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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소리비평] 음악과 거리, 그 사이의 거리
  • 박종현 뮤지션, 기획자(월드뮤직센터)
  • 승인 2022.08.1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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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의 장소로서 ‘거리’라는 말은 ‘무대’의 반의어 혹은 여집합이다. 근대적, 서구적 의미의 무대-관객 개념이 자리잡은 이후 거리에 적을 두었던 많은 연행들은 무대 위로 옮겨가 새로운 맥락 속에 위치지어졌고, 거리에 계속 거하는 것들의 맥락 역시도 변화했다. “무대에 서다”가 곧 “연행을 하다”의 환유적 표현으로 매김하는 동안, 그만큼 “무대 밖에 서는” 일은 연행의 전형으로부터 배제되거나 격하당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그것이 거리의 음악과 그 연행을 고사시킨 것은 아니며 외려 무대라는 세계 너머에서, 그것의 대안 혹은 저항으로서 새로운 것들이 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전통음악계의 많은 구성원들이 무대 기반 예술을 지향하는 바깥에서 다른 전승자, 향유자들은 탈춤과 민요, 이어서 판소리를 사회적 저항의 현장들과 학생 사회의 한켠으로 끌고 와 발전시켰다. 광의의 서구 팝 음악 전통은 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무대 “위”에서 여러 한국 대중음악 전통들로 발전했지만 그 밖을 고향으로 여기는 민중가요라는 줄기 역시 성쇠를 거듭하며 이어져왔다.

물론 무대와 거리가 서로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운동성이 강조되는 창작 판소리 레퍼토리가 어느 순간 대학로와 주류 국악 무대에도 올려지고, 민중가요들이 주류 매체에 등장하거나 주류 팝 음악에 샘플링되기도 했다. 한편 거리가 음악에 꼭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80년대 학번인 한 지인은, 집회의 현장에 “문화적”인 팀들이 올라와 노래를 하기 시작하던 시기엔 대부분 “저 시간에 돌이나 던지지 왜 노래나 하고 있어”라는 비아냥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무대와 거리의 거리만큼, 거리와 음악 사이의 거리도 늘 변한다.

 

2022년 여름 서울시 을지로 3가의 노가리 골목, 그 안에서도 가장 붐비는 사거리 귀퉁이에서는 매주 금, 토요일 ‘문화제’가 열린다. “서울미래유산”으로 골목의 한켠을 지키던 “을지 OB베어”라는 가게가 “만선호프”라는 이웃 행위자에 의해 계획된 강제집행 퇴거를 당하고 그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이 수반되었다고 알려진 맥락 속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들을 비롯한 일군의 음악가들이 퇴거된 이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써 노래를 거리 한복판, 만선호프 지점들의 야외 테이블 바로 곁에 위치시키고 있다.

7월 중순 저녁, 그 사거리를 가만히 찾아갔다. 사거리 네 귀퉁이 중 둘은 만선호프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이른바 “술 먹다 나와 담배피는 곳” 혹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음악가들과 스무 명 남짓한 관객들이 앉은 마지막 귀퉁이는 완전히 열린 공간은 아니었고 플래카드와 스피커 등으로 감싸여있었다. 두 명의 연행자가 차례대로, 각각 클래식 기타와 전자기타를 들고 노래하고 연주하였다. 토요일에는 전자음악이 연주된다고 하였다.

거기 몇몇 예술가들과 안면이 있었지만 이날은 다소간 떨어진 채 뒤에서 지켜보았다. 지나는 이들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앰프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옆 가게 야외 테이블의 사람들 중 시끄럽다 화내는 이들은 없었고, 즐기듯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흡연을 하기 위해 서있던 이들은 공연 자체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담배를 피지 않는 중년의 어른들이 오래 멈춰서 물끄러미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보고 때로 영상을 찍는 일도 꽤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저사람 젊은 것 같은데 되게 옛날 감성이다 좋다,” “멋있다, 아티스트”와 같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라이브 카페도 아니고 힘들겠다.”라며 공연자의 환경에 대해 논하기도 하였다. “여긴 다른 세계야”라고 코멘트하며 훅 지나가기도 했다. 여러 세대의 부부나 연인들이 손을 잡고 길을 가다 가만히 멈춰서서 공연을 보다가 벽에 적힌 설명을 유심히 읽고 대화하는, 그러다 몇 분씩을 기다려 서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나던 사람을 이끌어 거리 한 켠에 적힌 글씨들 속으로 안내하는 데 있어 음악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벽면과 플래카드의 검고 붉은 글자와 그 글꼴, 이미지들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집회 현장하면 떠올리는 전통적 형상과 멀지 않았지만 소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90년대 민중가요 현장에 “적들의 유산”인 전자 기타를 써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는데, 2022년의 거리에서는 전자 기타로 심지어 재즈가 연주되고 있었다. 때로는 자유롭고 정교한 연주가 가사 없이 길게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음악가는 “구호를 한번 해볼까요”라고 나지막이 제안하고, 상생에 관한 짧은 구호를 말한 뒤 수줍은 듯 “이런 거 잘 못하는 데 해봤습니다,”라며 웃음지었다. 강렬한 창법이 수반되는 민중가요, 함성과 단호한 어투가 아닌 새로운 소리와 그 소리를 낳고 듣는 자들이 풍경을 채우고 있었다.

중간에 을지OB베어 대표가 마이크를 잡는 동안 천지인의 “청계천 8가”가 작게 깔렸다. 청계천 바로 곁에서, 이렇게 수많은 삶과 소리, 그리고 그들의 시공간이 섞이고 서로 대화하는 순간으로서의 거리를 잠시 지켜보았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렇게 차원들이 얽히고설키는 지점을 종종 “연결체”(nexus)로 표현한다. 무대 밖에, 화면 밖의 거리에 이러한 풍경이 여기 말고도 얼마나 많이 있을까. 그리고 음악은, 소리는 거기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음악이 거리에서 여전히 커다란 인력(引力)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밤이었다.

박종현 (음악가/기획자(월드뮤직센터))

 

 

박종현 뮤지션, 기획자(월드뮤직센터)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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