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자 이동기 교수의 ‘오스탈기’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오스탈기란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향수를 의미하는 ‘노스탈기’를 합친 말로, 독일 통일 후 1990년대 중후반부터 나타난 ‘동독적인 것’들의 재평가 및 향유 문화를 말한다. ‘클럽 콜라 등 동독 ‘출신’ 상표 및 제품에 대한 적극적 소비라든가, 동독 시절의 자동차 ‘트라방’을 튜닝하는 취미의 확산, 당대의 의복, 말투, 춤 등을 재현하는 오스탈기 파티의 유행 등이 그 예이다. 스웨덴의 팝 그룹 ‘아바’의 음악 이야기가 이와 관련된 논의에 엮여든 순간이 흥미로웠다. 스웨덴은 자유주의 진영에 속했지만 사회주의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국가였기에 동시대의 동독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아바의 노래가 널리 울려펴질 수 있었고, 이는 시간이 지나 오스탈기를 구성하는, 버젓이 ‘동독스러운’ 요소로서 다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세타 로우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공간화되는 문화’, 좀더 나아가자면 ‘공간화되는 시간성’의 한 사례가 될 것이다. 어느 과거에 개인 혹은 집단으로서 경험한 일들, 생활의 양식들이 특정 시대와 부류의 문화로서 소환되고 재구성되어 새로운 현재 속에 공간을 꾸리고 나름의 의미를 이룬다. 이렇게 소환되는 것들 중 소리는 중요한 하나다. 2010년대 이후 구소련 지역에서 일군의 전자음악가들이 소련 시절의 음악적, 비음악적 요소들을 다시 가져와 새로운 시대의 음악 공간 한켠에 부려놓은 ‘소비에트 웨이브’도 그 한 사례일 것이다. 유사한 사례가 2000년대의 한국에 있냐고 묻는다면 ‘7080’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7080' 이라는 시간 기호

언젠가부터 우리는 ‘7080’이라는 시간 기호를 어느 소리들, 그리고 그 소리들이 향유되는 공간을 가리키는 데 쓰고 있다. TV 음악 프로그램의 제목(‘콘서트 7080’)에서, 편집 앨범의 타이틀(‘7080 쎄씨봉 추억콘서트’)에서, 음악 바 혹은 라이브카페 등의 간판 및 검색 해시태그에서(‘ooo 7080 라이브, #7080 뮤직바’) 우리는 7080을 어떤 시대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어떤 노래의 레퍼토리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향유 행위와 그것들이 담긴 장소를 일컫는 데에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사회학자 김왕배는「향수: 대중음악과 ‘칠공팔공(7080)’ 세대의 그리움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용어로서의 7080이 대중문화 마케팅/미디어 영역에서 발명되었으며, 해당 시대에 청년기를 지낸 이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인 대학졸업자, 중산층의 향수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7080이라는 이름의 소리공간이 붐을 이루기 시작한 시기에는 서울(에 위치한 몇몇 공연장과 클럽, 음악다방) 혹은 중앙 미디어(대학 기반 그룹사운드 중심의 가요제) 그리고 당대의 대학생 문화와 연결되는 어떤 종류의 음악과 사람들, 그리고 ‘통기타/라이브’라는 오브제 및 연행 포맷이 곧 7080을 상징했다. 현재는 시간이 지나며, 이 개념은 이 시대를 통과한 보다 다양한 정체성, 다양한 음악, 다양한 소비 행위들을 품으며 분화되어 있는 듯하다. 예컨대 7080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공간은 ‘듣기’ 중심의 LP바, 포크나 그룹사운드 공연을 ‘관람’하는 공연장/카페, 그리고 해당 세대 손님으로 특화된 술집 이자 실제 연주와 함께 관객이 노래하는 ‘라이브’ 주점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주로 존재하고 있다. 20여년 간 한반도의 여러 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겪은 음악행위들이, 수십 년 후의 공간 속에 여러 주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7080은 ‘6080’으로 확장되어 (돈의문박물관마을과 ‘추억의 음악다방’ 공식 소개) 서울 한가운데 자수 액자, 유엔 성냥, 연탄, 어항과 풍금 등과 함께 ‘음악다방’의 형태로 박물화되기도 하고, 7080의 성공에 힘입은 8090이라는 주류 미디어발 파생 상표의 등장과 확산을 추동하기도 하였다. 한편 LP의 전성기가 90년대 이전이었기에 자연스레 7080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었던 ‘LP 바’라는 공간은, 201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LP 붐으로 인하여 더이상 그 연결성이 이전만큼 공고하게 유지되지 않게 되었으며, 7080 시대를 제대로 혹은 아예 겪지 않은 어린세대들과 멀지 않은 (때로는 그들에게 ‘힙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개념과 개념의 관계들은 끝도 없이 변화하고, 확장되고, 새로워진다.

최근 한 LP 산업 관계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메이저 혹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LP 발매가 (처음에는 힙스터 문화로 인식되며) 급격히 활발해진 것이, 기존의 ‘LP 세대’들에게는 ‘없던 소리들/음악들의 발견’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 90년대 이후에는 ‘포크’란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요즘 어린 친구들도 계속하고 있었구나!” 이런 반응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소리에, 소리는 매체에, 매체는 시대에 수이 갇히는데 이렇게 매체의 부활과 함께 소리들이 그 구획을 넘어 날아가기도 한다. 7080이라는 개념 그릇도, 그것이 한때 담아내었던 소리와 행위들도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향유자로서든 연구자로서든, 주변에 있는 이러한 공간과 그 공간들 속 소리를 겪고 즐기고 좇아보는 일은 즐거울 것이다.

박종현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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