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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Wien)의 소리를 듣는 시간
  •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09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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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이 되는 해다. 특별히 이에 걸맞는 공연들이 연중 올라오고 있다. 한경필하모닉은 지난 달 ‘코레아의 신부’를 국내 초연했다. 125년 전 빈 국립극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지만, 악보가 소실되어 그 뒤론 연주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수교 130주년을 맞이해서, 무대 위로 작품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빈 심포니가 한국을 투어하며 빈 사운드를 펼쳤고,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루돌프 부흐빈더가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연주했다.

 

빈의 색채를 간직한 빈 심포니

빈 심포니는 빈 필하모닉만큼의 명성과 실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역에서 그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악단이다. 게다가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등 시대를 초월한 걸작들을 초연한 유서 깊은 악단이기도 하다.

 

한국에 날아온 빈 심포니는 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성사되었다. 당초 협연자였던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건강상의 이유로 참여할 수 없어,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으로 교체되었고, 지휘자는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에서 필립 조르당으로, 그리고 다시 장한나로 변경되었다. 오케스트라 말고는 전부 변경된 셈이다. 아직 코로나를 겪고 있는 이 시대는 여러 변수를 만들었다.

 

1부에서 협연자인 길 샤함은 우아함으로 휘감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길 샤함과 빈 심포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레퍼토리였다. 팀파니의 모티브로 작품이 시작되고, 어느 하나 우아하지 않은 대목이 없었고, 길 샤함의 연주는 어느 하나 빈틈이 없었다. 3악장의 카덴차는 단순히 연주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작품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2부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었다. 빈 심포니는 정말 익숙한 음식을 요리하듯 자연스러웠다. 여러 양념을 가미하지 않고도, 그럴듯한 음악을 요리해냈다. 이들에겐 베토벤은 호흡하듯 자연스러웠다. 지휘자 장한나는 여기에 더 큰 다이나믹을 요구했고, 더 큰 대비를 요구했다. 2악장과 4악장은 그녀의 뜻에 따라 음악의 진폭이 커졌다.

 

본 공연이 종료되고도 빈 심포니는 여전히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가장 먼저 들려준 앙코르는 브람스 헝가리 무곡이었다. 템포를 천천히 잡으며, 작품이 가진 다양한 요소들을 꺼내어 보였다. 흥겹기도 했지만, 집시음악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서러운 정서도 잘 표현했다. 이 작품을 단순히 엔터테인적인 요소로만 소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를 기념할만한 앙코르로 ‘아리랑’을 준비했다. 해외 단체가 내한하는 경우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빈 사운드로 무장한 이들의 연주로 ‘아리랑’은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다.

 

빈에서 날아온 시인, 루돌프 부흐빈더

오로지 슈베르트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슈베르트 즉흥곡 D.899에 이어 슈베르트 만년 최고 걸작인 슈베르트 소나타 D.960가 이어졌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슈베르트만으로 예술의 시간을 채워 더욱 뜻 깊었다. 사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한국을 자주 찾는 예술가에 속하지만, 베토벤 작품 이외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부흐빈더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부흐빈더가 연주한 슈베르트 D.960은 굉장히 산뜻하고, 또 마음이 간지러웠다. 긴 시간 동안 발효되어 개성이 폭발하는 노년의 아티스트에겐 여러 가지 예술적인 선택이 있었을 것이고, 부흐빈더는 이미 모든 선택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게 진솔하고 진정한 예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정한 예술'이라는 개념은 막연하다. 굉장한 아이디어와 노력에 의해 한땀한땀 이루어진, 이런 장인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휴머니티를 표현하는데 인간이 건축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면 그건 단지 인간이고, 음악 그 자체가 되어 말하는 게 그 윗단계다. 부흐빈더의 연주에서 그런 것이 느껴졌다. 많은 팬들이 그의 음악을 신선같은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 같다. 설명도 어렵고 인간은 전혀 모를 경지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럴 순 있겠지만.

 

부흐빈더의 마지막 앙코르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빈의 저녁' 을 듣고 있으니, 슈베르트 내내 보여주었던 부흐빈더 특유의 터치와 가장 잘 맞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들송처럼 들리는 빛나는 터치와 눈앞에서 펼쳐지는 왈츠의 생동감은 시든 꽃이 살아날만한 정도가 아니라 조화마저 생화로 변하는 마법에 가까웠다. 팬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날 순간이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huhmyeong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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