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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예술적 유물, 전승 발전 시켜야.._ 동해안별신굿보존회김진환 박범태 손정진 정연락 홍효진

 

Q. 굿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고,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김진환>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교 시험을 치기 위해서 김영희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우기 시작하면서 입문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시에 사물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재미도 없고 식상해서 혹시나 해서 구경 가보자 해가지고 인연이 되어서… 사물놀이의 경우에는 틀이 딱딱 짜여 있어서 점점 재미가 없고 굿은 장단 변화가 있어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박범태> 대학 시절에 친구가 굿 보러 가자고 해서 갔더니 기존의 생각과 다르게 너무 재밌고 장단이 화려해서 반하게 되었습니다. 입문을 하고 부산에서 장단을 공부하러 다니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김석출 할아버지가 ‘장구는 다들 치니까 너는 태평소를 배워라’ 하셔서 사실 처음에는 장구를 배울 목적으로 태평소를 시작했죠. 의지와는 다르게 태평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손정진> 출생은 서울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대구에서 살다가 다시 대학교를 중앙대학교로 다녔습니다. 그때 굿을 보게 된 건데 사실 어렸을 때 사물놀이를 하면서 동해안별신굿을 접해봤고 지금 돌아가신 김덕수 할아버지 등의 연주들도 들어봤고 그때 죽어도 저건 내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갔다가 군 제대하고 바로 보존회 들어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돌아가신 김용택 선생님의 양자로 들어가서 선생님의 가락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연락> 2008년 즈음, 주변에서 이런 문화재를 위한 정책이나 사업들이 굉장히 많은데 왜 안 하냐고 하셔서, 보존회 어른들께 직함만 주시면 제가 이런 행사들을 가져오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동해안별신굿 사무차장으로서 보유자 어르신들을 보좌하고 그 밑의 제자나 회원들을 교육하고, 공연들을 성사시키면서 동해안별신굿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홍효진> 원래 전공이 타악이라 사물놀이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처음 동해안별신굿 음악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호적을 파서 양자로 들어가지 않으면 세습무 집안이기 때문에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대학 수업에 동해안별신굿 수업을 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어서 동국대학교에 진학했어요. 학교에서 김영희 선생님과 인연이 되었고, 사실 무녀 쪽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꽹과리 치고 장구 치는 게 좋았다. 굿판을 찾아다니면서 타악을 배우다가 그런 것을 토대로 창작 작업도 하면서 정연락씨랑 선후배로 잘 지내다가 손정진씨가 연결을 해줘서 연인 관계가 되었고,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지금의 시어머니이신 김동연 선생님께서 무녀가 되어서 굿을 할 게 아니라면 만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처음에는 내적 갈등이 많았습니다.

 

Q2. 무형문화재를 전승한다는 것에 대해 힘든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느낌이신가요?

<김진환> 양자가 되기를 결심하고 아버님(김동열)한테는 지화에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고, 어머니(김동언)는 원체 목이 좋으시니까 그런 방향으로 도움을 받아 가며 많이 학습했습니다. 앞으로도 장구도 마찬가지고 지화도 그렇고 목 쓰는 것도 많이 전수를 해보고 싶습니다.

 

<박범태> 앞으로 김석출 할아버지의 가락을 계승할 사람은 박범태라고 주변에서 종종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근데 제가 또 할아버지랑 함께 했던 시간이 생각보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자료들을 좀 더 탐색하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정진>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해안별신굿 장단들이 제대로 된 교본이 별로 없는데, 5년 넘게 보존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모아왔던 장단 채보한 악보와 어른들이 가르쳐 주셨던 가락들을 토대로 교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악들을 풀어나가는 방법들을 좋은 글로 펴내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정연락> 굿판을 보는데 연세 드신 분들이 꽹과리를 치고 장구를 치고 서서 굿을 하는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해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동해안별신굿은 제가 받들고 가야 할 문화 그리고 받들고 가야 할 예술적 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저는 동해안별신굿이 어른들의 예술적 기량이라던가, 생활 모습에서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은 지금 현재의 우리가 전승해 나가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효진> 사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단순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영역이 아니고 세습무 집안에서 평생에 걸쳐 쌓아온 독특한 문화 속에 온전히 스며들어야 굿이 연행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세습무 집안에서 내려오는 은어부터 배우고 그랬습니다. 근데 굿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이입을 해서 좋은 말만 해주고 위로해 주고 이러는 것이 어느 순간 굉장히 보람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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