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누구라도 황홀해질 재즈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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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누구라도 황홀해질 재즈 라이브-재즈 베이시스트 황호규 라이브 음반 [Stiger Live! - Hogyu "Stiger" Hwang Quartet Live at JCC Art Center]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승인 2022.03.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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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유독 좋아한다. 좋아하는 장르가 뭐냐고 물으면 늘 록, 재즈, 포크라고 답한다. 어렸을 때는 재즈를 몰랐는데, 음악을 직업적으로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재즈에 빠져 들었다. 재즈는 아름다워서 좋았고, 자유로워서 좋았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고요하거나 폭발하거나 재즈에는 수많은 아름다움이 넘실거렸다.

무엇보다 즉흥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다른 음악이 펼쳐져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그 무한한 변화와 가능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역사가 길고, 록이나 월드뮤직 같은 다른 장르를 받아들이며 성장한 덕분에 다채로운 방법론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노랫말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일을 하며 들어도 방해가 되지 않는 것 또한 장점이었다. 좀처럼 주류가 되지 못하는 장르라는 사실은 단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보거나, 음반 리뷰를 쓸 때면 자꾸 재즈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오늘 재즈 베이시스트 황호규의 음반 [Stiger Live! - Hogyu "Stiger" Hwang Quartet Live at JCC Art Center]을 붙잡은 이유이다.

이 음반은 2017년에 황호규가 드러머 조너선 바버, 색소포니스트 가드윈 루이스, 피아니스트 빅터 굴드와 함께 한 공연의 라이브 음반이다. 음반이 나온 것은 지난 해 12월 21일이었으니 공연을 마치고도 4년이 걸린 셈이다. 음반 출시가 늦어지고,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라이브 공연을 열기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황호규는 같은 공연장을 다시 찾아가 그리움 가득한 베이스 솔로곡 <Dear Audience>를 녹음한 후 비로소 음반을 마무리했다. 음반에 담은 8곡 가운데 <Straight, No Chaser>을 제외한 7곡은 모두 황호규와 동료 뮤지션들의 곡이다.

이 음반을 들으면 재즈를 잘 알거나 모르거나 반하기 마련이다. 네 명의 연주자가 내내 싱싱한 에너지를 내뿜기 때문이다. 지금 젊은 재즈 뮤지션들 가운데 돋보이는 연주자 네 명이 구성한 퀄텟답게 연주의 모든 순간은 역동적이다. 이미 레코딩했던 자신의 곡을 낯선 한국에서 라이브로 펼쳐 보임에도 연주는 한 순간도 관성적이지 않다. 드럼과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가 어울린 연주는 매 순간 창조적이며 생동감이 넘친다.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수시로 탈주하는 연주는 곡의 드라마를 끊임없이 확장한다. 매끄럽지만 순종적이지 않은 연주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더 멀리 달려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래서 이렇게 흘러갈 거라는 예상을 번번이 무너뜨린다. 끝날 것 같은 순간에 끝나지 않고, 자신이 연주를 이끌지 않는 순간에도 번득인다. 이/합/집/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연주는 경계가 없고 한계도 없으며 즐겁다.

수록곡들의 스타일이 달라 다양한 재즈 언어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음반의 매력이다.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에서 들려주는 솔로 베이스 연주와 흥겨운 중남미 리듬의 발산이 전부가 아니다. 빅터 굴드가 쓴 <Clockwork>는 16분이라는 긴 길이를 다채로운 즉흥작곡의 퍼레이드로 채운다. 황호규의 자작곡인 <Beautiful Mind>와 <Beyond>에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배어있다. 네 명의 연주자가 자신들의 곡을 함께 연주하고 있을 뿐, 음반은 한 가지 이야기만 들려주지 않는다. 각자의 이야기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음반은 연주자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음반의 라이너 노트를 쓴 평론가 황덕호의 이야기처럼 이렇게 역동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것은 이들이 모두 수준급의 연주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라이브 연주 실황을 담은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무대는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연습했던 플레이를 재현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날의 날씨와, 공연장의 공기, 조명, 관객의 체온과 숨결, 시선, 연주자들의 앙상블은 번번이 새로운 순간을 만나게 한다. 그 의외성이 바로 라이브의 진수이며, 재즈의 핵심이다. 이 음반이 그 증거다. 좋은 곡조를 순간적으로 터트릴 뿐 아니라, 담대하고 자유로운 플레이를 들으면 누구라도 황홀해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황호규라는 근사한 연주자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