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CULTURE FESTIVAL’_월드뮤직 그룹 SE:UM

낯선 세계로 떠나는 새로운 예술여행

 ‘케이팝’만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음악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며 말을 건네던 관객의 웃는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문화공작소 세움 기획실에 입사한 지 4개월째 즈음, 나는 얼떨결에 이번 가을 해외 공연 ‘투어매니저’로 월드뮤직 그룹 ‘세움 SE:UM’과 함께 아랍과 아프리카를 가게 됐다. 아랍에미레이트와 나이지리아. 그 멀고 낯선 이국 땅, 내한공연은 구경했어도 해외 투어는 가본 적이 없어 호기심과 불안함을 가득 안고 떠났다. 예상보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이번 투어에 관한 감상을 전해보려 한다.

11월 2일 수요일, 첫 번째 공연,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

‘악기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며 혹여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하는 걱정은 밀려오는 졸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야금, 콘트라베이스, 장구가 컨베이어 벨트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시간은 몽롱하기만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항 문을 나서자 무거운 더운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버스로 30분여 정도를 달리고 나니, 앞으로 4일 밤을 기댈 숙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부다비 도착 당일, 오후 12시에 자히드 대학교 공연이 예정되어있었다. 연주자들은 체크인 후 몸을 풀 틈도 없이 바로 대학교로 이동 해야 했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아부다비는 ‘공사 중인 사막’으로 느껴졌다. 탁 트인 하늘과 맞닿아 있는 모래로 이루어진 땅은 이런 저런 공사현장으로 ‘점’이 찍혀있었다.

둥그런 교차로를 지나 자히드 대학교로 들어가자마자 검은 옷을 입은 여학생 무리를 마주칠 수 있었다. ‘아바야’라고 불리는 전통의상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버스 밖으로 본 아부다비의 모습보다 훨씬 ‘아부다비’의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화여대 ECC의 축소판 같은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내에서는 아부다비 한국 문화원에서 주최한 소규모 한국문화 체험 및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2시 20분, 아부다비에서의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울림이 심한 공간에서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연주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가야금’, ‘장구’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당연하고, 연주자들에게도 사진 촬영 요청이 계속 되었다. 나는 연주자들을 ‘아부다비의 아이돌’이라며 놀렸지만, 사실은 놀라웠다. 정말 한국의 ‘아이돌’이 온 듯,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세움’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 내가 괜한 뿌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내년에도 아부다비에 와달라는 말은 이 날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대학교에서의 ‘아이돌’ 체험, 잠깐의 휴식 후 남은 2회 공연이 펼쳐질 코니쉬 해변으로 갔다. 주최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타임테이블에 리허설 시간이 2시간으로 잡혀있었다.

“무슨 리허설을 2시간이나 해?”라며 연주자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2시간 20분의 리허설을 했다. 경험이 적은 현지 업체와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현지인들의 심하게 느긋하고 여유 있는 일 처리 방식은 한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야외공연, 더군다나 해변이 머금은 습기 때문에 음향 조정이 쉽지 않은 현장이었음을 감안해도 엄청난 시간이었다. 연주자들은 오전부터 이어진 일정, 한밤 중의 긴 리허설로 인해 지친 상태로 저녁식사를 10시에 마칠 수 있었다. 새벽에 도착한 아부다비가 벌써 3일은 지난 듯 느껴지는 밤이었다.

11월 3일 목요일, 두 번째 공연,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

오전 10시로 예정되어있던 당일 리허설은 현지업체의 느긋함으로 인해 오후 1시에 진행되었다. 햇빛이 쨍쨍한 코니쉬 해변은 아부다비가 ‘여름’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뜨겁게 데워진 검은 무대 위로 올라간 연주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리허설을 이어갔다. 차가운 물을 찾을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그늘에 서있던 나는 연주자들에게 미안해졌다. 너무 더웠고, 에어컨이 켜져있는 버스를 자꾸만 들락날락했다.

해가 지고 다시 돌아온 해변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변해있었다. 전통공예와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체험과 한국음식 시식, VR시연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휑하던 해변은 형형색색의 중계 화면, 검은 옷들 사이로 지나다니는 한복, 한국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대기실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우리의 순서를 기다렸다.

‘세움’의 공연 외에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케이팝 커버댄스’를 말할 수 있다. 소녀들은 한국문화원 케이팝 아카데미에서 배운 춤을 관객석 오른편의 공간을 무대로 삼아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저 소녀들이 우리 음악에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이 날, 멤버들은 <Korean Breath> 외에도 사물놀이, 사자 춤 공연도 함께 진행 했는데 ‘세움’의 멤버 이민형은 하루에 세 차례씩 무대에 올라야 했다. 화장실 갈 여유도 없이 무대 위를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무대 위에서는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 날의 길고 길었던 리허설의 악몽을 뒤로하고, 본 공연이 시작 되었다. 관객석 사이를 누비며 사진을 찍던 나는 관객들의 바로 옆에서 반응을 확인 하며 안도했다. 아이와 함께 음악에 푹 빠져있던 아버지, 친구들에게 쉴 새 없이 음악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 리플렛과 무대를 번갈아 보며 눈빛으로 호기심을 내뿜던 학생들에게서 우리 공연에 대한 감상을 찾을 수 있었다.

11월 4일 금요일, 세 번째 공연,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

저녁 공연 때까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날이었다. 멤버들의 얼굴에는 어제보다 훨씬 밝은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코니쉬 해변은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현지 코디네이터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증을 풀어 갔다.

기후 때문에 낮에는 야외활동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 한국의 ‘불금’ 같은 아랍의 목요일, 미성년자는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없다는 규율(?), 공연산업 자체가 빈약한 아부다비 상황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어제 공연을 본 사람들이 다가와 연주팀과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묻거나, 앨범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저 악기(가야금, 장구)는 한국의 전통 악기인지, ‘세움’의 음악은 어떤 장르인지, 선물을 전달 해줄 수 있는지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세움’은 새로 생긴 팬들과의 사진과 선물 전달로 시간을 보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멤버들은 웃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케이팝’만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음악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며 나에게 말을 건네던 관객의 웃는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움’이 새로운 ‘한국’으로의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솟아 올랐다.

11월 8일 화요일, 네 번째 공연, 나이지리아 아부자

2015년에 이루어진 나이지리아의 “코리아 컬처 페스티벌”은 세 팀의 공연이 있었지만, 올 해는 ‘세움’만 공연을 진행했다. 관객은 2015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세움’과 주최측에게 오히려 부담이 될 만한 상황이었다. 아부다비의 관객, 장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 아부자에서의 공연은 차분히 진행되었다.

아부자에서는 아부다비보다 관객맞춤형 공연을 선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지리아의 전통 음악을 ‘세움’의 형식으로 바꾸어 연주했고, 중계 스크린을 통해 곡에 대한 소개가 연주 내내 보여졌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찾아왔다. 좋은 음악, 멋진 공연을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직접 찾아와 그들의 기분을 전해주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런 마음들 덕에 짧지만 그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아부자를 떠나는 공항에서 우연히 전 날 공연을 본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는 그 말은 우리에게도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했다. 네 번의 공연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이 단순히 ‘세움’의 음악에서만 끝나지 않고, 한국의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지는 모습을 보았다. 아부다비에서는 가능성으로만 생각했던 ‘세움’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나이지리아에서 공연까지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현지 치안 상황 때문에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좁은 호텔에서의 시간은 지루하게만 흘러갔지만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장면이 있었다.

페이스북으로만 보던 연주자들 간의 ‘돌발’ 즉흥 연주가 그것이었다. 찰나에 이루어진 ‘잼’은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그들만의 언어로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은 음악을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열흘 간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내내 함께한 연주팀 세움과의 일정을 통해 코디네이터로서 나의 역할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세움은 이번 투어를 통해 또 새로운 음악으로 낯선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최영선 (문화공작소 세움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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