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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의 오페라로 보는 세계사] 오페라와 여인의 사랑③_ 희생의 사랑 2_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 승인 2022.10.3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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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의 원작소설과는 달리 오페라 투란도트는 가상의 이야기를 가상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 낸 판타지 오페라다.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19세기 유행하던 오리엔탈(극동 지역), 특히 중국과 일본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탐구의식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오페라다.

 

 

투란도트의 배경

오페라 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고치(Carlo Gozzi)가 쓴 몽환적인 희곡작품 <투란도트>를 푸치니가 두 명의 대본가인 ‘주세페 아다미(Giuseppe Adami)와 레나토 시모니(Renato Simoni)’ 와 함께 만든 미완성의 오페라 작품이다. 이 오페라에는 중국풍의 5음계가 많이 쓰였는데, 중국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던 푸치니로서는 좀 의아한 일이었지만, 당시 이탈리아에는 이미 중국인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던 지역들이 다수 있었기에 그들의 우화나 민요 따위의 선율은 쉽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다. 특히, 1막에 나오는 ‘어린 승려들의 합창’은 중국의 유명한 민요인 모리화(茉莉花)라는 멜로디가 그대로 사용되었다.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정확하게 명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경이 천자가 사는 수도로 나오는 것과(명나라 주체 즉 영락제에 의해 북경이 수도로 변모하였다. 조선 세종 때의 일이다) 북경으로 피신해 온 패망한 나라의 왕과 왕자의 이름이 티무르(티무르제국의 패망과 연결할 수 있다)와, 칼라프를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당시 중앙아시아지역 국가들의 변천사를 참고로 하여 중국의 명나라 시기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점이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우화를 바탕으로 한 희곡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어느 상상 속 나라라고 보는 것이 더 부합할 수도 있겠으나, 중국을 이웃하고 서로 관계성이 있는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로서는 특정 나라를 지정해 보는 것도 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듯하다. (티무르의 대명전쟁패전 1404년/ 명나라 영락제의 북경 천도 1421년/ 세종대왕 즉위 1418년) 하지만, 공주의 이름이 투란도트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족의 나라와 이름은 아니고 튜란국의 공주라는 이름이 북방지역민족의 나라라는 상상도 해 볼 수 있다.

 

피의 여인 투란도트와 희생의 여인 ‘류’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가 자신과의 결혼을 전제로 내는 세 가지 문제는 사실 그 누구도 맞출 수 없는 무척이나 작위적인 문제다.

 

첫째, 밤마다 새로 태어나고 아침이면 죽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요.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 무엇인가?

 

물론 왕자는 이 문제들의 정답을 말하는데, 그것은 희망과 피와 투란도트다.

세상에 이런 문제에 이런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 수 있었을까?

 

사실 투란도트는 오래전 공주였던 자신의 선조가 이민족 왕자의 침략을 받아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결혼 혐오주의자의 끝판왕이라는 가설로 오페라는 시작한다.

끝없이 청혼해 오는 각국의 왕자들과 끝없이 그들의 목을 베고 그것을 효수해 놓고 자부심을 느끼는 살기 넘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얼마나 이 오페라가 다루는 극의 긴장감 속에 죽음이라는 것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참혹한 상황 속에서 가장 온전히 빛을 발하는 여인은 바로 이 오페라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류> 라는 여인이다.

투란도트 류 장면

이 여인은 망명한 왕 <티무르>를 위해 시력을 잃은 그의 눈이 되어주고, 또한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패망한 왕국의 한 늙은 노인의 생명을 연장해 주고 있던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런 험한 삶을 스스로 자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왕국이 멸망하기 전 <칼라프>왕자가 비천한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그 모습,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던 여인이 바로 <류> 였다.

 

<류>는 단순히 왕자와 왕에게 봉사하는 순종적인 여인의 모습으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결국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의 정답을 모두 알아낸 왕자에게 다시 한번 시련이 다가오고, 왕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류’는 스스로를 희생할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류’가 이 드라마의 가장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것은 얼음같이 차가운 공주에게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그리고 이미 이러한 죽음의 파티가 일상화되어버린 불안정한 북경의 백성들 마음 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오페라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쩌면 비천한 신분이지만 숭고한 희생을 통하여 등장인물의 모든 운명과 삶에 대한 철학을 바꾸어 놓은 여인 ,바로 ‘류’ 일지도 모른다.

 

 

 

오페라 속 빛나는 음악

오페라 <투란도트>는 당시 유럽의 많은 시민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중국 문화를 배경으로 했다. 이미 오랜 시간 중국 문화는 이탈리아를 비롯, 여러 유럽도시에 적지 않게 퍼져나갔고 투란도트가 중국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새삼 할 필요도 없었다.

오페라 <투란도트>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

다만 오페라 <나비부인> 이후로 그다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오페라를 내지 못했던 푸치니는 이 <투란도트>의 희곡을 보고 무척 고무되었으며, 후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어떻게 해서든 이 작품을 끝내려 무던히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류’의 죽음씬 까지 쓴 후 그는 숨을 거두고 만다. 혹자는 ‘류’의 죽음으로 푸치니가 극을 마치려 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초연이 시작되기 전 푸치니의 후배작곡가 프랑코 알파노에 의해 완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초연 지휘를 맡은 <토스카니니>는 초연하는 날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연주하고 공연을 끝내 버려서 알파노가 많이 서운해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이 오페라에는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 할만한 아름다운 곡들이 많은데, <Signore ascolta>, <Non piangere Liu>. <Nessun dorma>, <Tu che di gel sel cinta> 등을 비롯 2막 전반부를 몽땅 이끌고 가는 핑, 퐁, 팡의 삼중창 역시도 너무 뛰어난 구성을 지닌 곡들로 유명하다.

 

 

 

물론 이 오페라에서도 ‘류’라는 한 여인의 희생이 나오지만, 앞서 이야기한 <나비부인>에서의 희생과는 그 결이 좀 다르다. 

‘쵸쵸상’이라는 어린 게이샤가 가문과 자신의 명예, 그리고 아들의 명예로운 미래를 위해 희생이라는 어찌보면 상당히 개인적인 죽음을 그려냈지만, ‘류’ 의 죽음은 보다 더 인류애적인 희생이라는 것에 무게가 주어져야 할듯하다. 단순히 왕자 ‘칼라프’의 목숨만을 위해 희생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녀의 이런 숭고한 희생은 북경의 모든 시민과 무엇보다 가치관이 지극히 삐뚤어진 한 절대 권력자의 편견과 운명을 바꾸어 놓은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한 인간의 희생이라는 가치의 세계관이 확장되었고 깊이가 더해진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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