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_논개별곡

성하(盛夏)처럼 춤의 열기가 상당했다. 호남살풀이춤 이수자들이 출연한 ‘성하지몽(盛夏之夢)’ 무대다. 2022년 8월 3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개최된 이번 공연은 최지원무용단이 주최하고, 호날살풀이춤보존회 등이 후원한 전통춤판이다. 

1996년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이 춤은 최선 예능보유자를 중심으로 장인숙 호남살풀이춤보존회장, 최지원 전승교육사 등 많은 전승자들이 함께하는 호남의 대표 춤이다. 이번 무대에 출연한 무용가들도 전원 호남살풀이춤 이수자이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인이다. 최지원, 김희진, 김보람은 각각 두 작품 씩 작품을 선보였고, 강주형과 이수린은 2인무로 함께했다.

최지원의 '산조'

첫 무대는 이번 공연을 기획, 연출한 최지원 전승교육사가 ‘산조 – 저 꽃, 저 물빛’으로 열었다. 산조의 유유함이 한여름 밤을 깨운다. 김영재의 철금산조에 맞춰 밀고 당기는 공간 탐색이 현의 울림을 파고 든다. 후반부 춤의 활달함은 산뜻한 느낌마저 준다. 산조춤에 이은 ‘논개별곡’이 춤의 깊이를 더한다. 슬픔을 안은 듯, 누군가를 기다리듯 천천히 춤 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수건춤에 남해안 무속의 색채가 더해져 춤의 극성은 배가된다. 춤에 정성어린 마음을 담으려는 김희진의 춤은 철학성이 내포돼 의미가 있다. ‘예술의 본질은 감정의 표현에 있다’고 한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의 명제를 환기시키듯 표현미학성까지 여지없이 드러낸 것은 값진 성과다. 단해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김희진의 ‘논개별곡’이 특별한 이유다.

김보람_태평무

김보람컴퍼니 대표인 김보람은 ‘태평무(한영숙류)’로 전통춤의 미덕을 보여줬다. 절제함 속 풍요로운 춤의 결은 다양한 장단 변화 속 세밀한 춤적 변주로 내적 신명을 기호화했다. 이번 공연의 유일한 2인무 무대로 처용무 이수자이기도 한 강주형과 무무댄스컴퍼니 대표인 이수린은 ‘동초수건춤’을 굿거리장단에 호흡을 맞춰 흥과 멋을 더했다. 단순함과 몰입감을 동시에 충족시킨 것은 이 춤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김희진_진주교방굿거리

2부 격이라 할 수 있는 세 춤이 연속 이어진다. 김희진의 ‘진주교방굿거리’가 먼저 한여름 밤의 춤몽에 색채미를 더한다.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인 김수악류 굿거리춤을 김경란 선생에 의해 재구성한 이 춤은 덧배기와 소고춤이 단단하게 받쳐줘 춘하추동의 순환성까지 엿볼 수 있다. 흥이 멋이 되고, 멋이 태가 된 무대다.

김보람_시나위

불협화음 속 조화미가 이채로운 김보람의 ‘시나위’는 자유분방함 속 ‘율(律)’을 길어올려 춤맛을 더한다. 공연의 대미는 최지원의 ‘호남살풀이춤’이 장식한다. 침잠된 호흡과 엇박의 맛을 춤의 내외적 균형감으로 상승시켜 담아냈다.

2021년 4월 전주에서의 첫 걸음 이후, 두 번째 춤 걸음인 이번 무대는 호남살풀이춤 이수자들의 용기있는 도전이자 성취다. 봄(2021년), 여름(2022년)을 지나 내년에는 가을에 만나도 좋으리라 본다.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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