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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전쟁의 참사 노래한 비탄의 몸짓_장혜림 <에카><한국현대춤작가12전> 2번째 <에카>_ 담담하고 치밀한 구성
  • 김종덕 세종대학교 뉴미디어퍼포먼스융합전공 초빙교&
  • 승인 2022.07.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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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부터 개최된 ‘한국현대춤작가 12전’은 탄탄한 기량과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한 중견과 중진 무용가들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로 서른여섯 번째 무대가 2022년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최됐다.

 

‘한국현대춤작가 12전’, 첫날 두 번째 작품 <에카>에서 장혜림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짓밟힌 삶의 터전과 수많은 사람의 죽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아우성, 슬픔과 공포에 질려 여기저기서 우는 울음소리,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탄식뿐. 애도의 시간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슬픔과 마주하기로 하고, 내면에 존재하는 비통함을 나누며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비탄의 세계 속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혜림의 <에카>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에서 기적같이 생존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일기를 영화로 제작한 <피아니스트>를 깊이 참조하거나 패러디(Parody)한 것 같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다 폭격을 당한 스필만과 가족은 결국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되고, 알고 지내던 관리의 도움으로 간신히 혼자 목숨을 구한 스필만은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끈질기게 생존을 유지하지만, 순찰하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되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순간,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한다는 내용으로 세계를 울린 감동 실화 영화다.

만약, 안무가가 영화 <피아니스트>를 재현했다면 도입부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전쟁의 참상과 공포’라는 극단이거나 충격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막이 열리면 무대 위엔 객석을 마주한 피아노 앞에 연주자가 관객을 등지고 앉아있다.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굉음과 함께 무대 뒤쪽 중앙(Up stage center)에 건물의 파편과 분진이 쏟아져 내리며 암전(暗轉)이 되고,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른 뒤 피아노라는 한정적인 공간에만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fade in) 피아노 선율이 시작되고, 피아노 너머에 있던 무용수는 죽음과 폐허를 상징하는 흙먼지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 전쟁의 참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작품을 전개해나가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혜림은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전쟁 이후의 참상을 ‘비탄의 노래’로 시작한다.

막이 열리면 남루한 옷을 입은 남녀가 의식을 치르듯이 하얀 가루를 손에 쥔 채 슬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손에 쥔 하얀 가루를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흘려보내면서 걸어 들어온다.

 이후 무대 하수로 잠깐 퇴장한 남자가 운구행렬처럼 피아노를 이리저리 밀고 다니다가 무대 중앙에 배치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하얀 가루는 두 가지의 상징을 의미하는듯한데, 손에 쥔 하얀 가루는 화장 후 남은 한 줌의 뼛가루를 의미하며, 피아노 위에 쌓여있는 하얀 가루는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전쟁의 참사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잘 표현한 장혜림은 무대 위에서 섬세하고 유려한 몸짓을 통해 때로 나약하고 가련한 모습으로 폐허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격정적이고 고뇌에 찬 몸짓으로 피아노 선율을 표현하는 완벽한 악기와도 같았다. 

그녀의 춤은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일상에서 찾지 못하거나 놓치는 상징과 은유를 장혜림은 영리하게 활용함으로써 명료해진 작가의 의도는 쉽고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장혜림의 작품이 진지하다고 해서 결코 어렵고 추상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다. 춤언어 자체가 규격화되어 있지 않아 난해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며, 그래서 우리 주위에 있는 일상을 구체화하거나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이슈를 소재로 삼는다.

장혜림 _안무

 장혜림의 춤은 섬세하고 유려하지만, 빠르고 강하지 않아서 자극적이지 않음에도 관객의 시선은 무대에 고정되고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피아노 선율을 섬세하게 몸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오브제로 사용하여 때로는 자신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때로는 피아노 위의 분진을 활용하며, 때로는 피아노 위가 무대가 되고, 건반 위를 걸으며 불협화음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는 치밀하고 계산된 구성으로 작가가 관객에게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는 안무가이자 무용수임을 무대에서 증명하고 있다.

 

 

김종덕 세종대학교 뉴미디어퍼포먼스융합전공 초빙교&  choom1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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