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비롯한 무속의례와 그 음악을 생활의 영역으로부터 서구식 무대로 옮겨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현재적인 의미와 형식을 담은 예술로 거듭내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지난 2월 16일(수) 저녁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비손 Two Hands>은 이러한 무대화 및 현재화 시도의 지금을 보여주고 또 생각케 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의 제목 <비손>은 가정에서 손을 비비어 신을 섬기는 소규모의 의례를 일컫는다. 실제 공연의 진행은 엄밀히 말하면 의례로서의 ‘비손’이 지닌 절차나 시공간적 구조를 재현한 것은 아니며, 보다 규모와 격식을 지닌 의례 형태인 ‘굿’의 구조 중 신을 부르고(청신), 즐겁게 하며(오신), 보내는(송신)의 세 과정을 취하였다. 공연 중후반부 내내 뒷벽에 투사된, 나무 모양을 연상케 하는 여러 미디어아트 이미지는 마을굿의 한 요소인 당나무를 떠올리게도 하였다.

전통적 관념에 입각하여 지어진 이러한 구성틀 속에서, 다섯 명의 음악가가 동양과 서양, 어쿠스틱과 전자악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소리들을 펼치어냈다. 유경화 예술감독은 무대의 중심에 자리하여 장구와 철현금, 그리고 심벌을 포함한 좌식 드럼 세트를 번갈아가며 연주하였고, 잠비나이의 멤버이기도 한 이일우의 태평소, 생황, 피리 그리고 기타가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두 소리꾼(박성훈, 박범태)은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신명수(신디사이저)가 내는 이른바 ‘패드’ 계열(지속되는 음 혹은 화성 기반의 건반 음색)의 사운드와 맞추어가며 성악 부분을 끌어갔다.

카리스마 넘친 철현금, 그리고 적재적소에 등장한 피리는 특히나 이러한 패드 사운드, 그리고 중반부를 덮는 전자 비트와 여러모로 잘 어우러졌다. 고향과 연원이 다른 여러 악기들의 톤을 서로 겉돌지 않고 각자의 매력을 내며 서로에게 잘 묻도록 만들어낸 것은 많은 소통과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며, 청자로서 이를 귀와 눈으로 겪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리의 쾌감과는 별개로, 이렇게 만들어진 소리의 총합이 기존에 확립된 여러 장르나 무드 예컨대 ‘앰비언트 음악’ (화성을 품은 패드 신스가 부각되는 전반부), 소위 ‘에스닉 록’ (장구 및 드럼 세트가 부각되는 전반부 일부),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록’ (철현금과 여러 악기의 상호작용이 부각되는 중후반부) 등의 어떤 형태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공간감이 강조되는 종류의 패드 신스와 강렬한 철현금 연주, 존재감 확실한 피리와 생황이 어우러지는 중후반부를 듣다 보니 플루티스트 테오 트래비스(Theo Travis)와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듀오가 만들어내는 앰비언트 사운드와 겹쳐져왔다.

이러한 비전통, 비무악 장르의 어법을 상기하게 하는 소리들은, 분명 좋은 음악가들에 의해 멋지게 잘 빚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전통악기와 무속음악이 지니는 차별적 특성을 전달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달리 말하면, 전통 무속의례, 무속음악이라는 연행의 틀과 주제, 색채를 드러내는 데 최선으로 부응하는 음악적 선택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공연 후에 남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 연주자가 이끄는 기악이 공간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전면에 나서면서 두 명의 창자가 내는 음성과 언어가 무대적으로나 음향적으로 묻히는 느낌이라든가, 패드가 내는 화성이 소리와 그 소릿길이 주는 선적인 미학을 과하게 잡아먹는 순간들이 조금씩 아쉬웠다.

전통적인 개념과 형식을 연행의 기반으로 취하였을 때, 서구적 무대 개념 자체를 포함한 비전통 요소와 어우러지면서도 그 어우러짐으로 인해 기반이 가려지거나 퇴색되지 않게끔 하려면, 혹은 그 기반이 더 강조되게끔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새삼 고민해보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이러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비손’이라는 연행의 주제와 형식은 공연 중반부의 클라이막스, 즉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희생된 한 청년의 유족이 무대에 등장하여 유경화 예술감독 그리고 무용가 이서윤의 몸짓과 함께 망자의 넋을 떠나보내는 일을 통하여 관객에게 충분히 설득력있게 전달되었다고 하겠다.

실제 우리 곁을 떠나간 망자의 이야기가 연행 속으로 들어옴으로써, 본 공연은 죽음 및 그와 관련한 의례의 추상적 재현을 넘어, 어머니의 축원과 그것을 감싼 예술가의 몸짓 및 소리, 그리고 관객의 감상 행위로 이루어지는 ‘산’ 의례가 되었다. 관객은 망자의 집 마당에 초대되어 바로 곁의 죽음들을 목도하고, 상기하고, 함께 비는 비손 의례의 참여자가 되었다. 이러한 참여의 경험과, 그것이 건네준 느낌과 생각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한 공연이었다.

글_박종현 (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 사진_케이아츠크리에이티브

<생각의여름>이라는 타이틀 아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음악가.

기타와 건반과 해금 등을 연주한다. <생각의여름> <곶> <다시 숲 속으로> <The Republic of Trees> 등의 음반을 냈다.

박종현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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