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를 하루에 직조시킨 무대, ‘하루: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사)한국무용협회 주최 2021 대한민국무용대상 대통령상 수상작이다.

2021년 12월 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최된 이번 무대는 치열한 본선 경쟁을 거쳐 결선에 진출한 두 작품이 자웅을 겨뤘다. ‘안귀호 춤 프로젝트’가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랐다.

시상식

프랑스어로 ‘존재의 이유’를 의미하는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Leibniz)는 사유 법칙의 하나인 이것을 사유의 실질 원리로 강조했다. 안귀호 안무자는 혼자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한 여인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그 이유를 하루에서 처연하게 찾아낸다. 인간은 누구나 하루를 살아간다.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고민하는지는 각양각색이다. 작품 속 여인은 버거운 발을 내딛으며, 하루를 그려내고 또 그려낸다. 결국 존재의 이유는 하루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심장을 뛰게 한다. 내일을 향한 오늘의 거룩한 외침이자 제단(祭壇)이다.

파도소리 날 때 무대 앞에 누운 여자 무용수가 무대 후방으로 걸어간다.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저벅저벅 발맞춰 걸어나와 무용수가 오케스트라 피트 앞쪽에서 위를 보고 눕는다. 무대 세트가 위에서 내려온다. 장단이 더해진다. 슬픔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슬픔이 순간 멈추다. 아련함 가득한 솔로춤이 이어진다. 군무 행렬이 서서히 그려내는 꿈은 어느새 하루와 맞닿아 있다.

반쪽 달이 걸리다. 강강술래춤을 응용한 춤 동작에선 한국창작춤의 매력을 기분좋게 읽을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달의 색깔 변화는 심경의 변화요, 하루의 흐름과 맥까지 보여준다. 그 맥은 고동친다. 때론 숨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바라만 보고 만날 수 없는 그리움과 아픔이다. 애잔하다. 하루를 또 살아가는 이유다.

어디선가 나의 이름이 나지막이 들려온다. 그 이름은 바로 ‘하루’. 존재 그 자체다. 같은 듯 다른 하루, 다른 듯 같은 하루의 꿈이자 길이다. 이 작품은 몇 가지 특징을 설득력 있게 객석에 전달한다. 첫째, 회전무대 활용을 통해 춤 표정을 다양하게 처리했다. 이는 작품 분위기, 서정성과 서사성을 동시에 높이는 역할을 했다. 둘째, 달의 색깔과 기울기 변화는 하루의 흐름을 속깊게 대변한다. 셋째, 솔로춤과 군무가 조화롭다. 슬픔이 침잠된 환희를 군무가 보여줄 땐 붉은 달도 환희에 젖는다.

하루라는 이름(名)이 이름(至)과 이룸(成)의 숨을 크게 내쉰 ‘하루: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인생의 단면인 하루를 실존체로 보여줬다. 이유 있는 하루다. 하루의 이유다. 존재의 이유다.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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