수단이 된 SNS가 시각적 이미지 혹은 영상 메시지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음악가의 행보와 새 작품을 검색하고 감상으로 진입하는 방식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음원 사이트보다 유튜브 등의 오픈 플랫폼에 올라온 영상 컨텐츠 쪽으로 기울어졌다.

필자를 포함한 독립 음악가들은 5년 전만 해도 선택의 영역이었던 “프로모션(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을, 점점 상향 평준화되어가는 촬영 및 편집 기술을 (돈을 들여) 사용하여 필수적으로 새 음악 작품과 함께 발표하는, 나아가 새 음악 작품을 선보이는 주요 수단으로 삼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감염병 상황이 시작되며 현장 공연이 줄어들자, 할당된 연간 공연 예산을 써야 하는 기관들부터 시작하여 영상 플랫폼을 통한 실시간 스트리밍과 실황 녹화본 업로드라는 새로운 공연의 형식을 택하였다. 플랫폼이, 그리고 TV보다 작은 스마트폰 및 컴퓨터 모니터가 부과하는 감상의 프레임은 또 다시 어떤 음악 혹은 음향의 형식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게 된다. 다수의 리얼 악기를 활용하는 다인원 밴드 록과 같은 음악은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작은 사각형 안에 효율적으로 담기기 어려워졌음을 토로하며, 현 기술 체제 안에서는 1~2명의 연행자로 구성된 음악이 가장 시청각적 전달에 효율적이라고 하는 동료 음악가의 말에 일리가 있다.

 

다른 한편, 한국 전통음악과 같이 “기관” 소유의 무대에서 양질의 무대가 많이 이루어지고 미디어의 수혜를 덜 받아온 장르는, 앞서 언급한 기관들의 적극적인 (최근에는 시들해진 듯하지만) 영상 컨텐츠 제작 붐 속에서 넉넉히 예산을 쓴 양질의 공연을 대거 오픈 플랫폼에 제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소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음악가들은 앞으로도 기술의 발달과 시각이라는 감각의 압도적 권력 속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지”를 고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창작자이든 감상자이든 음악적 경험을 다각적으로 확장하는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소리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한 강박이나 유혹을 짊어져야 하는 부담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그 안에서 음악 혹은 음악의 개념 자체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지만, 변화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만은 예견할 수 있다.

 

 

박종현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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