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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심청이야기연극 <심청전을 짓다>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 승인 2021.10.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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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짓는 것은 옷을 짓는 것과 참 많이 닮아있다. 씨줄과 날줄이 올을 이루고 잘 짜여진 천으로 모양을 내어 사람을 입힌다. 옷은 사람을 덮고, 이야기는 사람을 채운다. 바람과 추위를 막고, 외롭고 고단함을 버티게 한다. 아주 먼 옛날, 누군가 심청전을 지었다. 이야기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목판, 필사, 활자본을 거쳐 이런저런 인물이 더해지기도 하고 빼지기도 하면서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늘 곁에 있는 것의 가치에 대해 대부분 무감각해지듯 심청 이야기 역시 지금 우리에겐 흔하디 흔하고, 유치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심청이야기의 주제가 ’효(孝)‘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그 효라는 것이 유교적인가 불교적인가라든가, 참회와 극락왕생의 내세관, 무지로부터 눈을 뜨는 인간의 각성, 인신공양 또는 인신매매와 인간성 상실 등 층층이 다양한 문제들을 품고 있어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각도와 깊이에 따라 심청이 이야기는 지금도 새로운 드라마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가 원작으로부터 파생한 작품들을 대충만 떠올려 봐도, 최인훈의 <달아달아 밝은 달아>, 황석영의 소설 <심청>, 오태석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영화 <마담 뺑덕> 등 줄줄이다.

작가 김정숙이 <심청전을 짓다>를 지었다. 심청전에 나오는 귀덕이가 심청전을 지었다고 지었다. 마포구 도화동에서 살았던 작가가 황주 도화동 살았던 심청이 이야기를 지었다. 마치 이웃 살던 동무의 이야기인듯 한올 한올 정성껏 지어 고운 수의처럼 입혀주었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때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뒤, 비오는 밤. 곳은 심청이가 살던 도화동 성황당이다.

심봉사의 이웃인 귀덕이네는 심청이를 보낸 죄책감에 제사를 지내어 심청이의 가여운 죽음을 위로하려 하는데, 우연히 성황당에 모여든 사람들이 심청의 제사에 동참하게 되면서 귀덕이네를 통해 효녀 심청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듣는 이야기는 하나라도 자신의 마음에 비춰 본 심청이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작품소개 인용

작가의 전작인 <숙영낭자전을 읽다>에서 규방의 등잔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던 여인들에게 향금 아씨가 읽어주던 <숙영낭자전>이 각자의 마음에 모두 다른 울림으로 울렁거렸듯, 심청이 이야기는 성황당에 모여 갇힌 이들의 마음에 저마다의 파고로 출렁거린다. 천둥이 치고 비는 내리고 밖은 여전히 어둡고 험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성황당 안에 든다. 실은 비만이 아니다. 죽임을 피해, 권세를 피해, 제도를 피해, 그들은 달아나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심청이 이야기를 만난다. 이야기는 이해를 낳고, 이야기는 제물이 되어 세상의 헛것을 알게 하고 인생이 가야 할 길을 열어준다. 심청이 이야기에 작가가 주목한 구절이 대번에 눈에 띈다. 그것은 바로 “미안하다”란 말이다.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 심청이가 말했다는 세 번의 ‘미안하다‘라는 말은 의아하면서도 신통하다. 귀덕이가 풀어주는 미안함의 사연은 이렇다. 첫째는 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미안하고, 둘째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고, 마지막은 막상 뛰어들려고 하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곳에 감동이 있고, 그 초월의 지점에서 무릎을 탁 치는 순간 눈이 열린다. 봉사 같던 우리가 눈을 뜨고, 퍼붓던 비도 그치고 별이 나온다. 청이 이야기는 죽을 목숨을 살리고 작가는 그제서야 다시 이름을 이른다. 심청. “마음이 맑아서 심청인가. 그 심청이가 그 심청인가.” 우리 마음은 비극의 제물 심청이와 동화하여 공포와 연민의 어둠을 통과하고 감정을 씻고 한 뼘 성장한다.

 

<심청전을 짓다>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작품이다. 작가의 오랜 벗 권호성이 연출하여 무대 위에 거뜬히 지어 올렸다. 이심전심 깨끗한 마음으로 잘 지었다. 이십에 만나 마흔이 넘고 오십이 넘은 배우들이 뭉쳐 알이 굵고 잘 지어진 고슬고슬한 밥 같은 연극을 지어 놓으니 관객의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잘도 넘어 간다.(9.9-19 스튜디오76)

 

<심청전을 짓다>. 가만 보면 지은 것들은 죄다 사람을 살리는 것들이다. 옷이 그렇고 집이 그렇고 밥이 그렇다. 물론 이야기도 그렇다. 다 보고 나니 미소도 지어지고 눈물도 지어진다. 바람이 분다. 숨도 쉬어진다. 벌레도 운다. 좀 살겠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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