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김현동의 오페라로 보는 세계사] 오페라와 여인의 사랑② 정열의 사랑: 오페라 <카르멘(Carmen)> & <토스카(Tosca)> 목숨까지 불사르는 여인의 정열과 사랑
  •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 승인 2022.06.16 17:25
  • 댓글 0

오페라 <카르멘> 속 _세비야

스페인의 남부도시 세비야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남부도시 세비야는 8세기경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의 남부 지금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이슬람이 오랫동안 통치하던 지역이었다. 레콘키스타 운동으로 말미암아 안달루시아 지방을 회복하게 된 이사벨라 여왕시절인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항로 개척으로 말미암아 안달루시아 지방 특히 주도인 세비야는 무역항으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게 된다. 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막대한 황금과 은 등은 세비야의 경제, 사회,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동방항로 개척의 중간 기착지인 이 도시는 동방으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이국적 문화의 영향으로 유럽에 위치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무척 매력적인 도시가 되어갔다. 

특히 당시 이슬람사원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워진 세비야 대성당은 고딕, 이슬람, 그리스 양식이 혼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성당 내부에는 콜럼버스의 관이 있는데. 스페인의 4대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콜럼버스의 관을 공중에 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던 도시도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과 끝없는 패권 전쟁으로 인해 막강했던 재정은 뿌리째 흔들리게 되고 급기야 16C 말에 들어서면서 파산을 선언하며 원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은 유럽의 2등 국가로 전락하게 됐다.

 

예술가들의 흥미를 자아낸 세비야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흥미진진한 관심거리가 풍성했던 세비야는 당시는 물론이고 후대에 이르러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자아내는 좋은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다양한 동양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땅이었고, 미지의 땅이었던 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건너오는 다양한 볼거리들과 북부 카스티야 지방에 비해 보다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가능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미술, 건축, 음악, 무용, 문학 등등 이슬람, 인도, 아프리카, 북유럽, 아메리카 등의 모든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립을 표명한 스페인은 전쟁의 피해는 거의 받지 않았는데, 그 전쟁에 필요한 다양한 군수물자를 제조해 공급함으로써19세기에 들어 공업을 비롯한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다양한 유민들이 전쟁과 폭정을 피해 세비야를 비롯한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많이 유입되어 한때는 집시들의 피난처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한 집시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융합되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플라멩코’라는 춤이다. 이 집시들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집시 여인 카르멘이 오페라 <카르멘>의 소재가 됐다.

 

집시 여인 카르멘

오페라 <카르멘>은 프랑스의 작곡자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4막 짜리 오페라다. 프랑스의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이 이 오페라의 원작인데, 소설 카르멘은 화자인 고고학자가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친구인 돈 호세를 찾아가서 그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우리는 흔히 이런 소설을 액자소설이라고 부른다. 

오페라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은 팜므파탈의 소유자인 카르멘이 선량한 군인인 돈 호세를 유혹하여 그를 파멸에 치닫게 했다는 인식을 가지지만, 사실 이 원작소설의 내용을 보면 카르멘은 늘 그런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즉, 자유롭고 거침없는 사랑표현으로 사신의 삶을 그 누구에게도 종속시키려 들지 않는 신여성상의 상징 같은 인물인 것이다. 극에서 많은 남성들이 카르멘에게 구애를 하고 카르멘 역시 그들의 애정행각을 즐기는 수준의 삶을 선택했다. 

돈 호세 역시 카르멘에게는 그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돈호세의 광기 어린 집착과 파멸로 향하여 걸어간 그의 선택이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주된 원인이었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작가가 추구한 인간 본성의 욕망과 질투와 광기를 가진 진정한 주인공은 돈호세 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 이 오페라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끝없이 갈망하고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사랑을 선택한 카르멘,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을 버리지 않는 정열의 여성상에서 이 오페라의 매력을 찾으려 한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 드라마 <카르멘>

19세기 프랑스 오페라는 샤를 구노나 마이어베어, 쥘 마스네 같이 대서사극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나, 청순가련형의 여자주인공을 내세운 로맨스오페라가 유행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온 가족이 저녁 먹고 예쁜 옷 차려입고 공연을 보러 가서 즐기고 올 수 있는 그런 교훈적, 예술적 오페라가 성행이었다.

 하지만 비제의 카르멘은 초연 당시 혁신적이다 못해 막장이었다. 여자주인공이 귀족이나 왕녀도 아니고 더욱이 요조숙녀도 아닌 집시여인인 데다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남자들과 무분별하고 비도덕적인 연애를 일삼는, 급기야 남자를 배신하고 그로 의해 처참하게 살해까지 당하는 이런 오페라는 일부 음악적인 호평이 있기는 하였으나 평론가들과 관객들로부터 혹평을 넘어선 비난을 받고 말았다. 그리고 초연은(1875년 3월3일 파리오페라극장) 처참하게 실패하게 된 것이다.

 이 비슷한 이유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역시 초연에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비제가 죽기 얼마 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이 작품을 올리고자 비제를 찾아왔고, 빈 공연 계약서에 싸인한 비제는 바로 그 다음날인 1875년 6월 3일,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비제가 죽은 후 오르게 된 빈에서의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고, 당시 유럽의 작곡가들은 오페라 <카르멘>을 극찬하고 그 후 10여 년 후인 1885년 파리에서 다시 공연된 <카르멘>은 그제야 고국 프랑스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죽음도 막지 못한 카르멘의 정열

오페라 <카르멘>에서 여자주인공인 카르멘은 집시 여자로 나온다. 때는 19세기 초반인 1830년 세비야에 주둔하여,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부대의 부 사관인 카스티야인 돈 호세는 제대한 후 고향의 약혼녀와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기 원하는 성실한 군인으로 나온다. 하지만 당차고 자유분방한 집시여인 카르멘에게 사랑을 느끼고, 구속된 신분인 그녀를 풀어줌으로써 결국 그녀만을 쫓는 사랑의 노예 신세가 된다. 

카르멘을 놓고 상사와의 삼각관계에서 항명한 죄로 군에서도 퇴출당하게 되고 다른 집시들과 함께 밀수업자의 삶을 살았지만, 돈 호세에게 실증을 느낀 카르멘은 당시 최고의 투우사인 에스카미요의 구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고향을 다녀온 돈 호세는 이미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나 에스카미요의 연인이 된 카르멘을 보게 된다. 그녀에게 마지막 구애를 하였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간청과 회유와 살해의 협박까지 했지만 결국 카르멘에게 거절 당한 돈 호세는 급기야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시신 앞에 오열하면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오페라 속 주인공 ‘카르멘’은 당시 사회에 굳게 남아있던 여성에 대한 이미지, 순결, 순종, 청순, 여신 등등 남성들이 수 세기 동안 만들어 놓은 고착된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여성상이었다. 게다가 자유연애, 배신, 흡연, 음주, 폭언, 폭력 등은 낭만주의 시대 서유럽에 존재하지 않는 여인상은 아니었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을 수는 없는 그런 캐릭터였다. 해서 프랑스에서 초연에 실패한 후 십 년이란 짧지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얼마나 당시 문화에서 카르멘이라는 ‘정열의 여인’에게 많은 프랑스 남성들이 겁을 먹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 오페라 <토스카> 와 나폴레옹 혁명

 

오페라 <토스카>의 작품 속 배경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로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승리하여 북이탈리아에는 공화국이 세워진 시기였다. 시대 전환기 시절에 혁명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고, 정치범이 있었다. 이러한 혁명기 불안한 시대 상황이 오페라 <토스카>의 배경이 되고 주인공들이 탄생한다.

 

나폴레옹 혁명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가장 파급력 있게 맞이한 나라는 바로 프랑스일지도 모른다. 서유럽의 많은 나라 가운데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큰 핵심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위한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역사적인 의의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나 프랑스혁명으로 불리는 시민혁명의 시작은 당시만 하더라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참정권이나 투표권 등의 권리로부터 소외되어오던 일반 국민에 까지도 그 권리가 골고루 나누어져 갔다는 것은 크나큰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수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프랑스의 시민혁명은 봉건제와 공화제, 그리고 입헌군주제를 오가며 완성되지 못한 경험치 아래서 정치와 경제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한 사나이로 말미암아 프랑스는 물론이거니와 유럽 전역에 걸쳐 봉건제와 군주제에 대한 거부감과 공화정에 대한 욕구가 불타올랐으니 그가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세였다. 1769년 8월15일, 이탈리아 서부해안에 있는 <코르시카섬>에서 나폴레옹은 태어났다. 불과 수개월 전에만 하더라도 <코르시카섬>은 이탈리아의 소유였으나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몇 달 전 프랑스령이 되어 버려,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으로 태어나고 자라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수많은 문화제 등을 프랑스 자신의 궁전으로 가져오는 일을 감행하게 된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 당시 보나파르트는 갓 임관을 한 장교였는데, 이후 코르시카에서 반 자코뱅파의 영,프 함대를 격파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대위에서 소령을 거쳐 대령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다. 이는 내전에 가까운 혁명 시대에서 나타난 파격적인 승진이었고, 프랑스 공화정을 실제로 다스리게 되는 좌파세력의 자코뱅파 당수인 로베스피에르와 가까이 지내던 친분관계도 크게 작용하였다고 보이는데, 이런 이유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본격적인 정치군인으로의 입지를 더욱 더 다지게 된다. 훗날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을 봉건제로부터 해방 시키고 시민의 주권이 인정받는 공화정을 안착시키리라 믿었던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들이 크게 실망하게 되는 사건, 즉 나폴레옹 스스로 황제의 관을 쓰고 더 완고한 봉건왕정을 선포하려는 그의 계획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나폴레옹 지지한 많은 지식인들

일제강점기 시절 국주제와 일본의 군국주의에 따른 시민의 억압을 체험했던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혁명은 당시 수많은 유럽의 지식인, 예술인들에게는 핵폭탄과 같은 희망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이 태어난 신분과 가지고 못 가진 것에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고 공평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이 가지는 가장 큰 숭고한 가치라 생각된다.

오페라 토스카의 남자 주인공인 ‘카바라도시’ 역시 이러한 숭고한 자유에 대한 가치를 지지하는 화가이자 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대륙은 여러 개의 공국으로 나뉘어져 통일국가로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중해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각 공국은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지나치게 받고 있었고 거의 8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전쟁터가 되어 시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교황령인 중부지방 역시 독립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교황은 남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공국과 군사, 행정적인 면에서 크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짧았던 로마공화정 그리고 <토스카>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이 된 북부 이탈리아와는 달리 교황이 다스리던 교황령의 로마를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계속해서 스페인 부르봉왕조를 필두로 한 신성로마제국과의 협력을 끊지 않고 있었는데, 이에 격분한 나폴레옹은 급기야 로마를 점령하고 7인의 집정관을 두어 로마를 공화정 국가로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로마를 떠난 후 로마공화정은 남부 이탈리아에 있는 시칠리아 공국과 그 뒤를 봐주는 부르봉 왕국을 막아낼 힘은 사실적으로 가지지 못하고 있었기에 로마공화정은 얼마가지못하고 다시 교황을 필두로 한 시칠리아 공국과 신성로마제국군에게 점령당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바로 1800년인 오페라 <토스카>의 시대적 상황이었다.

오페라 <토스카> 1막에 성당으로 숨어드는 안젤로티가 바로 짧은 시간 로마를 다스리던 집정관 중 한 명 이었고, 화가였으나 기사 신분을 가진 카바라도시와는 친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카바라도시는 안젤로티의 도주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악랄한 악역인 경찰 총감 ‘스카르피아’ 라는 배역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시칠리아 공국과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가 재집권한 봉건체제 하의 경찰총감 이었기에, 공화정의 최고 권력자인 안젤로티와 그의 후원자 카바라도시는 개인적인 악감정을 뛰어넘어 정치적인 제거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여인인 토스카는 지극히 단순한 여인으로 나온다.

격변하는 사회적 관심사나 정치적 이해관계 따위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며 살아가는 눈치 빠른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과 음악만이 자신이 지켜내야 할 가장 숭고한 가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여인상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이 지극하게 사랑하는 연인인 카바라도시가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무조건적으로 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한다. 그리고 그녀를 탐하면서도 철저하게 권력을 통한 정치적 판단만을 하며 살아가는 경찰총감과 엄청난 거래를 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서까지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겠다는 한 여인의 절대 절명의 결정이라 숭고하기까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본다면 당시 치열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카바라도시가 처한 세계 권력의 치열한 공방의 역사 한 가운데 놓이게 된 두 연인의 현실을 간파하지 못한 순진함도 아쉽기만 하다. 카바라도시가 처한 위기는 단순한 범죄자 도주방조죄가 아닌 세계대전의 한 축에서 벌어진 국가전복사건의 당사자를 다루는 일이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를 살려둘 수 없는 입장 이었고, 그것은 토스카가 아니라 로마를 준다고 해도 놓아줄 수 없는 범법자가 바로 카바라도시 라는 사실이다. 결국 토스카는 영악하게도 죽음의 형벌로부터 자신의 연인을 구해냈다고 믿는 순간 스카르피아를 살해하게 되고, 희망에 차서 <성 천사의성>에 갇혀있는 카바라도시를 찾아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지만, 카바라도시는 이미 계획된 대로 사형에 처해져 죽게 되고 토스카 자신 역시 연인의 뒤를 따라 스카르피아를 저주하며 강물에 몸을 던지며 오페라의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푸치니

격변의 역사 속 피해자인 여인

일반적으로 오페라 토스카를 보는 사람은 이 사건을 단순히 범죄자은닉을 도운 공범자의 아름다운 애인을 빼앗으려는 스카르피아의 치정사건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오페라의 배경에는 당시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형태를 내세우며 지중해지역에서 파란을 일으키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봉건 제국주의를 표방하는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권력을 유지해 오던 로마교황청 등 무수하게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에 토스카라는 사랑과 음악만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던 한 아름다운 여인이 휘말려 있는 사건인 것이다.

작곡가 푸치니가 오페라 <라 보엠>의 성공 이후 다시한번 심기일전하여 작곡한 이 오페라 토스카는 <La Tosca> 라는 이름의 연극으로 이미 프랑스에서 성공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던 작품이었다. 1900년 1월 4일 로마에서 첫 공연을 한 오페라 토스카는 그로부터 딱 100년 전에 있었던 교황의 로마 재수복 이후의 다룬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극이란 점이 무척 특색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의 순간들을 다 지워내기에는 그다지 길지 않았던 100년의 시간 전에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장소들.... 해서 당시 로마사람들에게는 오페라 토스카에 다뤄진 사건들과 장소들이 생생하게 자신의 피부에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왜 이 오페라가 큰 흥행을 가져오게 되었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이유라 하겠다.

 

 

토스카, 죽음에 대한 인식 

토스카가 오페라 2막에서 부르는 아리아 <Vissi d’arte vissi d’amore/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들어보면 음악과 사랑에만 인생의 가치를 둔 한 여인이 그동안 지고지순하게 살아오면서 약자들을 돕고, 기도생활에 힘쓰고 살아온 자신에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에 대한 몸부림에 찬 절규가 나온다. 

 

Maria Callas - Vissi d'arte (Puccini, Tosca)

https://www.youtube.com/watch?v=NLR3lSrqlww

 

Vissi d'arte, vissi d'amore [TOSCA] Soprano Hei-Kyung Hong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 [토스카]중 소프라노 홍혜경

https://www.youtube.com/watch?v=UJjPksztrSw

 

마치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욥이 야훼로부터 당하는 모든 고난을 한탄하며 울부짖는 절규와 흡사한 것이다. 하지만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면서 내뱉은 대사인 “E avanti a lui tremava tutta Roma” (전 로마가 그의 앞에서 떨었다) 라는 말은, 지금껏 사랑과 음악만이 자신의 인생을 가득 채운 최고의 가치였던 한 여인이, 격동의 역사 한가운데에 본의 아니게 서게 되면서 비로소 로마의 모든 시민들이 그동안 겪었던 공포정치를 손수 끝낸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한 권력자의 죽음은 또 다른 많은 약자들의 해방을 나타낸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 대사였지만, 결국 그녀가 바라던 카바라도시의 회생과 안전한 도주 역시도 죽음의 운명을 피해가지 못하였기에, 정당한 살인이라는 폭력적인 해결방법은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이 오페라는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토스카는 로마를 흐르는 테베레강에 몸을 던져 죽음을 맞이하면서 “O Scarpia! avanti a Dio”<아 스카르피아 신 앞에서 만나자!> 하며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치며 오페라는 끝을 맺는다.

 

Puccini. Tosca. Atto 3. Scena ultima. Plácido Domingo, Raina Kabaivanska

https://www.youtube.com/watch?v=LgifG1LINvg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월간 더무브 THE MOVE,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