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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신화의 땅에서 풍경에 빠지다_현경채 음악인류학자설산의 카즈베기 수도원, 푸쉬킨이 사랑한 조지아의 트빌리시.... 민속음악들

이번 여름에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름, 겨울 휴가를 앞두고 어딘가로 향해 여행 계획을 세우곤 한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말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가슴을 열어 숨을 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50대의 여성 음악인류학 박사, 음악평론가 현경채가 70일간 혼자 다녀온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코카서스 3국 여행기가 <매혹의 땅 코카서스> 책으로 나왔다. 이 생소한 나라들은 정보도 별로 없어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곳인데, 그녀는 한 장의 사진에 매혹되어 겁 없이 도전했고, 현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발로 뛴 생생하고 알찬 여행정보를 전한다. 사전에 조사한 논문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음악도 탐색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경채_ <매혹의 땅 코카서스> 저자

현경채 

음악인류학 박사. 음악평론가.

<매혹의 땅 코카서스> <배낭 속에 담아 온 음악> 저자

 

Q. 한 장의 사진에 이끌려 70일간의 코카서스 3국을 여행하고 온 후 실제로 본 그 사진의 그 곳은 어떠했는지요?

 

그곳은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깃든 곳으로 알려진 조지아의 카즈베기입니다. 실제로 가보니 카메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요, 저는 그 풍경을 담는 데에 실패 했습니다. 그런 경치의 사진을 찍으려면 조금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산 위의 교회는 감히 신의 선물이라고 할 만한 경이로운 경치와 함께 도도하게 서 있었습니다. 만년설의 카즈베기산(5033m)의 배경과 교회가 절묘하게 어울려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더라구요. 꿈에 그리던 풍경에 정신 줄을 뺀 것도 원인이겠지만, 불어오는 강한 바람도 한몫을 했는지 눈에 보이는 경치가 신기루 같이 보였습니다.

1년 전부터 수없이 보았던 사진 속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는 쉽게 갈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교회입니다. 강력한 신앙심이 이런 높이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겠다 싶어요. 해발 2170m로 카즈베기 산군에 둘러싸여 있이고요, 높고 산세가 험한 곳이기 때문에 산 아래에서 이곳까지 오르는 데에는 적어도 두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민박집 아들은 능숙한 운전 솜씨로 오프로드 산길을 빙빙 돌아 정상으로 달려서 도착했습니다. 파도가 출렁이는 배를 탄 느낌이었는데요, 멀미 걱정에 바짝 겁을 내고 있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양 떼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축복받은 땅 조지아, 그중에서도 진정 아름다운 카즈베기에 올 수 있었다니, 내 인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교회로 들어가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건강하게 내년에는 남미여행을 가고, 그다음엔 세계 일주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더불어 간절히 기원도 했죠. 꿈에 그리던 사진 속의 경치를 내려오는 길에는 굽이굽이 길을 따라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는 들꽃이 지천에 피었고요. 7월의 카즈베기는 계절도 아주 좋았습니다. 들꽃을 꺾어들고 교회로 돌아오는 성직자도 만나고, 캠핑 장비를 하나 가득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서양 트레킹 팀들도 만났습니다. 민박집 아들의 얘기로는 가이드 없이 산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해마다 부지기수라고 하더라구요. 이곳에는 몇 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교회를 지나 더 위쪽에 텐트를 치고 맑은 공기에서의 야영은 서양인들에게 꿈의 코스라고 합니다.

 

- 여행을 다녀 온 후 삶에, 일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허세가 없어진 것 같아요, 제가 방송일을 하고 음악평론가로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대접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길게 여행을 해야하는 입장이라서 거의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여행을 끝내고 한국의 제자리로 돌아온 후에는 버스나 지하철 등도 서슴없이 타고요. 소소한 소박한 일상을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스몰라이프 인 것 같아요. 저는 일주일을 여행하거나 70일을 여행하거나 기내용 사이즈의 여행 가방하나와 접으면 손바닥만한 작은 배낭이 전부입니다. 그것이면 생활에 충분합니다. 서울집에는 물건이 너무 많아요. 옷과 구두 가방에 대한 욕심도 없어졌어요. 배낭여행이라고 배낭을 메고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멕시코 여행에서는 실제로 배낭을 메고 떠나는데요. 배낭은 짐을 정리하기도 어렵고, 13kg 정도 되기 때문에 실제로 무겁기도 합니다. 한번언 과달라하라에서 배낭을 메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무게중심을 잃고 구른 적이 있어요. 그 후로는 케리어를 들고 떠납니다.

 

그리고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일 중독이었어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진정한 나를 오롯이 만나보니 바쁜 일들은 결코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더라고요, 사회라는 큰 조직이 움직이는데 나는 그저 작은 부속이었던 것일 뿐, 작은 톱니바퀴처럼 죽어라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가끔씩이라도 오직 나만을 위한 일이나,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을 찾아 삶의 질을 높여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삶이 힘들 때 휘리릭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 책 제목을 <매혹의 땅 코카서스>라 이름 붙였는데, 어떤 점이 가장 큰 매혹이었나요?

 

조지아의 자연이 아주 매혹적이었습니다. 저를 조지아로 불렀던 만년설의 카즈베기산(5033m)의 배경의 교회도 그렇고요, 메스티아에서 산길을 달려 도착한 우쉬굴리도 엄청났습니다. 5,000m의 설산을 눈앞에 두고 한동안 행복감에 빠져 있었는데요. 조지아 여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가 우쉬굴리라고 익히 들었던 말이 무슨 이야기였는지 눈으로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이런 경치를 직접 내 눈으로 보다니, 살아있음에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벅차게 올라왔고, 비현실적인 경치에 자꾸 셔터를 누르게 되는 곳이지요.

풍성한 볼거리, 저렴한 물가, 친절한 현지인 그리고 맛있는 음식, 네 가지를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나라 조지아는 여행지로서 상당히 매혹적이고요, 역설적이지만 조지아가 많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만큼은 청정지역으로 지금처럼 순박했으면 하는데요, 거리도 멀고 여행할 수 있는 기간도 5월에서 10월정도 길지 않아서 선뜻 갈 수 없는 나라라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 코카서스 3국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은? 장소는?

 

가장 좋았던 도시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이었어요. 아르메니아어나 러시아어를 구사하지 할 수 없어서 의사소통은 어려웠지만, 따뜻한 아르메니아 사람들로 인해 여행하는 내내 감동적이고 즐거웠습니다.

예레반을 떠올리면 멋진 관광지나 입맛을 사로잡은 맛집이 아니라, 날마다 지나던 골목 어귀의 야채 가게와 꽃으로 가득하던 거리의 풍경입니다. 도시 뒤편 골목 산책을 즐겼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품가게와 럭셔리 카페에서 불과 한블럭 거리에 있을 뿐인데, 소시민들의 일상을 담고 있는 그곳은 소박하고 진솔했어요. 레스토랑의 물가에 비해 과일과 야채의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고요, 식재료를 파는 가게의 재미에 빠진 나는 소탈한 서민이 되어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예레반은 축제와 예술의 도시입니다. 한번은 마침 7월 5일, 아르메니아가 헌법을 제정한 날이었어요, 소녀들은 옷까지 국기로 깔 맞춤하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는 축제의 현장을 만났어요. 아르메니아를 소개하는 책에서 보았던 바로 그 축제가 끊이지 않는 나라라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기록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상상보다 훨씬 신나고 대단했습다. 저도 바로 ‘흥’경채가 되어 함께 ‘쉐킷쉐킷’하며 행렬 속으로 섞여 들어갔죠. 행렬은 공화국 광장으로, 그리고 보행자 거리로 이어졌고, 다시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도착한 후, 제대로 축제의 판이 벌어졌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박자 개념은 유별났고, 춤사위도 독특했습니다. 중동지역, 혹은 터키, 아니면 이란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사람들 ‘흥’ 뿐 아니라 ‘청승’도 대단하다고 합니다. 터키 대학살(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침략으로 인한 불행한 역사 덕에, 아랍음악을 비롯하여, 투르크 음악과 기독교 음악이 섞이어 오랫동안 공존했고, 거기다가 근세기 소비에트 시절엔 클래식 음악의 세례를 또 듬뿍 받아서 아르메니아 음악은 볼거리가 아주 가득합니다. 아르메니아인은 축제와 전통춤, 그리고 음악 공연이 생활과 함께하죠, 눈과 귀와 마음으로 듣는 음악은 감격이죠. 예레반에서 들은 음악이 그랬어요, 매일매일 크고 작은 공연을 일년내내 개최되는데, 덕분에 예레반에 있었던 기간에 축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배낭 속에 담아 온 음악>에 비해 <매혹의 땅 코카서스>는 음악에 주력했다기보다는 코카서스 3국의 전반적인 삶의 문화와 곳곳의 풍물에 대한 두루 다양한 정보가 담겼다고 보여지는데, 한국의 문화와 비교한다면 가장 두드러진 차이, 유니크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낭만적입니다. 어디를 가나 꽃을 파는 가게가 아주 많아요, 당연히 꽃을 사고, 선물을 하는 남자들도 많죠, 어디를 가거나 문화적으로도 아주 풍성합니다. 초저렴한 가격에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고요, 다들 아주 멋지게 잘 차려입고 극장 나들이를 합니다.

발레 공연은 오케스트라 생음악 연주에 맞추어 진행되는데요. 지휘자는 멋진 신사분 이었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연륜이 지긋한 연주자들의 호흡도 참 좋았던 발레 공연이었습니다. 프롤로그와 1막이 끝나니 휴식 시간이 되었고, 그때 관객들은 간식이나 간단한 술도 한 잔 합니다. 이곳의 인터미션 문화는 무슨 귀족의 무도회 장소에 온 것 같은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죠. 아시아의 서쪽 끝에서 만나는 유럽공연문화 체험이라니... 그래서 코카서스의 여행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날은 오페라하우스 광장에서 락 페스티벌을 만나기도 했죠. 젊은 밴드들이 30분 간격으로 무대에 올라 헤드뱅이도 불사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는데요. 광장의 시민들은 남녀노소가 모두 익숙하게 ‘락’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아주 부러웠습니다.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카페 레스토랑이 영업 중인 것도, 국민 소득에 비해 예술적 행복으로 심도 있게 즐기는 문화도, 일 중독인 한국인의 안목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점입니다.

 

 

- 코카서스 지역의 음악이 영화 <글래디에이터> 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 지역의 음악적 특징이라면?

 

나라별로 음악적인 특징이 아주 다르더라구요.

조지아는 근사한 남성 아카펠라 음악으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노래 ‘백만송이 장미’의 나라 조지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다가 어떤 노래에 심장이 멎을 뻔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조지아의 노래 술리코(old Georgian song-Suliko)라는 소박하고 단순한 멜로디의 노래였는데, 남성 3부 합창으로 만나게 된 이 노래는 성스럽고 중후한 교회음악으로 들렸습니다. 조지아에 대해서 조금 익숙해진 후, 그들의 민요가 교회의 성가곡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조지아에서도 우리의 ”아리랑“같이 자주 불려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노래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리코(old Georgian song-Suliko)는 소박하고 단순한 멜로디의 노래였는데, 남성 3부 합창으로 만나게 된 이 노래는 ‘영혼’을 뜻하는 술리코 (Suliko სულიკო)라는 이름의 노래이고, 나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사로잡았던 문제의 조지아 노래인데요. 죽은 연인의 무덤을 찾아 사랑을 노래하는 이 곡은 19세기 말 국민 시인 아카키 페레 텔리 (Akaki Tsereteli)의 시에 부쳐진 음악입니다. 조지아의 폴리포니 노래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2001년 5월 18일 ”Georgian polyphonic singing“으로 유네스코인류구전 및 문화유산 걸작(Masterpiece of Oral Tradition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조지아의 문화에서 다성 창법의 노래는 조지아의 환상적인 음식과 훌륭한 와인만큼 중요합니다.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있는 조지아의 음악은 고립된 지리적인 환경과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풍성한 노래로 발전시켰죠. 조지아 인들은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복잡한 하모니를 만들어냈고, 그들은 집에서, 들판에서, 생활 속에서 축제와 애도의 장소에서도 이러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폴리포니 노래 양식은 2개 이상의 선율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하모니를 이루어지는 틀의 대위법적 음악인데요. 일반적으로 제 1테너와 제 2테너 그리고 바리톤이 주가 되는 3성부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행사나 축제 때 부르는 차크룰로(Chakrulo)는 복합적 폴리포니에 속하는데요, 이것은 요들(yodel)의 일종인 크리만출리(krimanchuli)가 사용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크리만출리는 수탉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며 남성 팔세토 가수(falsetto singer, 두성을 사용하여 보통의 소리보다 높은 소리를 내는 남자 가수)가 부릅니다. 1977년에는 지구인의 대표 작품으로 채택되어 우주선 보이저호에 실린 음악 중 하나가 조지아의 차크룰로라고 하니 그것도 우연은 아닌가 봅니다.

 

차크룰로는 조지아 민요인데, 와인으로 유명한 동부 카헤티 지방에서 애창되었던 축배의 노래(table song) 혹은 권주가(drinking song)로 알려진 노래죠. 일반적으로 두 명의 남성 솔로가 높은 음역을 맡아 주도하면, 몇 명의 저음 성부의 베이스가 백 코러스로 참여하는 양식입니다. 멜로디는 독특하게 낭송조 혹은 레치타티보(Recitative) 형식의 소리로 시작해서 점차 여러 꾸밈음으로 갈라지면서 전체적인 하모니를 이뤄냅니다.

아르메니아는 매일 매일 공연을 즐기고, 수만 가지 이유를 붙여 축제를 즐기는 민족이지만, 여기저기서 툭툭 내비치는 슬픔의 분위기는 ‘두둑’ 등 민속악기와 노래에 배어 있었는데요, 청승맞은 한(恨)의 분위기는 한국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한’의 역사는 오래 누적된 슬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변 국가에 휘둘린 수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데요. 터키 대학살(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침략으로 인한 불행한 역사 덕에, 아랍음악을 비롯하여, 투르크 음악과 기독교 음악이 섞이어 오랫동안 공존했고, 거기다가 근세기 소비에트 시절엔 클래식 음악의 세례를 또 듬뿍 받아서 아르메니아 음악은 볼거리가 아주 가득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권 지역에 속 하지만 러시아의 영향으로 서구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카프카즈 지역이 갖는 그들만의 전통문화와 주변 이슬람권 지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그들은 복합적이면서도 새로운 그들만의 음악 스타일을 창조해냈는데요. 아제르바이잔은 전통 음악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그중에서 많이 알려진 것은 ‘무감 Muğam’과 ‘아쉭크Ashiq’입니다. 이러한 음악의 배경은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요, 민속을 바탕으로 한 아제르인들의 전통 음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무감은 잘 알려진 시인들의 시(詩)나, 음유시인들의 음악을 드라마처럼 엮어 길게 부르는 일종의 음악극입니다. 북아프리카에서부터 페르시아-중앙아시아-신장(중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민족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음악장르로 인류가 남긴 가장 큰 유산 중의 하나이다. 2008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무형 유산에 등재된 아제르바이잔에서 무감은 열 명 정도의 악사와 탬버린 같은 타악기(Qaval)를 들고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의 구성으로 공연됩니다.

 

아쉭크는 아제르바이잔의 전통 음악에 있어 무감 못지않게 중요한 음악이죠. 한마디로

자신이 쓴 시를 노래로 부르는 minstrel, troubadour, 또는 bard를 지칭하는 터키어인데,

‘스토리(story)’가 있는 서정적인 음악이구요. 사랑, 도덕, 종교에 관한 짧은 시와 긴 길이의 서사적 발라드를 포함하고요, 2009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무형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유럽의 관광지나 동남아 등지의 휴양지와도 다른데, 코카서스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코카서스를 꼭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한다면, 어떤 점이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숨겨놓고 혼자만 가고 싶은 나만의 여행지는 바로 조지아입니다. 저는 2017년 여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서 시작했는데요. 낡은 목조주택 때문인지 첫인상은 루마니아 브라쇼브를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요, 시간이 멈춘 듯 빛바랜 건물의 모습은 딱 100년 전 유럽이고, 220년이나 되었다는 하늘색의 공동주택엔 지금도 17가구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건물은 독일 스타일 기본에 아랍스타일을 믹스했고, 발코니는 프랑스 스타일로 리노베이션을 한 것 등등은 파란만장했던 식민지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는데요. 인상적인 건축물들은 내게 사람 냄새나는 골목 투어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70일간의 코카서스 여행에서 한 달 이상을 조지아의 매력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피로스마니」의 음악 <백만 송이 장미>에 취했던 순간, 동네 아저씨들의 노랫소리, 장관을 이루던 소 떼, 바투미 보타닉컬 가든에서 불던 바람, 치대던 시그나기의 고양이, 이제는 모두 추억의 순간들이죠, 그림 같은 마을에서 시그나기에서는 길을 잃기도 했고, 텔라비에서는 와인 맛을 알게 되었고요. 모험과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조지아는 빙하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바투미 유럽광장에서는 그리스신화 메디아를 만났던 나라가 바로 조지아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교회를 보면 성호를 긋던 조지아인들이 섬기는 그들의 종교와 교회가 궁금해서 가본 교회들은 놀랍게도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입었던 옷이 묻힌 스베티츠로벨리 대성당, 성니노의 포도나무십자로 유명한 즈바리 교회, 화려한 벽화로 장식돼 있는 겔라티 수도원 교회 등은 종교와 신앙심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 국악고에서 가야금을 배우고, 대학에서는 국악 작곡과 이론을 전공했는데, 가야금 연주자나 작곡에 대한 열망은 없으신지요? 연주 보다 여행이 더 재미있나요?

 

무대 위에서 연주로 승부를 걸어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저의 의사가 아니었죠. 국문학자였던 아버지가 결정하고 통보했기에 가게된 거죠. 예전에는 입학후에 전공이 결정되는데, 이쁘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그래도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한 가야금을 전공하게 되는 것 같아서 저도 얼떨결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야금 전공자가 되었습니다만, 곧 흥미를 못느껴어요, 교생실습 나온 선생님 중에 이론 전공하신 김영운(현 한양대 국악과 교수)선생님이 멋져 보여서 대학엔 이론 작곡 전공으로 입학했고요, 호기심이 많아서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민족음악학을 전공한 것입니다. 예전부터 모험심이 강했던 것같아요. 음악인류학 박사를 받은 후부터 다양한 세상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여행이라는 것으로 흐르게 된 듯합니다. 여행은 중독성이 강해요, 특히 혼자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진짜 매력적입니다. 건강과 시간이 허락되는 한 아마도 당분간은 여행에 집중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려면 경비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본업인 국악판에서 글도 쓰고 방송도 하고 대학강의를 하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여행을 너무나 좋아해서 방학때마다 길게 떠나기는 하지만, 나의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든든해요. 아마도 당분간은 두 가지를 병행하게 될 듯.....

 

-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음악을 여행을 좋아했나요?

 

어릴 때 꿈은 너무 많이 바꿨던 것 같아요. 말을 잘하고 호기심이 강하고 부산스러운 아이여서 별명이 아주 많았어요. 변호사, 앵무새, 아나운서, 대변인.... 친구 많고 수다스럽고, 활동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학생이었어요, 선동을 잘해서 현경채의 어감을 살린 ‘선동채’라는 별명도 있었고요, 명석해서 공부는 잘 했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문제아였던 것 같아요. 길을 아주 잘 찾아서 우체부 시켜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요, 지금도 방향 감각이 아주 좋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엔 남편도 언니도 낮선 곳에 가려면 다들 내게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묻곤 했어요, 어릴 때 꿈은 중학교 땐 생물학자, 화가였고요. 국악고등하교를 입학한 후에는 음악인으로 살아야하는 것으로 정해진 인생이었죠. 물론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줄곧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요. 제2의 인생은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여행으로 뭔가를 하게 되겠다 싶어요.

 

- 여행자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보며 여러 감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현대사회의 중요한 삶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상대방의 다름을 존중하고, 상대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요. 세상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있어요. 그것을 이루기까지의 역사와 노력과 맥락을 이해하고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시각이 참 중요합니다. 한국의 생활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열린 시각과 너그러운 마음도 많이 부족해 보여요,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하루하루 엄청나게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제는 돌아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삶의 여유는 행복지수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여행만한 것이 없어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으니, 본인들의 취향에 맞춰서 계획을 세우고 떠나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혼자서 떠난 것인데, 그것은 조금 힘드실까요?

 

 

- 다음 여행지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여행기 <매혹의 땅, 코카서스>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교보문고 여행주간 베스트 1위에 올랐고요. 북콘서트도 두 번이나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번 여름방학에는 여행을 못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저는 곧 다시 배낭여행자로 휘리릭 떠납니다.

이번엔 지난번 조지아 여행 때 잠시 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던 우쿠라이나로 들어가서 폴란드에서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이미 구입 완료한 상태이고요. 이번에도 조금 긴 76일 일정입니다. 중간에 어느 나라를 갈게 될지, 아니면 두 개 나라에서 각각 한달 살기를 하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중간에 폴란드 Gdynia에서 열리는 지역축제 GLOBALTICA 페스티벌(7월 17-21일)을 갈거예요. 올해로 15주년을 맞는 축제이고요. 폴란드 여름 이벤트 중에서 손이 꼽히는 행사입니다. 한국의 판소리 디바 권송희가 초대받아 다녀온 적이 있고, 올해는 지난해 워멕스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크게 주목받은 타악 연주자 김소라의 <비 올 징조>가 초청받았고, 제가 한국의 음악평론가로서 보드 멤버로 초청받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더무브>에도 신속하게 축제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효정 기자 사진제공 ⓒ현경채

 

 

 

* 참고: 기사의 내용 중 필자의 여행 및 음악 관련 정보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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