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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근의 리허설룸5]_<파르지팔> 세 번째 이야기 -암포르타스예술 속 구원: '인간적인 동정심 Mit-leid'
칼스루헤 순간

바그너의 작품 중 권력자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한 비극적인 갈등의 희생자는 <발퀴레>에 나오는 지크문트이다.

신과 인간사이에 태어난 영웅의 핏줄을 계약의 창에 새겨진 주문에 의해 스스로 끊어버려야 하는 신과 배반당하는 아들의 통곡의 장면은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와 함께 상상해볼 수 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에는 영적인 세계의 지배자들의 괴상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엿보인다. 십자가위의 예수를 찌른 성창, 그리고 그의 옆구리로부터 흐르는 피를 담은 성배를 모시는 그랄의 상왕 티투렐과 성적 유혹에 넘어가 악마에게 스스로 성창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아들 '암포르타스' 사이의 엄숙한 서사는 오페라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으나 크리스챤으로 파르지팔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과 함께 불편함마저 느끼게도 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7:24)

 

암포르타스역으로 드라마틱 헬덴 바리톤을 캐스팅한다. 태풍이 부는 오대양을 영원히 떠돌아야하는 '방황하는 화란인'과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겨 파멸에 이르는 카스파역과 함께 전형적인 독일 바리톤역할이다. 이런 역들은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쾌락, 죄와 고통에 대한 독일인들의 정서를 조명하는 기능을 하게되는것 같다. 파우스트 레전드가 사회 깊숙히 뿌리박힌 문화권에서 연출가에게 암포르타스역은 그들의 역사적, 심리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다. 파르지팔 리허설중 연출가와 성악가사이의 민감한 코멘트가 오고가면서 긴장감이 돌때도 있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조금만이라도 종교와 정치가 은유된 해석이 불거지면 상황은 불편해졌다. 또한 각기 다른 국적과 인종이 모여 제작되는 과정에 특정 단어의 사용은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부주의하게 입버릇을 발설하면 리허설룸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리고 잠시간의 몇초는 돌이킬 수 없는 긴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되면 동료들은 서로 암포르타스의 고통스런 텍스트 'Erbarmen! 불쌍히 여기소서'를 되뇌이곤 했다.

 

https://youtu.be/l7-7oaZ5g7k

개인적으로 아프로 아메리칸 바리톤 사이먼 에스테(Simon Estes)의 암포르타스의 캐스팅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제작진의 도발성을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한다. 성적유혹에 넘어가 저주받은 왕이 집도하는 성찬식 장면을 아프로 아메리칸 성악가를 무대위에 세워 독일 관객에게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자학적 연출이 문화적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진 보수의 심장부에 올릴 수 있는 대담함과 용기는 그들의 예술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잘 드러냈다.

Badisches_Staatstheater_Karlsruhe_IMGP2104

 

 

필자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 근무할 적에 우연히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자원병원선교를 하면서 영성체를 집도하는 한 중년의 독일부인을 알게되었다. 그는 어떤 깊은 신학적 배경과 교육과정을 지닌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가 진행하는 예배는 삶의 경험에서 오는 지혜와 진정성이 전달되었고 개인적으로 시간이 날때 커피타임을 함께하기도 했다. 한번은 파르지팔 공연에 초대해서 함께 공연을 관람한적이 있다.

 제1막 2장 영성체장면에서 그는 내 옆좌석에서 숨을 깊이들어쉬면서 긴장하는 느낌이 역력했고 나는 내심 파르지팔에 초대한것이 잘못된 판단이였는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그는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고 내게 감사의 뜻으로 점심초대를 약속한 후 헤어졌다. 몇주 뒤 그는 내게 파르지팔 공연관람은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자신에게 커다란 문화충격이였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힘든 순간들을 오로지 신앙과 봉사로만 채워온 자신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이였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공연중 자신을 긴장하게 했던 몇몇 장면을 설명했다. 상처입은 암포르타스에게 상왕 티투렐이 영성체를 집도하게 하는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으며 성악가가 성배를 들어올리는 순간 그의 흰색 의상이 피로 물들여지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무릎을 떨며 오열하는 장면은 견디기 힘들어서 공연장을 떠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공연에 등장한 많은 상징적인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족한 신학적지식을 아쉬워하며 틈틈이 종교와 예술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며 긴시간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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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구원을 주제로한 생각은 그의 전 작품에 관통을 하고 있다. 나는 파르지팔의 마지막 장면에 울려퍼지는 텍스트, 곧 바그너의 마지막 텍스트 'Erlösund dem Erlöser! 구원자에게 구원을!'은 '동정심'으로 번역되는 Mit-leid를 통해, 정확히 '인.간.적.인.동.정.심'에 의해 성취된 구원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성취된 '인간적인 동정심'이 구원의 기능을 가진 문화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https://youtu.be/j_kTILC3sDA

고통스러운 유산, 암포르타스 아리아 - 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

 

 

글: 윤호근

사진: 김진수, 칼스루헤 국립극장

 

 

Silent Noon- Moments in Karlsruhe - 2022423

 

윤호근 지휘자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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