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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러 대학로 뒷골목에 갔다_ <메이드 인 차이나>적나라한 것들, 솔직한 것들, 도발적인 것들이 뒷골목에 북적이는 신나는 상상을 하며 ....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 승인 2021.12.1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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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전국에 무려 27곳이나 있다는 길의 이름으로, 서울의 대학로는 종로 5가에서부터 혜화동 사거리에 이르는 1km 남짓한 길과 그 주변을 일컫는다. 주변에 성균관대나 한성대, 성신여대 등이 있어서 붙은 이름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겠지만, 알다시피 이 거리의 이름은 서울대학교가 관악구로 이전하기 전 지금의 마로니에공원 자리에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대학로는 젊음의 거리요, 연극의 거리다. 대학로가 본격적인 연극의 거리가 된 것은 문예회관(아르코예술극장)이 건립된 1981년 이후, 그 주변으로 다수의 소극장들이 들어서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대학로는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르코예술극장 방향과 성균관대 방향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의 극장과 그럴듯한 카페는 아르코 쪽에, 밥집과 목을 축일 집들은 그 건너편에 좀 더 많다. 아르코의 뒷길에는 비교적 새로 지어진 극장들이 많이 있는데, 우선 대학로 예술극장이 있고,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여러 대학 공연예술학과의 건물과 극장들도 있다. 그 뒷길로 접어들면 기업의 자본으로 지어진 극장 빌딩들이 화려한 간판을 내걸고 있고, 학전블루와 같은 이름난 소극장들도 있다. 길 끝에 다다라 조그만 비탈을 올라가면 동숭아트센터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 대학로 뮤지컬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몸을 돌려 그 뒷길로 올라가면 더 작은 극장들과 조그만 가게들이 모여 있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은 오래전부터 뒷골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여기서 하는 연극들을 일컬어 뒷골목 연극이라고 했다. 한때는 개그맨들의 산실이기도 했고, 배우들의 밥집이 모여 있는 길이기도 했으며, 가끔은 공연예술가들을 한숨 짓게 했던 삐끼들의 주무대이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이른바 ‘벗는 연극’으로 호기심 많은 아저씨들을 줄 세워 하루에도 너댓 번씩이나 공연을 돌렸던 곳이다. 그래서인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뒷골목에 들어서면 아직도 어딘가 B급문화의 느낌이 배어있는 듯하다.

연극을 보러 대학로 뒷골목에 갔다.

<메이드 인 차이나> (김진근 연출, 김병춘, 오정민, 김진근, 김정한, 이현욱 출연). 극장은 코델아트홀이다. 티켓박스 옆에는 로비나 커피숍이 아니라 양꼬치집이 있다. 극장 입구에서부터 예술의 격식과 우아함 같은 것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지하로 내려가니 객석도 좁고 앞사람의 머리도 거슬린다. 희미한 조명을 통해 어렴풋이 보이는 무대 위에는 조그만 소파가 하나, 무대 뒤 오른편으로 작은 바(bar)가 있고, 무대 왼쪽에는 철제 새시문이 있다. 그리곤 뭐 별 거 없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양아치 같은 친구 둘이서 쿵푸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려고 하고 있는데, 시작부터 줄곧 그들의 입에서는 십원짜리(욕설)가 떨어질 줄 모른다.

 

하드보일드 노동계급 더블린 누아르로 불리는 아일랜드 작가 마크 오로의 <메이드 인 차이나>는 뒷골목 사내들의 음모와 배신 등 거친 일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직의 넘버3 휴이는 어머니의 교통사고 이후, 하던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고, 어릴 적부터 친구인 패디는 조직에 들어가 휴이처럼 폼나게 살고 싶어한다. 휴이가 보스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아파트에 머무르고 있을 때, 조직의 서열 2위인 킬비가 휴이를 찾아온다.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철창 속에 갇힌 사내 녀석들의 싸움은 처절하다. 갱스터 드라마라면 고독한 남자들과 그들의 의리가 기본인데, 이 연극의 주인공들은 자기혐오, 죄책감, 외로움으로 범벅된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지들끼리 죽도록 싸운다. 악착같이 피 터지게 싸우지만 멋짐 따위는 1도 없다. 그저 폭력적이고, 외설적이다. 혐오스럽기도 하다. 끊임없이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심지어 1막이 끝나자 집에 가버리는 관객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 객석의 기류가 바뀐다. 이 삼류인생들이 벌이는 광란의 제의 속에 관객들이 뭔가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분명 멋진 유머나 세련된 위트가 아닌데, 관객들이 슬슬 웃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저 뒷골목 삼류인생들의 쌍욕과 발광을 연민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짓과 위선이 저 배우들을 통해 보이기라도 한 걸까? 자신의 한없이 저속한 모습을 드러내는 배우들에게서 난데없이 고결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덩실덩실 해맑은 커튼콜이 끝나고 나서보니 이 연극과 이 극장과 이 뒷골목이 모두 딱 맞아떨어진다. 조화가 기막히다. 멋진 조명에 화려한 의상에 샹들리에나 레드카펫은 없지만, 연기를 예술로 여기고 수련하고 투쟁하는 늙수그레한 친구들의 난투가 아름답다. 밖으로 나와 다시 보니 극장 이름이 코델이다. 그 옛날 수레에 짐을 싣고 마을과 마을을 전전하며 막 한장 달랑 걸어 놓고 배우의 연극으로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던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줄임말이다. 다시 대학로 뒷골목을 걷는다. 적나라한 것들, 솔직한 것들, 도발적인 것들이 뒷골목에 북적이는 신나는 상상을 하며 근처에 괜찮은 술집을 찾는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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