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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기 아까운 지난 책정약용의 시대와 블랙리스트 정국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 2』

(이덕일, 다산북스, 2015년 7쇄)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하여 나라가 시끄럽다. 지금의 정국은 이미 지난 12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소개하며 개탄한 바 있다. 다시금 정약용의 이야기를 주목해보고자 한다. 정약용.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사를 오가는 고초를 겪다가 결국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의 유배생활을 보내고 다시 고향 마재(남양주)로 돌아와 마지막 18년의 생을 보내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정양용과 그의 형제들은 (약전, 약종) 남인계열이며 엘리트였다.

또한 천주교신자였다. 남인이면서 천주교 신자라는 것은 노론이 견제하는 세력이었다. 정조 재위기간은 남인을 함부로 공격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조 사후 정조의 무덤도 마르기 전에 노론과 정순왕후는 남인계열의 사람을 닥치는 대로 관직을 빼앗고 국청으로 끌고 나왔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가환, 정약용, 정약전 등은 부모의 제사와 신주를 모시지 말라는 천주교의 가르침에 동조할 수 없어 이미 배교하였건만 노론에게는 배교했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남인계열 사람이란 게 중요한 것이었고, 남인계열은 정계와 관직에서 씨를 모조리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다. 배교하였거나 서학(천주학)을 접한 적은 있지만 신앙으로 가져 본적은 없다고 항변하던 반대파를 온갖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내거나 무참히 처형시켰다. 정조 생전에도 노론은 서학의 무리들을 계속 척결하라 외치지만 정조는 기존 성리학의 올바른 정립을 강조한다.

“정학(성리학)이 밝아져서 사학(천주교)이 종식되면 상도를 벗어난 이런 책들은 없애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져서 사람들이 그 책을 연초의 잡답만도 못하게 볼 것이다. 그러니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정조실록 12년 8월 6일)

요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커다란 논란이다. 헌정사상 현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그리고 흉흉한 소문으로 돌던 문화예술계 특정인들의 불이익이 청와대, 국가정보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정부기관이 총동원되어 추진되었던 것이 드러났다. 설마 했지만 이 사실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충격을 준다.

사실 세상이 좋아져서 신체적 위협이야 없다지만 결국 과거에 누군가는 붙잡혀가서 두들겨 맞고, 공안사건으로 둔갑되어 사형을 당하거나 10년, 30년 이상 옥중생활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정약용의 시대라면 결국 죽거나 유배를 당하는 현실이지 않던가. 신체적 위협을 가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부, 대통령, 집권여당을 비판하거나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예술인들을 이른바 ‘좌파’로 분류하여 최소한 밥 먹고 사는 것은 어렵게 만들겠다는 발상은 250년 전 저 노론벽파와 다를 게 무엇일까?

남인과 소론을 죽음으로 박멸하고 노론 일당으로 만든 조정 관료들은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용영을 해체했다. 150년이 지나서 조선의 왕과 왕비는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외세를 끌어들여 자국의 백성을 탄압했고, 노론계열의 을사 5적은 결국 나라를 팔아먹으면서 힘없는 조선의 군대는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식민지가 되었다.

정말 우리 시대의 블랙리스트는 어떤 것일까? 정약용 시대의 군주 정조는 지금 시대에 묻는다.“너희들의 시대에도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가 있는가?”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미래는 어둠이다. 그래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지금 읽기에 가장 적합한 책인지도 모른다.

 

이용준(원주시청 문화예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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