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박종현의 소리비평
[박종현의 소리비평] 소음 혹은 음악, 녹음 혹은 작품 - “필드 레코딩 뮤직”의 시대
  • 박종현 뮤지션, 기획자 (월드뮤직센터)
  • 승인 2022.10.07 05:06
  • 댓글 0

졸음이 도무지 가실 것 같지 않은 아침, 반쯤 뜬 눈으로 침대에서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SNS로 들어가 “국립산림과학원” 계정으로 들어간다. 매일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 해당 계정에서는 “홍릉숲 소리 모임”이라는 이름의 방송이 시작된다.

 

때로는 담당자가 출장이라도 갔는지 다른 숲의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걸음이 땅과 부딪는 소리가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새 소리와 뒤섞였다가 각기 흩어진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십 분짜리 이 오디오 클립은 알람 소리보다 몇 배쯤 나를 살살 낮으로 구슬러간다. 엄밀하지 않지만 분명 리듬이 실린 발걸음 위로 다른 소리들이 음표처럼 들렀다 간다. 요즘 가장 즐기는 “음악”이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홍릉숲 소리”를 말할 것이다. 혹자는 그게 “음악”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좁은 의미의 (인위적으로 조직화된) 작곡과 작품, 음악 개념을 벗어나 침묵과 소음, 무작위와 우연을 작업 속으로, 혹은 작업의 본질로 끌어들이는 일은 서구 클래시컬 음악에서든, 대중음악에서든, 비서구의 다양한 음악들에서든 그 자체로는 전혀 새로운 선언이나 접근이 아니며 식상하기까지 하다. 다만 창작자와 연주자들이 이러한 선언 혹은 접근 안팎에서 수없이 행하는 그 실천들은 여전히 새롭고 때로 즐겁다. 광의의 서구 팝 음악을 본진으로 하며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어떠한 흐름 중 하나를 “앰비언트 음악”(공간(적) 음악)이라고 일컫는다.

 

 

병실에 누워 듣는 소리들의 총체를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적 전환으로부터 앰비언트 음악의 이념적, 실천적 지평을 만들어낸 영국의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영향력은 깊고 커서, 소리를 깎고 효과를 주어 특정한 공간성을 “그려내는” 전자음악적 태도(실사를 구현하는 3D 애니메이션에 비유할 수 있겠다)의 다발로도 발전하였고, 한편으로는 전통적 연주 자체를 특정한 공간과 소음 속에 위치시키거나 나아가 새로운 공간과 그 소리 자체를 받아내고 그것들을 음악의 재료 혹은 결과로 삼는 (다큐멘터리 편집 작업에 비유할만한) 접근들로도 발전하였다. “홍릉숲 소리”는 (물론 후자의 작업을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후자의 전통과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음악들은 현장 녹음을 기반으로 한 혹은 현장 녹음 그 자체라는 의미에서 “필드 레코딩 뮤직”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때로는 “찾아진 소리”라는 뜻의 “파운드 사운드(found sound (music))”라는 표현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멜론, 스포티파이와 같은 “지역화된/저작권화된 작품” 중심의 큐레이션이 아니라 상황과 기능에 맞는 사운드들이 마구 올라갈 수 있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국경을 넘어서 세상을 장악한 이후 세계의 멋진 “필드 레코딩”적 작업들이 빛을 보고 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얻어낸 사람과 자연의 소리들에 지터 등의 소리를 엮어 만든 어네스트 후드(Ernest Hood)의 걸작 <Neighborhoods>( https://www.youtube.com/watch?v=tUdSrNAgr2Y&t=301s )라든가,

 

 우크라이나 소도시 출신의 음악가 예브게니 톱치예프(Evgeny Topchiev)가 여러 자연 현상 소리들의 샘플과 패드 사운드를 엮어 세 시간 여의 전경을 그려내는 <Annuminas>https://www.youtube.com/watch?v=_VA2PBLiqMg&t=7694s,

 노르웨이의 음악가 게이르 옌센(Geir Jenssen)이 티베트 고지대에서 받아낸 소리들의 조직을 날것처럼 들을 수 있는 <Cho Oyu 8201m Field Recordings From Tibet>과 같은 멋진 앨범들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작품화를 의도하진 않았지만, 유튜브에는 온갖 “소음”의 공유를 주목적으로 하는, 어쩌면 작품화된 것들보다 더 깊이 공간 음악의 이념에 부응하는 컨텐츠들로 가득하다. 도서관 소음, 책상에서 공부하는 부스럭 소리, 혹은 야외 특정 지점의 현장음을 24시간 생중계하고, 청자들은 그것을 조용히 들으며 각자의 소리풍경을 바꾸어나가게 된다. 공부를 하거나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된다는 “ASMR”류 역시, 소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결국 그 소리를 “받아내어” 우리 귀 “주변”에 위치시킨다는 의미에서 필드 레코딩 음악과 완전히 멀지는 않다. 바야흐로, 필드 레코딩의 시대다. 장르 자체의 어법이 어디까지, 어떻게 발전해갈지 궁금하며, 그 안에서 음향과 음악, 소음과 작곡, 무대와 현장의 개념이 어떻게 제고될지도 궁금해진다.

 

 

 

박종현 뮤지션, 기획자 (월드뮤직센터)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현 뮤지션, 기획자 (월드뮤직센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