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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동해안 굿판 꽃으로 살아온 무녀의 길_세 자매 이야기김동언 김영희 김동연

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盡醉歸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穿花蛺蝶深深見

點水蜻蜓款款飛

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

 

조회가 끝나면 날마다 봄옷을 잡혀

매일같이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오네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늘 있는 것이지만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었다네

꽃 사이로 나비 분분히 날아들고

잠자리는 물 위를 여유롭게 나는구나

듣자니 좋은 경치는 함께 다녀야 한다고

잠시라도 서로 즐겨 어긋남이 없자꾸나

- 두보(杜甫) 〈곡강이수(曲江二首)〉 중 두 번째 시

 

‘고희古來稀는 드물고 귀하다는 뜻이다. 우리 시대의 예인 姑 김석출의 세 딸로 태어나 한평생을 동해안의 꽃으로 살아온 세 자매 김영희(80), 김동연(70), 김동언(66) 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의 기록을 담은 무대가 지난 6월 1~2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렸다. 무대에 오른 세 무녀들은 무형문화재 동해안별신 굿 세습무 중 부산의 김씨 무계를 전승해오며 고희에 이르렀다. 이들은 이 날, 무대에서 부정을 물리치고 조상신에게 굿을 고하는 굿거리인 안비나리, 망자를 천도하는 망자굿, 자식을 점지하고 수명장수와 자손의 번창을 비는 세존굿을 연행했다. 무속의 가치와 굿판의 무대화에 대한 과제를 남기며 세무녀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인생사와 서사가 음악으로 이어지며 굿 행위를 통한 그들의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승 기록에 대한 의미를 갖는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 편집팀

 

 

 

 

interview

 

Q. 간단한 자기소개 해주세요

 

김영희 안녕하세요. ‘꼼보무당’이라고 불리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 명예 예능보유자 김영희입니다.

김동연 안녕하세요. 세 자매 중 둘째인 김동연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 조교(전승교육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동언 안녕하세요. 셋째 김동언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 조교이자,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3호 부산 기장오구굿 보유자입니다.

 

Q2. 어릴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굿이나 소리, 춤은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우셨나요?

<김영희> 17살에 기장에 시집을 가서 ‘백소녀’ 시어머니를 만나 부산굿을 배웠습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故 김석출)가 사설을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 보내주셔서 밤낮 읽었고, 다양한 굿을 매일 듣고 보고 했습니다. 부산굿을 아주 힘들게 배웠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 같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경북굿과 강원도굿을 번갈아 하게 됐습니다. (질문 : 김유선 선생님께는 배우지 않으셨나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알려 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어요.

<김동연> 고모 집에서 살면서 판소리와 춤을 조금 배웠습니다. 고모 집에 동네 온천장이 있었고 거기가 원래 권번이 있었는데 그 권번에 계시던 최장술 선생님께 진양가 한 마당을 배웠어요. 거기서 기본 좀 배우다가 고모(故 김계향/김계월)가 살풀이를 알려주셨어요. 고모도 시 문화재 받을 뻔하셨는데 직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세 살 때도 장단만 맞추면 춤을 췄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엄마(故 변난호)가 굿 다닐 때 따라다니면서 춤추고 돈 받고 그랬습니다. (질문 : 많은 기록에서는 김유선 선생님의 따님으로 기록이 되어있는데, 원래 어머니이신 변난호 선생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평상시에 어머니가 얘기하셨던 것이 ‘나는 살다가 죽으면 내 큰 딸이 있는 곳에서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언니 있는 곳에서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일하러 간다고 언니가 있는 부산에 가셨는데, 그때 아버지와의 일도 있고 그래서 술도 좀 드시고 하셔서 폐가 많이 안 좋은 상태였어요. 언니가 바로 병원에 데려갔는데 그때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김동언> 저는 엄마한테도 설움을 받고 새엄마한테도 설움 받고 아버지도 동생만 좋아하고 그래서 특별히 야단맞으며 배운 기억은 없고 다 제가 보고 듣고 혼자 공부해서 익혔어요. ‘몇 살에는 이런 굿을 완창 해야겠다.’라는 포부를 갖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질문 : 이 소리만큼은 나에게 가장 의미가 있다 하는 것이 있나요?) 성주굿 톱질하는 대목이랑 심청굿으로 제 한을 풀었어요. 심청굿 완창도 바로 남산국악당에서 했는데, 성주굿도 완창을 했었고 그때는 부산시 오구굿 무형문화재 받기 전이었는데, 지금도 제일 자신 있게 하는 것이 성주굿이랑 심청굿이에요.

 

 

Q3. 동해안별신굿과 기장오구굿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김동언> 동해안 쪽에서 바다 조업에서 희생을 많이 당하고 그러니까 넋을 기리고 마을의 평안을 비는 굿입니다. 오구굿은 원래 다섯 오, 귀신 귀를 썼는데 부산, 경상도 사투리로 부르다가 오구가 됐습니다. 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극락을 전도하는 역할이에요.

 

Q4.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김영희> 이 문화재를 아무나 받습니까? 우리가 무당이라고 하대도 많이 받고 그랬지만 굿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버지한테 ‘아버지, 우리도 이제는 문화재를 받아서 무당이라고 하대하는 것이 좀 없어지겠네요.’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돈은 제쳐 두고 문화재를 받아온 것이 평생의 기쁨이라고 하셨어요.

<김동연> 아버지가 힘들게 문화재를 받으셨고, 우리 아버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는 못하는 게 없으십니다. 너무 자랑스럽고, 굿으로 문화재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살았어요. 이제는 대물림해서 아버지의 이름을 헛되지 않게, 사는 날까지 많은 단체의 전수생들, 이수자들, 제자들을 힘닿는 데까지 가르쳐서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아버지와 우리 세 자매 이름을 남기고 가고 싶어요.

<김동언> 세습무 단체인 한 가족에 의해 별신굿과 오구굿이 한 집안에서 지정을 받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시원섭섭하면서도 기분 좋고 경사라고 생각합니다.

 

Q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김영희> 돌아가신 우리 사촌 동생 김용택하고 나하고 16년도에 한날한시에 문화재를 같이 받았어요. 동생이 날 보고 ‘우리도 이런 날이 왔네요’ 하면서 둘이서 붙잡고 참 많이 울었어요. 다들 희망을 버리지 말고 노력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김동연> 우리가 문화재를 받았을 때, 동네 어른들부터 태도가 달라지셨어요. 이 문화재를 세 자매가 하다가 나중에는 애들이 받아서 해야 하는데 그게 걱정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잘 하지만 욕되지 않게 우리 것을 잘 받아서 먼 훗날에도 잘 헤쳐 나갔으면 합니다.

<김동언> 끝도 없지만, 많은 학생들이 동해안별신굿이나 부산 기장오구굿이나 회원이라도 많이 들어와서 전승을 많이 시켜 놓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역시 굿판 스타일인 것 같아요. 코로나가 또 힘들게 하고, 저희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힘든 가운데서 배우려고 노력하는데, 모두 다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김면지(예술숲 대표)    

 

※ <세 자매 이야기> 아카이빙 영상은 ㈜예술숲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8월 15일부터 1주일간 공개한다. https://www.youtube.com/c/ArtsForet

 

 

 

 

김면지(예술숲 대표. <세 자매 이야기> 기획, 제작)는

“전승이 필수인 전통예술계에서 원로 예술인들이 살아계신 동안 후대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들의 예능을 잘 전수받고 잘 이어가는 것이다. 또한, 이들 전승 주체 외에도 학자들은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기획자들은 기획자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이 있다. 예술숲은 앞으로 이런 원로 예술인들에 대한 예우와 품격 있는 전통예술의 계승 발전을 위한 예술적 실천으로써의 아카이빙 사업 을 꾸준히 이어 갈 예정이다. 내년도 기대해 달라”며 포부를 밝혔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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