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모던 록 밴드 더더의 보컬리스트로 데뷔했으니, 어느새 음악경력 20년째. 한희정은 푸른새벽을 거쳐 솔로로 데뷔한 후, 다섯 장의 정규 음반과 네 장의 EP를 발표했다. 그 외에도 여러 컴필레이션 음반에 참여했고, 영화음악에도 목소리를 더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 쓸쓸하고 새침한 목소리는 들으면 안다. 그만큼 한희정의 목소리를 오래 들어온 탓이다. 한희정이 오랫동안 쉬지 않고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희정이 부른 노래는 어떻게든 들릴 수밖에 없는 노래였다. 보컬과 멜로디, 사운드와 메시지가 어우러져 빛나는 노래들이었던 탓이다. 마음을 깊이 찌르고 오래 흔들리게 하는 노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희정의 노래가 감정적 누디즘이라고 잘라 말하며 폄하했을지 모른다. 노래가 반드시 거창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고, 모든 노래가 항상 개성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한희정의 노래는 좀처럼 뻔하지 않았다. 한희정의 노래는 관계의 내면과 인간의 실체 깊숙이 파고 들어가 드러냈고, 때때로 발랄하고 엉뚱했다. 한희정은 그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서 자주 도망쳤으며, 느닷없는 곳에서 출몰했다. 한희정은 그 순간에도 시도와 도전, 실험만으로 작업을 마무리 하지 않았다. 한희정의 어떤 노래는 하나의 길을 만들고, 다른 소리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올 가을에 발표한 새 음반 [NOTATE]를 들으면 한희정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몇 가지가 다시 분명해진다. 2016년에 발표한 동명의 정규 음반 수록곡 가운데 일곱 곡을 다시 부르고, 세 곡의 노래를 더한 음반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한희정, 우리가 들어왔던 한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노래를 들려준다. 한희정은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으로 노래하고, 그 노래들은 스산하거나 물컹하다. 팝이거나 포크인 노래들은 빠르지 않고 날카롭지 않다. 바람소리가 배어 있는 한희정의 목소리는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기억하거나 견디거나 성찰하거나 교감하며 반성하고 화해한다.

하지만 노랫말에 담은 사유의 무거움이나 상처의 쓰라림에 비해 한희정의 노래는 대부분 부드럽게 밀려온다. 그래서 노래와 노랫말에 대한 경계와 부담을 허물고 잔물결처럼 찰랑거리는 노래에 젖어든다. “내 안에 슬픔만 가득한대도 이제는 / 더 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않으리”라고 노래할 때나 “예정된 이별은 말이 없어 서글프다”고 노래할 때, 고통이 감지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고통은 달콤하고 순하게 느껴지는 고통이다. 상실감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세련되고 매끈하게 느껴지는 멜로디와 사운드의 감각은 센티멘탈한 감각을 미학화하는 한희정의 솜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음반에서 한희정에게 매혹되는 숱한 순간들 대부분은 그 솜씨가 빼어난 멜로디로 현현하고 부드러운 기타 연주에 실려 전해지는 순간이다. 노랫말의 서사를 따라 등장하고 구조를 만드는 멜로디의 흐름은 유려하다. 그래서 노래가 끝날 때마다 노래를 듣는 이들은 노랫말과 함께, 혹은 노랫말과 별도로 몇 개의 멜로디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가령 <잔혹한 여행>의 기타 아르페지오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나, 왈츠풍의 리듬에 “사람, 오 사람 여행 같던 사람”의 멜로디를 실어 노래할 때 한희정의 매력은 직관적으로 강력하다. 이 음반을 들을 때는 이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희정의 노래는 목소리와 기타를 연주하고, 공간감을 불어넣는 방식으로만 만드는 사운드가 아니다. 멜로디와 템포가 중심을 잡는 노래는 음악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구성으로 말을 걸면서, 끊임없는 변화를 은근히 덧칠한다. 기타의 주법을 바꾸거나 목소리를 더하고 빼는 방식에 따라 음악의 질감이 미묘하게 바뀐다. 단출한 것과 게으른 것은 다르다. 한희정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연주하고 연출했으며, 기타 역시 마찬가지로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단출하지만 게으르지 않은 음악을 들려준다. 있는 소리보다 없는 소리가 더 많은 음악이어도 빈틈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윤기가 흐른다. 부족하다는 생각보다 충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음반이다. 경력과 깊이가 정비례하기 어려운데, 어쩌면 한희정은 그 어려운 일을 이리도 잘 해낼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https://www.youtube.com/watch?v=opjlL6dRRTU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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