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을 하면서, 특히 음반 리뷰를 쓰면서 음악의 지도를 그린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날마다 새롭게 발표하는 음악이 3,000곡 가까이 되는 세상에서 이 음악들을 다 듣기는 불가능하다. 그 중 1/10만 챙겨 듣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사람의 정체성이 음악을 고르거나 평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음악평론가라고 모든 음악을 동등하게 듣고 불편부당하게 평가하지는 못한다.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지역에 따라, 경험에 따라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음악, 더 깊이 이해하거나 하지 못하는 음악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따금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듣고, 고르게 평가하는 안목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다.

비평은 정해진 정답을 맞추는 게임이 아니다.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정직하게 쓰는 일이다. 아무리 인기가 있더라도 자신의 심장에 와 닿지 않으면 그렇다고 쓰는 일이고, 아무리 소수만 주목하는 음반이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음악이라면 그렇다고 쓰는 일이다. 평론가는 이렇게 자신의 감각과 판단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음반을 골라 음악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지도를 제출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재즈 피아니스트 황은정의 두 번째 음반 [나르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이다. 이 음반이 대중적으로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고, 이 음반을 주목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최근에 나온 음반들 가운데 이 음반만큼 큰 감흥을 준 음반은 없었다.

[나르샤] 음반은 일반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의 음반과는 조금 다르다. 황은정은 이 음반을 동료 재즈 뮤지션들만으로 구현하지 않았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한 재즈 트리오는 세 명의 사물놀이 팀을 불렀다. 그리고 태평소와 해금, 첼로 연주자까지 참여해 총 9명의 뮤지션이 앙상블을 펼친다. 요즈음 한국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 그 중에서도 재즈 뮤지션이 참여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늘어나는 추세와 연결되는 음악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음반은 몇 가지 차이가 있다. 황은정의 음반은 재즈와 국악기, 그리고 첼로를 활용해 대중음악의 주류인 록, 일렉트로닉, 팝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들으며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음반에는 노래도 없다. 황은정을 비롯한 연주자들은 연주하고 연주할 뿐이다. 또한 음반의 수록곡들 가운데 일부(<Social Movement>, <코리아2017>, <희망>, <Global Movement>)는 사회 현실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차이를 동반한 [나르샤]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의 조화에 있다. 그 조화는 대부분의 수록곡이 재즈 연주곡으로 단단하게 결박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황은정이 연주하는 재즈 피아노와 베이시스트 전창민, 드러머 김종국은 첫 곡 <편도항>에서부터 서정적인 서사를 구축하고, 각자의 변주로 풍성해진다. 아울러 황윤정의 첼로는 그 울림을 더 풍요롭게 물들인다. 사물놀이 팀이 함께 연주하는 <나르샤>에서도 황은정 트리오는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연주를 펼쳐놓으며 승기를 잡는다. 사물놀이팀은 황은정 트리오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논다. <코리아2017> 같은 음악에서는 한국 전통음악을 앞세우고 대화하며 흥겹게 놀기도 하는데, 황은정은 전통음악을 속화시키지 않고, 가볍게 훑으며 뻔한 사운드를 내밀지 않는다. 모든 음악은 치밀하게 직조하고 유기적으로 연결한 연주력을 선보이고, 자주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내내 흥미진진하다. 주연과 조연이 확실한 음악의 주도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 변화와 균형이 음반의 아름다움에 마침표를 찍는다.

누군가는 충돌하지 않는 음악이라고, 이전에 들어왔던 크로스오버 음악들과 대동소이하다고 폄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설프게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 음악에는 고집이 있고, 재즈의 활기와 다채로움으로 매순간 울울창창한 이야기를 펼쳐 좀처럼 이탈하기 어렵다. 좋은 음반은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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