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전관 30주년을 기념해 열리고 있는 ⟪라울 뒤피: 색채의 선율⟫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1877년에 탄생하여 1953년에 사망할 때 까지 야수파, 인상주의, 입체주의, 모더니즘 등 다양한 사조의 영향을 받고 실험했지만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한 라울 뒤피. 이번 전시에 온 160점에 달하는 원작들은 ‘색채주의자’라고 불렸던 그의 삶을 한층 더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늘 새로운 재료와 다양한 기법에 관심이 있었던 뒤피는 회화작업을 하는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판화, 일러스트레이션, 도예, 패션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고, 1910년대에는 섬유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의 한 코너에 진열된 그가 디자인한 패턴이 새겨진 패브릭, 17벌의 드레스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뒤피의 섬유 디자인에는 꽃, 나무, 동물 등 자연적인 모티브가 등장합니다. 규칙과 불규칙, 생명력과 생동감, 복잡한 구조를 단순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특히 나비를 두고 뒤피는 ‘반으로 접힌 부드러운 음표가 꽃을 찾아간다’고 말하기도 하며 그 형태와 움직임 속에서 음악적인 요소를 발견하기도 했죠. 이번 칼럼에서는 나비, 꽃과 관련된 클래식 곡들을 소개합니다.

꽃 모티브가 돋보이는 뒤피의 섬유 디자인

https://www.youtube.com/watch?v=bivBaKE9DkE&t=30s

슈만- <나비 Op.2>

슈만이 20세에 작곡한 <나비>는 슈만이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접고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던 시기에 어떤 작곡 스타일을 추구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곡입니다. 장 파울의 소설 <장난꾸러기 시절>에 나오는 가면무도회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이 곡은 짧은 서주 이후 12곡이 약간씩 다른 색채를 띄며 진행됩니다. 하나의 주제 아래 엮인 단편소설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후에 자신의 자아를 이성적인 플로레스탄과 감성적인 오이제비우스 둘로 나누어 대화를 나누게 했던 슈만의 글처럼 <나비>를 이루는 곡들의 성격 역시 대조적입니다. 격렬하다가도 돌연 사랑스러워지고, 역동적이다가도 갑자기 마무리되며 달콤한 여운을 남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gAC-7xyxLk&t=676s

슈만- <카니발 Op.9> 중 9곡 ‘나비’

1833~35년 사이 작곡된 <카니발 Op.9>은 <나비 Op.2> 이후 작곡된 짧은 춤곡 모음곡입니다. 총 20곡으로 구성된 <카니발> 중 9번째 곡인 <나비>는 흐드러지게 핀 장미 정원에서 불규칙적인 선을 그리며 팔랑거리는 나비들을 묘사한 듯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n4fL2eHMG4

쇼팽- <연습곡 Op.25-9> ‘나비’

이 곡은 1분이면 연주가 끝나는 두 페이지 짜리 곡입니다. 제목 그대로 사뿐거리는 나비가 연상되는 곡입니다. 쇼팽은 이 예술적인 <연습곡>에서 연습곡 장르의 목적인 ‘테크닉’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음정을 가진 두 음을 손가락을 쫙 벌려 연속적으로 치는 부분, 도약이 많아 다른 건반을 건드리지 않게끔 계속 신경 써야하는 부분이 많아 쉽게 들리는 것과는 달리 연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곡이나 콩쿨곡으로 많이 나와 피아니스트들에게 애증의 곡이기도 합니다.

https://youtu.be/tK9STHqcl9Y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중 ‘어느 맑게 개인 날’ 아리아

일본에서 살았던 미국인 선교사 존 루서 롱의 장편소설 <나비 부인>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여 순수한 일본인 여성과 세속적인 미국 남성 사이에 벌어지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푸치니는 당시 유럽에 만연해있던 ‘동양에 대한 환상’을 작품 속에 녹여내어 오페라 곳곳에서 일본풍의 선율이 들립니다.

오페라의 2막에서 불리는 <어느 맑게 개인 날> 아리아는 ‘가장 가슴 아픈 아리아’로도 유명합니다. 일본에 주둔하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간 핀커턴 대위가 다시 일본으로 자신과 둘 사이의 아이를 데리러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주인공 조초 상이 자신의 하녀에게 ‘그 분은 멀리서 나비야 라고 부를거야. 난 대답하지 않고 계속 숨어 있을거야. 다시 만나는 기쁨에 벅차 죽을지도 모르니까’라며 설렘과 기대감을 노래합니다.

 보라색 꽃병 Ⓒ이수민

https://youtu.be/VLvfzafqJp0

라흐마니노프- <라일락 Op.21-5>

4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일락은 수수한 외양과는 달리 아찔할 정도로 진한 향기 때문에 널리 사랑받는 꽃입니다. 본래 <12개의 가곡집> 중 5번째 곡인 <라일락>은 가곡보다 피아노로 편곡된 버전이 더 자주 연주됩니다.

곡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듯 흐릿하게 시작하여 점점 선명해지는 영화의 오프닝 장면 처럼 은근하게 시작합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잎사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전해지는 향기처럼 곡은 쉼 없이 진행되며 점점 감정의 진폭을 넓혀갑니다.

https://youtu.be/3WHmsf3XgqA

라흐마니노프- <데이지 Op.38-3>

<6개의 낭만 가곡집> 중 3번째 곡인 <데이지>는 러시아 시인 이고르 세베리아닌의 동명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약간은 우울한 뉘앙스로 시작하는 도입부와는 달리 이내 밝고 행복한 정서로 곡이 진행됩니다.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도 유명하지만 크라이슬러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수민 _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기악과 학·석사, 인디애나대 음대 연주자과정을 졸업한 이수민은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또한 기업체 강연자, 공연 해설자, 칼럼니스트, 유튜브 [클언니] 운영, EBS 생방송 뉴스에서 공연리뷰 코너 고정 패널을 1년간 맡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2년 클래식 입문서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를 출간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019239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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