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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가치를 생각하다!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 문일근 음악평론가
  • 승인 2021.10.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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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은 음악계에도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다중을 상대로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음악회의 특성상 우선 제재가 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방역 수칙을 지키며 띠엄 띠엄 음악회가 이루어졌다. 음악계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연주를 존재 의미의 가치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연주가들이나 특히 해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많은 유학생 음악인들이 늘어만 가는 상황이다 보면 그들의 기대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무너져 자칫 음악계의 귀중한 재원들이 실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이런 와중에 한국 공연예술경영협회와 예술의전당이 함께 ‘썸머 뮤직 페스티벌’(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을 기획하고 공연했다.

지난 8월 27일 오프닝 콘서트를 시작으로 콘서트홀 5회 중 오케스트라 2회, 오전 11시 콘서트 3회와 (7부), 인춘홀 3회 등 (총 6부)의 음악회가 29일까지 이루어져 젊은 연주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든 연주는 기대 이상의 가능성과 좋은 결과를 보여줘 이런 절망적 상황에도 희망을 주기도 했다. 필자는 인촌 홀은 못 보고 콘서트홀 연주만 5회를 봤다. 27일 오프닝 콘서트와 다음날 오전 11시 · 오후 7시 연주, 마지막 날(29) 오전 11시와 저녁 7시 30분 연주가 그것이다. 이번 축제는 역시 기획자 적인 입장답게 축제의 의미를 연주회를 통해 일부나마 보여줬다. 즉 오전 연주는 기존의 연주 시간인 1시간 30분을 넘어 현악 4중주 세 팀이 거의 한 시간씩 3시간의 연주를 해서 모처럼 국내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축제의 가장 큰 소득은 현악 4중주를 중심으로 한 연주자들과 오케스트라에서 나타났다.

우리 현악 연주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힘으로 누르거나 보잉의 과잉사용으로 인한 거친 소리였다. 푸시 보우가 그것으로 유럽이나 러시아의 보우가 아니고 미국 스타일의 보우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는 쉽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음색이나 음악적 음의 특징인 배음이나 유연성에서는 고도의 기능을 요하기 때문에 손해를 봤다. 당연히 오랜 연습시간을 갖지 않으면 대체로 거친 음질의 소리를 그대로 연주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실내악, 그것도 현악 4중주라는 장르의 특징인 작곡가의 내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적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유럽이나 러시안에 가까운 보우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유연하고 세련되며 부드러운 현악 4중주의 멋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사운드는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야말로 실내악의 묘미?를 직시하게 하는 또 다른 아쉬움 있는 멋을 들어야 했다.

이번 페스티벌의 첫 연주는 27일 연주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다. 이번 페스티벌 지휘는 최근 급격히 주목받는 비올리스트로 출발해 지휘자로 변신한 이승원이었다.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중 "나의 조국"과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작품 46(Vn : 조진주), 그리고 드보르작 교향곡 8번 작품88이 연주되었다. 앙상블 음악의 핵심은 연습 시간속에서 이루어지는 조화와 상호적인 음악미의 융화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연습시간은 바로 지휘자의 콘트롤 능력을 좌우하는 잣대다. 오프닝 콘서트로 보면 연습시간의 부족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있다. 그 전제는 마지막 날 이루어진 클로징 콘서트와 비교했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 시작 부분은 첫 시간의 긴장 덕인지 앙상블 구도가 응집력을 가지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이후 지휘는 어떤 확신에 찬 논리성을 바탕으로 한 능력이 아니면 역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련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이나 드보르작 교향곡 8번도 앙상블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드보르작에서의 민속적인 리듬은 어느 정도 살아났다. 오케스트라의 음악미감은 앙상블 구도에서 살아난다. 각 작품이 지닌 음악적 조화로움의 구도는 산만함으로 인해 작품의 미감이 떨어졌고 그것은 연습시간이 짧았나 하는 푸념으로 넘겨야 했다. 브루흐를 협연한 조진주는 음악 어법이 직설적이어서 섬세함과 음악미의 공간성보다는 너무 솔직히 드러내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런 오프닝 콘서트에 비해 그러나 클로징 콘서트는 달랐다. 이날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협연 : 원재연)과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연주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어! 어떻게 저런 앙상블 질감이나 고도화한 음악이 가능할까였다. 물론 단원들의 기본적인 실력이 있으면 지휘자를 중심으로 얼마나 집중력을 보이느냐에 따라 앙상블 질감이나 앙상블 음악미가 달라지는데 젊은 이승원은 그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섬세함을 바탕으로 모차르트 특유의 음악미를 펼치면서 솔리스트와 교류하고 있었다. 어떤 점에선 오케스트라에 비해 솔리스트가 음상의 명료함이나 선율질감의 유연한 단락감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소탈한 모차르트만을 시종 유지하면서 오케스트라와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오케스트라도 음악시간에 비해 앙상블의 단아한 밀도는 떨어졌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오프닝 콘서트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기대 이상이었다. 말러는 또 달랐다. 앙상블 균형감이나 말러 특유의 명료한 음상이나 확고한 음악 형식을 받쳐주는 단아함과 단락감이 돋보이는 음악미는 어떻게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단원들로 저런 앙상블 음악 질감을 끌어냈나 기대와 흥분된 감동이 깃든 연주였다.

11시 콘서트의 첫날은 현악 4중주 3팀이 각 약 1시간씩 연주를 했다. 보우는 전술했듯이 4중주에 적합한 보우로 연주되었으나 3팀의 음악적 접근법이나 결과는 달랐다. 첫 시간은 리수스 쿼르텟이 H. 볼프의 “이탈리안 세레나데”와 바르톡의 3번 현악 4중주, 그라고 멘델스죤의 6번 4중주였다. 이들의 큰 특징은 현대 음악에 썩 어울리는 앙상블 음색이었다. 그리고 3팀 중 가장 앙상블절대치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앙상블 균형감이나 앙상블 음악성은 두드러졌다. 당연히 앙상블의 묘미가 살아나는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의 이든 쿼르텟은 베토벤 작품 95와 M. 라벨은 4중주를 연주했다. 리수스가 앙상블 구성에 초점이 있다면 이들은 음악미에 초점을 두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앙상블 절대치의 활용보다는 앙상블 음악미에 초점이 있어서 음색이나 음악미가 각 작품에 썩 어울려 베토벤이나 라벨을 직시하게 하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레나 쿼르텟은 전형적인 우리 현악 4중주의 연주법이다. 이들이 연주한 모차르트나 야나체크는 앙상블 개성을 바탕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주법에서 음악미가 강조되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28일 11시 콘서트는 C. 아이브스의 “대답없는 질문”과 푸러의 “흔적”,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RV354와 356(Vn : 협연 박규민), 그리고 G. 리게티의 “13명의 연주자를 위한 협주곡”이 앙상블 블랭크에 의해 연주되었고 아르테늄 브라스밴드가 축제의 풍미를 브라스 앙상블을 통해 화려하게 들려줬다. 앙상블 블랭크의 연주는 지휘자 최재혁에 의해서 앙상블 균형감을 실내악이 갖는 상호의 긴밀감을 바탕으로 음악미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 균형감은 아이브스나 푸러, 리게티등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조화를 바탕으로 각 작품이 지닌 정서를 보다 선명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 음악미는 비발디에서 박규민과의 협연을 통해 이 작곡가의 이태리적인 해맑으면서도 단아함을 상호 감성적인 대화를 통해 음악미를 높이고 있었다. 29일 11시 콘서트는 목관앙상블과 피아노의 서슴없는 조화의 묘미를 들려준 블라스트 파이브의 연주다. 우리나라 목관 연주자들도 이제 앙상블 능력이 선뜻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연주는 상대와의 음악적 균형감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상대적 균형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목관악기 특유의 다소곳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2부는 김재원(Vn), 이정현(Vc), 이택기의 개성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피아노 3중주다. 강조적이면서 트리오 특유의 개성을 강조하는 피아노의 이택기와 현악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바이올린의 김재원과 첼로 이정현의 장이다. 쇼스타코비치와 스메타나의 피아노 트리오는 성격적인 요소와 음악미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초점이 있는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성격적인 요소를 강조한다면 스메타나는 개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큰 틀에서 보면 피아노 개성과 현악기 앙상블의 묘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이들 음악미의 핵심이다. 이를 충분히 간파하고 있는 피아노와 현악 앙상블은 상대적인 대비를 이루며 쇼스타코비치와 스메타나의 음악적 시간을 자기적이게 하는 것으로 작품성을 돋보이고 있었다.

이번 여름 페스티벌은 코로나로 쳐진 어깨를 바로서게 한 멋진 축제였다.

 

 

문일근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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