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진남수의 무빙액트
[진남수의 무빙액트] 클라운은 나를 보고 웃지- 극단 벼랑 끝 날다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 승인 2021.07.13 09:49
  • 댓글 0

광대라고 하면 대부분 삐에로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피에로’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즉흥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나오는 어릿광대로 원래 이름은 페드롤리노(Pedrolino)였는데, 17세기에 프랑스로 건너와 피에로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얼굴에 온통 흰 칠을 하고 입술만 붉게 칠한 이 광대는, 유쾌한 익살로 무장한 다른 광대들과 달리 절대로 웃지 않고,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피에로 이외에도 코메디아 델라르테에는 다양한 광대(Clown)들이 등장하는데, 알록달록한 마름모 모양의 누더기옷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아를레키노’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캐릭터이다. 교활하고 재기 넘치는 이 하인 캐릭터는 프랑스로 건너가 ‘아를르깽’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영미권에서도 ‘할리퀸’이란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몽둥이의 이름이 신체 코미디의 대명사인 슬랩스틱인 걸 보면 그 명성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선 중세시대에도 왕이나 영주 아래에서 유희를 펼치던 궁정광대(jester)들이 있었는데, 주로 왜소인이나 기형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광대가 되곤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광대들의 이야기를 미쳐서 하는 헛소리쯤으로 취급하고 우스개로 여겼기에, ‘fool’이라 불렸던 광대들은 바보의 가면 뒤에서 왕이나 귀족들에게 따끔한 직언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왕이나 영주가 화가 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고, 전쟁 때는 적진에 들어가 모욕적인 말이나 선전포고를 전하는 일을 맡아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햄릿에 나오는 해골인 요릭이나 리어왕에 나오는 바보 광대가 바로 이런 광대의 예인데, 이러한 궁정광대들은 지금도 플레잉 카드의 조커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뮤지컬 작품으로도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에는 ‘콤프라치코스’라는 범죄집단이 나온다. 스페인어로 ‘아이 상인’을 뜻하는 이 조직은 아이들을 납치해서 인위적으로 기형아로 만들어 귀족들에게 팔았다. 17,8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기형인 사람들을 소유하고자 했고, 기형의 정도가 심할수록 더 큰 자랑으로 여겼다. 선천적인 기형아를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멀쩡한 아이들을 잡아다가 기형으로 만들어 파는 이런 끔찍한 범죄집단까지 출현했던 것이다. 이처럼 광대라는 존재에는 웃음과 눈물이, 축제의 환호와 잔혹한 고통이 모두 깃들어 있다. 희극은 시대에 따라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다양한 변화를 거듭했지만, 광대들은 시공을 통과하여 지금도 우리 곁에 스며 있다. 아이들의 생일파티에도 놀이동산에도 심지어 길가의 햄버거집 앞에도 그들이 앉아 있다.

광대들이 왔다. 어디 있다 나타났는지, 우르르 마로니에 공원으로 마스크를 쓰고 몰려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들은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마술처럼 극장으로 들어왔다.

‘극단 벼랑 끝 날다’는 <더 클라운>(작,연출/이용주, 작곡/심연주)을 통해 사랑, 행복, 꿈, 이별 같은 인간사의 보편적인 주제들을, Magic Frame (신비한 액자), My Typewriter (타자기), Odd Family (이상한 가족), Prison Break(탈옥) 등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하여 보여주었다. 극장 로비에서 나눠준 빨간 코를 차마 코에 걸지 못하고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오래된 습관처럼 이야기의 개연성을 찾고 있을 때, 앞에서 놀던 광대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다시 보니 빙긋이 미소를 날리고 있다. ‘왜 그래? 그냥 놀아. 네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려. 그거면 돼’

 

사람들은 근엄한 척하는 허위가 벗겨지는 것을 보고 웃는다.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며 웃음을 터트리고, 심각하지 않은 폭력과 이에 굴하지 않고 되살아나는 인간의 몸에 대한 예찬으로 웃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고 웃고, 기형적이고 열등한 것을 보고 웃는다. 감정과 유연성을 잃어버린 경직되고 기계화된 인간을 보고도 웃는다. 가만 보면 웃음이란 매우 객관적이며 이성적인 반응이고, 또 앙리 베르그송의 견해처럼 사회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더 클라운>은 기대만큼 웃기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보다 훨씬 애틋했다. 광대들의 미소는 행복과 슬픔, 기대감과 그리움이 들고 나기를 거듭한다. 낭만적인 음악과 그룹의 집단적 조형성은 광대들의 행위보다 그들의 내면을 주목하게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보다 되레 감상에 젖게 되니, 이 극은 묘하게도 광대극이지만 희극이라고만 하기는 뭣하고, 뾰족한 얘기도 없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다가 돌아서서는 씨익 웃으며 보는 이의 마음에 방아질을 해대니, 하아! 이를 두고 대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진남수 (호원대교수, 극작가, 배우)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