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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잘못 없다_정의의 사람들서울시극단 <정의의 사람들>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 승인 2021.06.2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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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고 광화문에서 내렸다. 광장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정류장 바로 옆에 성조기를 가방에 꽂은 시위자가 보인다. “한미동맹강화”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니 또 다른 일인 시위자가 서 있다. “주한미군철수” 좁은 통로를 걸어 나가니 삼발이에 카메라를 올려 세운 유튜버들이 제각기 소리를 높이고 있다. 펼쳐놓은 플래카드에는 낯익은 몇 명의 전직대통령들이 인쇄돼 있다. 계단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파헤쳐진 광장은 공사용 가림판에 갇혀있고, 세종대왕 얼굴 앞으로 미대사관의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서울 한 복판이 여길까. 한 명의 시장은 성추문에 휘말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한 명의 시장은 무상급식 문제로 시장직을 던진지 9년 만에 내곡동 논란을 물리치고 다시 시장자리에 앉았다. 해거름의 광장은 에워싼 빌딩들로 인해 빠르게 어두워졌다. 계단 몇 개를 더 올라 세종문화회관으로 들어갔다.

<정의의 사람들(서울시극단, 문삼화 연출, 김민정 재창작)>.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은 1905년에 실제로 있었던 러시아 황제의 숙부인 세르게이 대공 암살사건을 기반으로, 민중의 해방을 위해 일으킨 폭력사건과 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통해 정의의 본질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살인 없는 세상을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하는‘ 주인공 칼리아예프는 대공의 암살을 실패하고 돌아온다. 대공과 함께 타고 있던 어린 조카들 때문에 폭탄을 던지지 못한 것이다. 강경파들은 그를 비난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를 옹호한다. 이들의 논쟁은 뜨겁고, 우리는 질문한다. ‘정의로운 살인은 정당한가? 정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다음 기회를 통해 칼리아예프는 결국 대공을 제거한다. 체포되어 독방에 갇힌 그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참회와 자백이 요구된다. 더구나 대공비는 대공의 미덕을 근거로 칼리아예프의 행위가 부당하고 잔혹한 살인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깊은 고독과 고민의 밤. 그는 혼돈과 두려움의 밤을 건너 정의의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다. 선하고 올바른 길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주어진 권한의 한계와 뒤따르는 책임. 카뮈는 존중받을만한 한 인간의 죽음을 통해 정의의 가치와 함께 그 식별법까지 우리에게 건네는 듯 했다.

‘지금, 여기’를 모토로 삼은 서울시극단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을 재창작하여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극장의 무대 위에 올렸다. 이야기는 칼리아예프의 독방에서 시작되어 두려움과 고통 속에 시공간을 넘나든다. “정의란 무엇인가?” 1905년 러시아에서 출발한 칼리아예프의 질문은 오늘날의 광화문까지 이어진다. 안중근부터 김구, 안두희, 전태일, 촛불, 팔레스타인, 미얀마까지 줄줄이 무대 위로 소환된다. 연극은 아마도 정의가 범람하는 오늘의 현상을 제시하며, 각자 저마다의 정의가 있으니 먼저 인간을 존중하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고개가 곧바로 끄덕여지지만은 않는다. 저마다의 정의라. 저마다의 주장이 모두 정의라면 정의 논쟁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하는 것인가? 그 이전에 정말 이 시대에는 수많은 정의가 존재하는가? 싸움을 그치면 평등 평화 공존의 세상이 올 것인가? 극이 진행될수록 정의의 외침들이 점점 공허해지더니, 목숨을 던진 정의의 사람들마저 허깨비로 보인다. 물론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 극장을 나서며 ‘정의’에게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극장 밖에는 아직도 늘어선 유튜버들이 실시간 방송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저 멀리에 큰 칼을 옆에 찬 장군의 동상만 어두워진 빌딩들과 맞서고 있었다.

 

‘어디 있을 텐데...’ 집으로 돌아와 정의를 찾았다. 몇 년 전 서점가를 강타한 최고의 베스트셀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놓고 가장 많이 읽지 않은 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어디 있는지 한참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책을 찾아 읽고, 유튜브로 강의를 듣고, 카뮈도 읽고. 하지만 그 정도로 정체를 드러낼 ‘정의’가 아니다. 정의의 정의는 여전히 어렵다. 하버드의 교수도 똑 부러진 정의를 내려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단어가 어렴풋하게나마 정의를 그리게 해주었다. 희생, 자유, 책임, 평등, 공동의 선. 인간은 지나 온 시대마다 모습을 바꾸는 정의를 찾아 헤맸으며, 정의를 위해 거짓과 싸웠고, 정의의 사람들로 인하여 여기까지 전진해 왔다. 하늘 높이 치솟는 욕망의 아우성, 거짓정보와 눈가림의 시대. 내가 부끄럽다고 정의까지 부끄러워져서야 될 말인가. 정의는 잘못 없다. 정의는 멋지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극작가. 배우 )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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