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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팔란(八難)과 귀토_돌아온 토끼의 노래 '수궁가’인간사 재앙의 시기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니 ....

 

인간사 재앙의 시기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니

어디 삼재팔란(三災八難)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도망가지 말아요.

바람 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워 나가요,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객은 늘 새롭고 신선하고 혁신적인 창의성을 원한다. 고전은 고전대로 생명력을 갖고 가치를 지니고, 끊임없는 고전의 재해석과 실험은 그래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6월 3일, 비 오는 밤, 새로 단장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픈 기념으로 올린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둘째날 공연을 보러 갔다. 국립극장은 202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도입 후 창극의 현대화를 시작했는데, 국립창극단의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 <오르페오>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등을 선경험한 관람객들에게 사실상 <귀토>는 특별히 선선한 것은 아니다. 창법이 달라진다고 해도 별로 놀랄 일도 아니어서인지, 무대가 열리고 처음의 산뜻함과 화려함이 어느 정도 지나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귀토>는 경험 많은 안정적인 창작진들- 고선웅 연출, 한승석(작창, 작곡, 음악감독), 이태섭 무대디자이너, 김영진 의상디자이너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미스터 썬샤인' '해어화' 등의 한복 차이킴) 들에 의해 세련되고 화사한 색감의 현대극으로 생동감 있게 펼쳐졌다.

국립창극단 간판배우 김준수, 유태평양 두 판소리 명가수가 토자와 자라 역할로 나와 예의 능숙한 솜씨로 무대를 휘젓고, 국립창극단 전 단원 포함해 총 54명의 출연진이 펼친다. 대극장 창극은 시종일관 활기차고 유쾌하게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을 이어간다. 재미있고 활기찬 웃음으로 위안을 주려는 시도로 화려한 무대를 열었지만, 유니크한 매력이나 흥미진진한 실험은 없었다. 노련한 거장 창작진들의 깔끔한 무대는 산뜻하고 군더더기는 없었으나 깊은 감동은 없었다. 긴 러닝타임의 전개는 특별히 매혹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은 아니었으나, 새집들이를 경축하는 흥겹고 성공적인 잔치는 화려하게 성료했다.

 

이번 창극 <귀토>는 대중 다수의 일반인 관객, 젊은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이날 공연을 보러 단체로 온 예술중학교 학생들은 인터뷰를 통해 재미있었다고 했고, 자기네 학교에서 마침, 창극을 준비하고 있어서 보러 왔다고 했다. 오페라를 보러 오는 음악전공생이 거의 없는 것에 비하면 전통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열의는 더욱 적극적으로 보인다. 창극을 처음 접하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 관객과 전통 판소리 혹은 국립창극단의 창극에 경험이 많은 편인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호불호가 갈릴듯 하다. 음악적인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군데군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러스한 운율이 있다.

귀토는 ‘수궁가’의 스핀오프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통 판소리 ‘수궁가’는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토별가.. 등등으로 불리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한 편이다. 내용은 익히 알려진것처럼 용왕이 병이 들어 약에 쓸 토끼의 간을 구하러 자라가 세상에 나가 토끼를 끼어 용궁으로 유인한다. 용궁에 간 토끼는 꾀를 써서 무사히 육지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우화적인 이야기인만큼 ‘수궁가’에는 등장인물들의 말씨름으로 재치있고 아기자기한 대목들이 많아서 소리와 아니리, 발림 등으로 해학적인 맛이 있다.

고선웅 연출은 제목-‘귀토’에서 거북과 토끼(龜兎)를 뜻하는 동시에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歸土)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전한다. 예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액자식 구성, 대중가요까지 패러디한 음악의 삽입, 그에 어울리는 안무 등 트렌디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신창극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수궁가의 끝에서 비로소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귀토-토끼의 팔란’ 이다. 육지나 용궁이나 어디랄 것도 없이 삼재팔란의 고달픈 삶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해학의 스토리는 15인조 악단의 자진모리, 중모리, 휘모리 ~~ 다양한 국악 장단에 실려 물결처럼 출렁인다.

전통과 다른 점이 뚜렷이 보이는 것은 1막의 마지막 장면 범피중류(泛彼中流 배가 물 한가운데로 떠간다는 뜻으로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는 여정을 그리는 대목에서 나온다.)에서 나타난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판소리의 기교적인 음악 어법이 망라되어 심청가의 눈대목으로 꼽히며 토막소리로도 대표적 레퍼토리로 불린다. 심청가의 ‘범피중류'와 '혼령대목'(초기 심청가에서는 심청이 용궁에서 세상으로 돌아오는 장면과 인당수로 향하는 도중에 나온다)은 수궁가에 수용되어 <범피중류>는 별주부가 토끼를 등에 업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수용되어 있고, <혼령대목>은 토끼가 용궁에서 육지로 돌아오는 대목에 수용되어 있다. 자라가 토끼를 등에 업고 용궁으로 향하며 부르는 이 ’범피중류‘ 대목에서 원작에서는 느린 진양조의 장중한 소리로 표현하는데 비해 <귀토>에서는 빠른 자진모리로 치환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토끼의 설렘을 강조하고 있다.

유영대 교수는 창극 <귀토>에 대해서 "수궁가에 대해 가졌던 통념을 버리고 새로운 하나의 창작품으로 대해야 비로소 이 작품의 진면목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창극에 대해 통념을 갖고 있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전통의 오리지널리티라기보다는 고전의 재해석에 대한 실험의 변화 가능성과 이로써 전통 창극과는 또 다른 감각적 묘미와 더불어 깊고 절절한 뭉클한 감동에 대한 기대감이다. 유머러스한 코믹 너머 깊은 울림의 신창극에 대한 바람이다.

빗속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 단장한 현대식 해오름극장이 환히 불 밝히고 있었다. 장충동 남산 중턱의 국립극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해오름극장앞 계단이 없어지고 광장에서 바로 통하는 평평한 입구가 드러나고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고 발권 신식 기계도 도입됐다.

국립극장 48년 만에 변화한 해오름극장의 세련된 변화는 깔끔해졌음에도 어쩐지 사라진 옛날의 계단이 아쉽고 허전한 감이 있는 것은 오래된 추억의 시간과 흔적이 사라진 서운함인것일까. 수십년을 오르내리며 공연 전후로 친구들과 지인들과 해오름 계단에 앉아 이야기 나누며 불어오는 남산의 솔솔~~ 바람을 음미하던 그 시절들의 기억도 달라지는 듯 하다.

달라진 극장 내부는 콤팩트하게 작아지며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의 미니멀리즘 무대와 132대의 스피커가 전하는 생생한 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려왔다.

(2021.6.2-6.6 국립극장 해오름)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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